(下) J에게
교육실습을 했던 2017년 5월은 내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면서 가장 슬픈 기억이기도 하다.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면 2017년의 내 모습이 여러 장 남아있다. 새로 산 정장을 어색하게 차려입고 반짝반짝한 실습생 명찰을 꽂은 채 교육실습 오티에 간 날, 밤을 새워서 열심히는 만들었으나 어딘가 엉성한 교구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던 날 현장체험학습으로 갔던 황간역. 그리고 교육실습 마지막 날이었던 6월 2일, 꽃다발을 들고 학급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학생들과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몰랐다. 그날 하교 길에 한 아이가 실종되고, 며칠 뒤 발견된 시신과 인상착의 확인을 위해 내가 찍은 사진이 사용될 줄은. 일곱 아이들 중 지금은 세상에 없는 J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가 기억하는 J는 반에서 제일 똑똑하지만 어딘가 아픔이 많아 보이는 학생이었다. J의 어머니는 (J보다 심한) 지적장애인이었고 아버지는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가정사도 복잡했다. J는 뚜렷한 거처 없이 어머니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던 아이였다. 언젠가 수업 중 “100만 원이 생기면 무얼 할 거야?”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J는 어머니께 휴대폰을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었다. 어머니께 전화 걸고 받는 법을 가르쳐드리겠다며.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 법이다. 한창 철없을 나이임에도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성숙한 모습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나는 한 달 남짓한 실습기간 동안 의젓하고 과묵했던 J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교육실습이 끝나가는 5월 말 무렵 J는 친구의 닌텐도 게임기를 훔쳤냐며 학생부장선생님에게 혼이 났었다. J는 계속 억울하다고 했다. 며칠 내내 선생님들께 불려 가서 혼이 나고, 하교 후에 혼자 남아서 세차를 하던(아마 벌로 세차를 했던 것 같다.) J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따로 J에게 어찌 된 거냐며 자초지종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J는 교생선생님에게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민망했는지, 별말 없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아끼던 아이였다. 나는 J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고 다 잘 될 거라 말하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J가 실제로 친구의 게임기를 훔쳤는지는 이제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연락을 받은 것은 교생 마지막 날이었던 6월 2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게 그날 찍은 J의 사진을 몇 장 보내달라고 하셨다. J가 하교버스에서 내린 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며, 실종 당시 아이의 모습과 정확한 옷차림을 경찰 측에 알려주기 위한 용도라고 하셨다. 누군가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J를 찾았다고. 처음 겪어보는 제자의 죽음이었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J는 집으로 가는 길에 미끄러져서 저수지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J가 내게 종종 간다고 말했던 집 근처 저수지였다. 지금 살고 있는 친척집에서 쫓겨나 조만간 다른 집으로 이사도 가야 하고, 학교에서는 도둑으로 몰려서(J가 훔쳤을 수도 있다.) 매일 혼만 나는 갑갑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잊고 싶었을까. 저수지 둑에 앉아 물수제비도 몇 번 던져보면서 저녁까지 한참 생각에 잠겼던 걸까. 어쩌면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을까. 그러다 다리가 저려와 집에 가려던 발을 헛디뎠던 걸까.
J의 사고 이후 실습학교에 간 적이 있다. 7개였던 책걸상이 6개가 되어 있고, 학급게시판에 붙어있던 J의 이름표와 작품 공간이 비워져 있었다. 교실 곳곳에 있던 아이의 사진은 담임선생님께서 다른 학생들이 보기 전에 다 떼서 태워버렸다고 하셨다. 상대적으로 지적장애가 심했던 나머지 학급 아이들은 주말 새에 갑작스러운 J의 빈자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친구의 죽음을 설명하기 막막했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하셨다. 나머지 6명의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나는 친구 한 명이 사라진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괜히 애석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J는 내 꿈에 두 번 나왔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생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억이다. 처음 꿈에서 만난 J는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가 다 울 때까지 토닥여주었다. 아직도 생생한 꿈 내용이다. 몇 주 뒤, 두 번째 꿈에서 나는 J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 그때 놀이공원에서는 마술쇼를 하고 있었는데 J는 내게 그 공연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돈이 얼마 없다고 말하니, J는 마술공연 보는 것이 자기 소원이라며 꼭 보여주시면 안 되겠냐고 내게 말했다. 간절한 부탁에 주머니를 뒤져보니 딱 아이 혼자 마술쇼를 볼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그렇게 꿈에서 나는 J의 공연표를 사주고 마술쇼를 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공연이 끝나고 나온 J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신이 난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밝은 얼굴이었다. 한껏 들떠서 마술쇼 내용을 설명해 주던 J는 내게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때 나는 J에게 꼭 가야만 하느냐고 울먹이며 물었고, J는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꿈속 J의 마지막 모습이다. 꿈에서 깬 뒤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J는 꿈에 나오지 않았다.
아카시아 꽃이 피는 이맘때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22살의 2017년도 5월이 생각난다. 교사로서의 보람과 행복 그리고 슬픔 모두 처음 겪게 된 한 달이었다. 아마 내가 교직을 마칠 때까지도 가슴 한 켠에 묻고 살아갈 기억들이 되겠지. 다가오는 6월 2일은 J의 기일이다. 지금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아서 가보지 못했지만 올해는 J가 있는 논산납골당에 찾아가 보려 한다. 지금쯤 J는 아픔 없고 편안한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꿈속에서 마술공연을 보고 해맑게 웃던 J의 얼굴이 떠오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