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야 잠이 드는 아기를 아침 일찍 깨워 일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종일 온몸이 아픈 늦깎이 초보 엄마인 나에게는 말이다.
일찍 눈을 뜬 아이를 토닥이며 다시 재우다 10시가 돼서야 겨우겨우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서 유산균과 먹이는 일은 이제 나의 일상 루틴이 되었다.
어느덧 휴직자가 되어 집에 있은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아이를 돌보고, 엄마로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육아로 긴장상태였던 나는 매일 온몸이 아팠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라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온몸이 아파 붙이던 파스 냄새가 익숙해질 때쯤 나의 삶이 한편으로는 참 무료하게 느껴졌다.
다들 말하듯 '엄마'로서의 삶은 있지만, '교사'로서의 삶도, '나'의 삶도 없었다. 육아라는 일이 가치 있고 생산적인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새 절박함으로 바뀌었다.
우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에, 가슴에 무엇이든 좀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으로 인한 커리어의 공백이 두려웠고, 무료해진 일상에서 다르게 숨 쉬고 싶었다.
나의 공허함을 세상의 많은 것으로 채우고 싶었다.
좋은 책, 호기심이 느껴지는 책이 있으면, 구입하기도 했고 가벼워진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있는 기회, 곧 서평 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오늘 아침.
내가 속해있는 단톡방에 유명 작가의 그림책 신간 서평 이벤트가 있다는 카톡 알림이 왔다.
'선착순'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아이를 옆에 둔 채로 빠르게 나의 기본 정보와 참여동기를 입력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으앙~~"하고 아기가 크게 운다.
정신이 번쩍 들어 보니 아기는 내 옆에서 아이스커피를 담아 둔 텀블러를 다 엎어서 쏟고 자기 옷은 물론, 나의 옷에까지 커피가 흥건하게 만들어 놓았다.
(참고로, 나는 밥보다 커피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기의 세상에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든다.
전날 배달 주문한 커피를 소중하게 텀블러에 담아두고 틈틈이 아껴먹을 생각이었는데, 나의 작은 행복이 매트 위로 남김없이 흘렀다.
거실 매트에 흥건해진 커피를 보며,
가슴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누르고, 아기를 째려(?) 보는데, 나를 향해 생긋- 웃는다.
사랑스러운 그 표정에도 불구하고
못 먹을 커피 생각과
아기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의 옷 또한 다시 챙겨 입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교차하며
아침부터 왠지 모를 짜증이 순간, 확- 오른다.
이틀 전에도 비슷하게 커피를 쏟은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내 안에 담긴 가징 앙칼진 목소리로 "이 놈!"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는 나름 단호했다.
아기가 살짝 놀라는 거 같았지만 노여움이 없다. 자기 잘못인지를 모르는 것인지, 엄마의 목소리가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 나의 얼굴만 붉어지고 헛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멈칫하다, 아직 덜 해소된 짜증에 나 조차도 억지스러운 행동, 아기의 엉덩이를 '팡팡' 때려준다.
귀여움에 반-해.
못 먹을 커피 생각에 내가 짠-해.
아기가 순간 엄마의 기운을 살피더니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아기를 보며 다시 한번
"이놈! 엄마 커피를 이렇게 쏟으면 어떻게 해?"하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닦을 것을 가지러 돌아서는 찰나,
느껴지는 마음.
'텀블러를 아기 옆에 두고도 엎지를 것을 몰랐던 거야?'
'이게 아이의 잘못이 맞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나는 알아야 했다.
사실, 아이를 옆에 팽개쳐 두고 서평 이벤트에 몰두한 것은 나였고, 이 일은 내 탓이었다.
아기의 세상에선 당연한 호기심 어린 행동인 것을, 아침부터 나라는 엄마는 아기 엉덩이까지 '팡팡' 때려가며 "이놈!" 이라고 고함을 쳤다.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외쳐본다.
'엄마, 이놈!'
엉덩이를 '팡팡' 맞을 사람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