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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t Nov 05. 2024

벽(2)


3.

"별 일 다 있네.”

마을엔 중국 관광객이 웅성거린다. 어디가나 마을 벽에 그려진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지난 몇 해, 대학생들과 자원 봉사자들이 환경미화 사업으로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주환의 동네는 벽화 마을이 되었다. 중국에서도 이런 풍경은 흔할 텐 데, 뭔 일로 여기까지 와서 구경한단 말인가?

주환은 심기가 편치 않다. 마치 이방인에게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다. 오늘도 그는 밤새 정리한 원고 뭉치를 갖고 출판사 몇 곳을 방문할 예정이다.

"잘 쓰신 것 같은 데 출판하기에는 다소 스토리가 약해서...”

"두고 가시면 잘 검토해 보고...”

그들이 결코 좋은 소식을 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토리. 구성, 그게 대관절 뭐란 말인가?

김주환은 이런 꼴을 숱하게 당하고도 여지껏 버텼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각기 다르고, 거꾸로 주환이 심사를 해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자신의 일이니 매번의 퇴짜에 마음이 상한다.

터덜거리며 걷노라니 그는 영락없는 잉여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만 있으면 오히려 잘 굴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 잉여라는 건 참기 힘든 일이다.

"에잇, 빌어먹을!”

그는 주머니에 있던 메모를 바닥에 내팽개친다. 돈만 있으면 차라리 자력 출판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이런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듯이, 그도 실제적으로 이런 위험을 감당할 수 있을까?

4.

마을 입구부터 관광객들이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른다. 거의 60~70도 경사에 주차한 차를 보고는 감탄을 지른다. 막 사람을 덮칠 듯 아슬아슬하게 주차한 걸 보면 가히 달인이라 할 만하다. 곳곳에는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댄다. 조그만 가게에서는 동네 주민 몇이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다.

"별 웃기는 꼴이구만. 뭘 볼게 있다고?”

"그래도 잘 된 일이지. 시에서도 마을에 관심을 가져주고 잘 가꾸어 주면 불법이라고 강제 철거는 안하겠지!”

자신들의 일상을 벌거벗김으로써 그들은 일종의 방패막이를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여기에 공원화 사업인가 뭔가를 추진한다던 데...”

"그럼 우린 어쩌라는 거야? 여태까지 '그냥 죽여라' 하고 버텼는 데...”

"그렇더라도 이주 대책은 마련해 주겠지 뭐”

벽화는 밖의 구경꾼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담장 내부 공간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시선을 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웬지 의도와 맞지 않는 것 같다. 무덤을 헐거나 그 주변을 감금함으로써‘대체 어떤 뻔뻔한 이들이 이런 짓을 하느냐'는 시선은 담장을 넘어 집 내부로 파고 든다. ‘마을 주민이 사는 곳입니다. 방해되지 않게 정숙을...'와 같은 보호색도 덧칠했다. 하지만 벽화는 오히려 내외부 모두를 주목하게 한다. 담장은 안팎의 분리가 아니라 그 모두를 관통하는 매개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이런 뻔뻔한...’이란 윤리대신, ‘어떤 사람들이?’하는 계급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주환은 그 성격 변화속에 있다.

̒이 놈의 벽을 헐어버려야 되려 파묻혀 살지. 주민들 생각처럼 관심을 받으면 동네가 남아 있기나 할까? 시에서는 오히려 마을을 정비해서 다른 볼거리를 들일 텐 데...'하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산 아래 동네와 지척지간엔 신축 건물이 치솟고 있다. 도시 재개발 사업과 더불어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대규모 금융 센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미터 옆 아랫 동네는 개발에서 소외되었다. 예전 상권과는 무관한 탓인 지 아예 손을 대지도 않는다. 하물며, 주환의 동네는 전혀 관심 밖이다. 하지만 시에서는 그런 무덤골이 거슬릴 것이다. 현대식 금융 중심지 곁에 공동 묘지라니!

미관 조성을 위해서라도 이 마을은 정비 수순을 밟지 않겠는가?

그러잖아도 그의 동네는 시민 공원으로 조성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중이다.

"아니, 한 쪽에서는 벽화마을이랍시고 관광 코스로 지정하면서, 또 다르게는 공원을 만든다니?”

"아, 어쨌거나 그럼 좋은 일 아닌가? 아파트도 짓는다는 데 그러면 분양권을 줄지도 모르잖아?”

"그걸 받으면 뭘해? 우리한테는 그림의 떡이지. 무슨 돈으로 입주를 해? 그리고 그동안은 어디서 살고?”

"어찌되겠지. 여태 버텨왔는 데 뭘!”

마을 주민들은 다가올 일에 은근히 불안하면서도 한 편으론 조그만 희망 같은 걸 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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