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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거 Jul 22. 2024

갈증 02

꿈속의 그녀

3월이 지나가던 어느 오후였다.

추위가 물러가고 따스함이 햇살을 타고 내려오는 기분 좋은 날씨였다. 교무실에서 기분 좋은 음악과 함께 모니터에서 시선을 내 눈꺼풀의 어둠 속으로 감추고 있었다.

'아, 오늘은 생명과학 수업준비도 다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김필 노래나 들으면서 눈 좀 감아볼까.'라는 생각이 무섭게


  "히히, 쿠쿠쿸"


 학생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어느 선생님의 유쾌한 수업 내용이 들어왔다. 말장난으로 시작된 학생들과 즐거운 지저귐 소리, 장난치듯 말을 거는 목소리, 나의 매화향기의 그녀였다. 이미 그녀의 정보를 주변에서 안 듣는 척하면서 모으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름은 구현아, 국어교육과를 나와서 학생들에게 공통국어를 가르치며, 도서관에 자주 나타나는 선생님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나이는 대략적으로 30대 후반, 결혼 유무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왠지 결혼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나에게 목줄로 다가왔다.

 


시골집 검둥개에게 아무렇게나 해준 노끈으로 둘둘 묶어서 만든 그러한 거칠고 거부하지 못하게 만든 그것이 내 목에 걸려있었다.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목줄을 잡아 끄는 듯 민호는 질질 끌려 일어나서 교무실 문의 유리와 교실 문의 유리 사이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교무실에 혼자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일어나 교무수첩 한쪽에 적어 놓은 '국어 선생님 구현아'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그 모습이 폴라로이드 카메라 필름의 한 장면처럼 그의 전두엽에는 이미 사진첩이 만들어졌다. 쉬는 종이 울릴 때까지 멍하니 사진첩에 넣을 그녀의 모습을 고르고 있었다.


쉬는 시간 학생들이 오늘 배운 내용에 대해서 신나서 떠든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귀의 고막에서 반고리관으로 이어져 뇌리에 선명하게 그녀의 목소리만 남아서 맴돌았다.




하루 종일 그녀가 나를 따라다니는 듯했다. 집에 가서 씻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았다. 지역 농협은행에서 일하는 아내가 옆에서 오늘 온 진상손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온통 그녀의 목소리가 따라다녔다. 귀에서 하얀 실이 나와서 환기를 위해서 열어 놓은 거실 창문을 빠져나가 그녀의 방 창문을 노크한다. 그리고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며 문이 열리면 목소리를 달라고 떼쓰는 듯하다. 나의 귀가 내가 아닌 것 같다. 먹먹하면서 즐겁고, 그녀의 목소리에만 반응할 수 있는 민감한 귀로 변해간다.


그날 밤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같은 학년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년 회식을 하는 이었다. 바로 옆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에는 기존에 알고 있던 선생님이 있었지만 그 선생님의 얼굴은 흐릿해진 지 오래다. 사소한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이야기가 중요치 않고 우리의 눈빛은 이미 서로를 원하듯 바라 보고 있었다. 테이블이 좁아서 그런지 그녀의 팔이 자꾸 나의 팔을 스친다. 그러다 아무도 안 보는 걸 확인한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터치해 본다.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 둘만의 공간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고, 점점 몸은 서로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술에 취한 기운이 느껴지고 숨결이 닿으면서 좋은 느낌과 설레이는 감정이 차올랐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 아래에서 손이 겹쳐 있었다. 심장 박동소리가 커진다. 우리의 상황은 금세 잊혔고, 고요한 향기가 퍼지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웃었다. 나의 미소에 맞추어 현아씨의 미소는 달빛에서 춤추는 것처럼 흐르며, 눈빛이 반짝였다.


"오늘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민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미소와 눈빛에 푹 빠져들었다.


"네, 좋아요. 그런데 우리 집은 저기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요." 달이 넘어가는 그 산을 보면서 민호는 설렘과 야릇함을 동시 느꼈다.


"당신과 함께라면 저 산쯤이야 가뿐하게 넘을 수 있죠."


민호의 그 말에 미소를 짓는 현아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면서 한 손으로 그의 팔에 매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방을 들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꿈속이지만 그녀의 온기와 달빛 아래에서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사랑해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넘어오려고 할 때, 잠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꿈에서는 괜찮겠지...


꿈이니깐 괜찮겠지...


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다시 재빨리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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