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LP판을 찾을까?

불완전함에서 피어나는 낭만

by 반향의 기록









비 오는 날이면 작은 이벤트처럼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카페에서 일했다.


평소에는 유튜브에서 3~4시간짜리 카페용 플레이리스트가 흘러나오고, 가게 한쪽에 자리 잡은 LP와 턴테이블은 인테리어 소품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또는 손님들이 요청하면 사장님은 유튜브를 멈추고 조용히 LP를 올렸다.


턴테이블 전용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와는 다른 경험을 심어주었다. 턴테이블의 볼륨이 더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일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보다 소리가 더 충만하게 퍼졌다. LP와 턴테이블은 편리한 재생방식은 아니다. 특히 가게에서 일하는 입장으로는 재생이 끝나면 다시 바늘을 올려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턴테이블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P가 돌아가는 순간 그 카페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조금 번거롭고, 조금 특별한. 그 카페만의 감성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요즘 음악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듣게 된다.

집에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 테이프,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가 자취를 감추고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음악이 손 안에 펼쳐진다. 이제 음악은 더 선명하고, 더 간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소유’하고, 직접 틀고 싶어 한다.








RIAA 2006-2022 LP/CD 판매량 보고서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LP 판매량은 2006년 최저점을 찍은 뒤 2022년에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량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 속에서도 LP 시장은 오히려 성장했고, 한때 음악 시장을 지배했던 CD는 서서히 판매량이 감소했다. 실물 음반 중에서도 대표적인 LP와 CD의 판매량이 이렇게나 차이 나게 된 것은 두 가지가 전혀 다른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단 증거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굳이 LP를 찾게 된 걸까?

우리는 초고속 스트리밍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수천만 곡이 펼쳐지고, 취향에 맞는 곡을 찾고자 굳이 힘들일 필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빈티지샵에 가고, LP바로 향하고, 바늘을 올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몇 초면 해결될 일을 더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듣기 위해 기꺼이 힘을 들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LP로 듣는 음악이 단순히 음악 재생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커다란 판을 손으로 꺼내고, 먼지를 털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올려야 한다.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야 하고 듣고 싶은 곡을 찾는 ‘건너뛰기’도 번거롭기만 하다. 이러한 불편이 음악을 음악답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감성’과 ‘낭만’이란 단어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레트로 열풍이 아니다.


우리는 온기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왜 LP의 소리는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LP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소리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디지털 음원이 기술적으로 더 정밀하고 편리한 방식이라면, LP는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디지털 음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마치 아날로그 음악을 ‘캡처’하는 일과도 같다. 원래의 소리는 연속적인 곡선인데, 이 곡선을 수천, 수만 개의 점으로 잘라내고, 각 점의 높이를 숫자로 기록한다. 이를 ‘샘플링’이라 부르고, 저장하는 과정을 ‘양자화(Quantization)’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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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정확하다. 하지만 그 정확함은 본래의 곡선을 '자르는' 방식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이 양자화 과정에서 미세한 오차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작은 차이는 ‘양자화 에러’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개별적으로는 미세한 차이일지 몰라도, 이러한 오차들이 누적되면 원래 곡선과는 다른, 조금 더 딱딱하고 인공적인 느낌이 생길 수 있다. 고해상도 음원일수록 이 차이는 줄어들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른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반면 LP는 이 모든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소리를 그대로 음반 위에 새겨 넣는다. 바늘은 홈을 따라 움직이며 실제 곡선을 진동으로 재현한다. 물론 LP도 잡음은 있다. 먼지, 바늘의 마모, 기계적 잡음 등. 그러나 이 노이즈는 재생된 횟수에 따라 시간에 따라 LP에 쌓인 먼지가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청자에게 다가간다.


디지털은 양자화를 거쳐 파일이 손상되지 않는 이상 소리는 변하지 않는다. LP는 소리를 자르는 방식이 없는 만큼 왜곡이 필연적이다. 둘중에 어느쪽이 더 정확하냐 물으면 당연히 디지털이다.


하지만 음악이 꼭 정확해야 할까?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LP의 재조명은 음악이 꼭 정밀하고 정확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소리에서 사람으로, 음악이 이어주는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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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다.

과거에 느꼈던 불편함은 지금은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반대로 지금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과거의 향수처럼 조명되고 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하거나 오래된 찻집을 찾아가는 일, 직접 손으로 편지를 쓰는 일. 우리는 종종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쏟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아무런 목적도, 실용적인 이유도 없이 선택하는 느린 길.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속에서만 느껴지는 감각을 사람들은 낭만이라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낭만을 위해 조금은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이 더 정밀하고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오히려 그 완벽함 속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스크린 속 데이터로 변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압축된 파일로 전달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연결되길 원한다. LP를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느린 것을 기다리고, 직접 손으로 만지며 음악을 선택하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행위다.


음악을 듣는 방식만이 아니다. 우리는 디지털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찾아 나선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나고, 종이책을 넘기며 페이지의 질감을 느끼고, 친필 편지를 받고 감동하는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버튼 하나로 수천만 곡을 즉시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바늘을 올리고, 먼지를 털고, 한 면이 끝나면 직접 뒤집어야 하는 LP를 사랑하는 이유도 같다.


이는 단순히 LP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속 스트리밍 서비스는 버튼 하나로 원하는 곡을 즉시 재생할 수 있어 빠르고 편리하다. 하지만 음악은 언제든 바꿀 수 있고, 흐르듯 지나간다. 이어폰을 끼면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여전히 음악은 머릿속에서만 울릴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LP를 찾게 된 게 아닐까. 아날로그 음악은 번거로움이 따르지만 그 불편한 속에서 우리는 음악을 더욱 낭만적으로 듣게 된다. 음악이 채운 공간을 향유하면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기억으로 남는다.


어떤 청취 방법도 라이브 연주의 떨림과 그 순간의 공기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된다. 연주자의 작은 실수마저도 순간의 감동이 되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교감을 나누게 된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그리고 다시 라이브로 향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본질적인 감각을 되찾아간다. 핸드폰에서 시작된 음악이 이어폰을 거치고, 그리고 LP를 지나 라이브 공연에 이르는 과정은 결국 소리에서 사람으로 연결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리에서 시작된 경험이 결국 사람으로 연결되는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된다.



가장 깊이 있는 울림



정말 좋아하는 가수가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부를 때, 무대에 열중하며 쏟아내는 모습을 직접 본다면 스트리밍이나 LP판으로 듣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감상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감각과 경험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찾아온 레트로 흐름과 LP의 존재감도 그러한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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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간편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점점 더 편리해진다. 더 이상 멀리 있는 가족과 지인을 보러 갈 필요 없이 안부 인사는 메신저와 전화로 대체한다. 그럴 수록 직접 몸을 움직여 이동하는 일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화면 너머로 느껴지지 않는 눈빛, 행동, 말투와 사람의 온기 같은 무형의 언어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기 위해 멀리까지 이동하게 된다.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조금 더 수고를 들이는 것처럼 소중한 사람에게 들이는 수고란 얼마나 들여도 아깝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여전히 편의성이 가득한 세상 속에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더 간편한 선택지는 널려있다.

다만 핸드폰을 켜고, 스피커로 듣고, LP를 틀어보고, 기회가 된다면 공연장을 찾아보는 것처럼.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던 사람이나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불완전한 순간을 나눠보자.




썸네일/1,4 사진 장소 제공: 수락산 케어프리 카페






Credits
Writers Choi Ahra, SeukA
Layout Design Park Minjae
Editor 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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