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퇴근하고 같이 노는 친한 개발자

이상적인 협업모델과 분업

by 그럴수있지


우리가 일하는 현장은 효율성을 위해 '분업'이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개발자는 코드를 작성하고, 기획자는 제품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사실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인위적인 경계일 뿐이다.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직접 구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들은 과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예술가였다.

개발자가 기획도 잘하거나, 기획자가 개발까지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각자의 전문 영역을 깊이 배워 취업 전선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발점은 전문화된 분업이지만, 진정한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때로는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단순한 업무적 관계를 넘어, 진정으로 가까운 동료가 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런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최고의 콤비들이 보여주는 협업의 모델을 통해, 기획자와 개발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의 모습을 그려보자.

업무 외 관계가 협업에 미치는 영향

업무 시간 외에 형성되는 개인적인 관계는 단순히 친목을 넘어 실질적인 업무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고 신뢰하는 팀원들은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갈등을 더 건설적으로 해결하며, 궁극적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의 개인적 유대감은 무엇보다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한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알고 신뢰할 때, 팀원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개발자는 "그건 불가능해요"라고 단정 짓기보다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비슷하게라도 한번 해보자!“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비공식적 소통 채널의 효율성

공식적인 회의나 이메일 외에도, 점심 시간이나 퇴근 후의 대화는 종종 가장 가치 있는 아이디어와 통찰이 오가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비공식적 소통은 공식 채널보다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교환이 가능하다.

MIT 미디어 랩의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협업이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이는 우연한 만남과 비공식적 대화가 혁신적인 아이디어 교환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잘 아는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조직 방법론을 계속 시도하고, 끊이지않는 소통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가까이 배치한다. 마찬가지로, 퇴근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개발자와 기획자는 업무 환경에서는 나누기 어려운 아이디어와 통찰을 공유할 수 있다.

갈등 해결과 오해 방지

친밀한 관계는 갈등 상황에서 특히 그 가치를 발휘한다. 서로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업무상 의견 충돌이 발생해도 이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갈 수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함께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팀은 그렇지 않은 팀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보였다. 개발자와 기획자가 함께 마감 시간에 쫓기며 함께 힘든 작업을 완성한 경험은 단순한 업무 경험을 넘어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서로의 업무 스타일과 선호도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면, 소통 방식도 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개발자는 직접적인 피드백을 선호하고, 다른 개발자는 더 완곡한 표현을 선호할 수 있다. 이런 개인적 특성을 알고 맞춤 소통방식을 적용한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업무 외 관계는 또한 서로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공식적인 업무 환경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재능이나 관심사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이해는 업무 분장이나 프로젝트 계획 시 더 효과적인 역할 배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퇴근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단순한 친목 활동을 넘어, 더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협업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협업 콤비들


역사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낸 팀들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깊은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협업했을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획과 개발, 비전과 실행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례들은 오늘날 기획자와 개발자의 관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기획자와 개발자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을 보여준다. 비전과 마케팅에 뛰어났던 잡스와 기술적 천재였던 워즈니악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단순히 업무 시간에만 만나는 동료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가치관과 열정을 공유했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우리는 함께 프랭크 자파의 음악을 들으며 기술과 사회에 대해 밤새 이야기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때로는 격렬한 의견 충돌이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제품을 향한 공동의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의 관계에서 주목할 점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성격과 강점을 가졌음에도 이를 약점이 아닌 상호보완적 요소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워즈니악의 기술적 혁신은 잡스의 비전과 마케팅 능력을 통해 세상에 영향력 있게 전달될 수 있었고, 잡스의 아이디어는 워즈니악의 기술적 실현 능력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었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스티븐 손드하임

음악 분야에서는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과 작사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협업이 주목할 만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함께 작업하며 이들은 서로의 창의적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번스타인이 음악적 구조와 멜로디를 담당했다면, 손드하임은 그 음악에 맞는 가사와 이야기를 입혔다.

이들의 협업은 단순한 업무 분담을 넘어 서로의 창의적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형태였다. 손드하임은 후에 "번스타인과의 작업은 마치 음악적 대화와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깊은 예술적 교감은 업무 시간 외의 친밀한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과학 분야에서는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의 협업이 역사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이들은 부부로서 뿐만 아니라 연구 파트너로서 방사능 연구에 함께 매진했다. 마리의 실험적 통찰력과 피에르의 이론적 지식이 결합되어 라듐과 폴로늄 원소의 발견이라는 혁신적 성과를 이루었다.

퀴리 부부의 사례는 개인적 관계와 전문적 협업이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실험실에서의 연구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과학적 토론을 이어갔고, 이러한 경계 없는 소통이 혁신적 발견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단순한 업무적 협력을 넘어선 깊은 인간적 유대와 상호 존중이다. 이들은 서로의 전문 영역을 인정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혁신을 이루어냈다. 오늘날의 기획자와 개발자도 이러한 모델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관계 형성을 위한 실질적 방법


막연하게 개발자와 기획자가 친해져야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오랜기간 함께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친해지기 마련이다. 다만 새로운 조직에 참여했거나 새로운 멤버가 들어왔을때라면 몇가지 물고를 틀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가장 쉽게는 Coffee-break나 점심식사를 제안할 수 있다. 예전에 겪었던 힘들었던 경험을 묻고 지금 조직에서 원하는 바를 질문하며 공통점을 찾아갈 수 있다. 물꼬를 텄다면 기회가 될 때마다 메신저로 소통하며 사담을 나누는게 좋다. 직장인들 사이에 회사 뒷담화만큼 끊이지않는 이야깃거리는 없으니 요즘 많이 회자되는 ‘블라인드’에 올라온 이야기를 꺼내보는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사담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면 마감 혹은 코드 반영일에 저녁을 제안하면 좋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에게 뒤풀이는 작은 보상중 하나다. 이 자리에서 회고시간보다도 더 진솔하게 프로젝트에 불만이 있는지 이야기하며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원격 근무가 늘어난 현대 업무 환경에서는 만나지 않을 때 전화통화나 메신저를 활용한 관계 구축도 중요하다. 슬랙과 같은 메신저에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채널을 만들거나, 화상 회의에서 업무 전 잠시 개인적인 근황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먼저 물꼬를 트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혹시 기대한 반응이 없더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충분히 가까워 질 때 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걸면 친해지고 싶은 동료에게 녹아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팀 변경이나 이직 후에도 네트워크 유지하기


평생직장의 개념이 느슨해진 요즘 이직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같은 팀에서 일하던 개발자나 기획자가 다른 팀이나 회사로 이동했을 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큰 가치가 있다. 같이 일했던 동료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한 인맥 관리를 넘어, 큰 자산이 된다. 많은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이 이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네트워크와 함께 시작되었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모이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다. 이미 검증된 전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와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했을때, 높은수준의 퍼포먼스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관계 투자의 가치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의 깊은 관계 구축은 단기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보상을 가져온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는 팀은 새로운 도전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더 혁신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5년 이상 함께 일한 팀은 새로 구성된 팀보다 복잡한 문제 해결에서 30% 더 높은 효율성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업무 프로세스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서로의 사고방식과 강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의 장기적인 관계 투자는 이러한 깊은 이해와 시너지를 가능하게 한다.

개발자와 기획자의 관계는 단순한 업무적 협력을 넘어, 진정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상적으로는 한 사람이 기획과 개발 모두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분업을 통해 각 영역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분업이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마리와 피에르 퀴리의 사례에서 보듯,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깊은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협업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이 탄생한다. 이러한 관계는 공식적인 팀 빌딩 활동, 취미 공유, 지속적인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구축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퇴근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한 개발자와 기획자는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팀과 조직의 성공에도 큰 기여를 한다.


우리는 4장에서 개발자와 기획자 간의 효과적인 협업을 위한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았다. 기술적 용어의 이해부터 시작하여, 적절한 질문과 대안 제시 방법, 기술적 결정의 이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시너지를 창출하는 인간적 관계의 중요성까지 다루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작용할 때, 개발자와 기획자는 단순한 협업자를 넘어 진정한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하고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


keyword
이전 16화개발자도 기획과 비즈니스를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