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우리 학교 일타선생님 정생물
2024년 1학기 나는 2학년 생활과 과학 12시간, 1학년 통합과학 4시간의 수업을 하게 되었다. 첫 수업 시간에 나는 연간 수업 및 평가 계획을 간단히 전달하고 보통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기도 하고,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궁금한 점을 작성하게 해서 이야기도 하고, 인생을 100점으로 만드는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올해는 첫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기 전에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좋아하게 된 데이식스와 영케이,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내 소개를 하다가 이 영상들의 공통점이 모두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남사친이라고 부를 만한 아직도 연락하는 아이들은 몇 명 없고, 생물교육과도 마찬가지로 우리 기수에 남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는데 다들 재수해서 의대로 가버려서 연락하는 남자 동기도 몇 명 없다. 이런 나에게 그나마 남자 사람 친구 같은 사람은 졸업한 제자 놈들인데 ㅋㅋㅋ 졸업하고 이 아이들이 30대가 되니까 말이 통하면서 웃긴 건 나는 자기들보다 최소 7살에서 15살 정도 많은 선생님인데 ㅋㅋㅋ 자기들을 가르칠 때 내가 20 대거나 3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때의 정생물을 기억하고 자꾸 친구처럼 대하거나 후배처럼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 30대가 되어 온 아이들이 아직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듯이 자기들 기억에 남아 있는 나는 20대의 좌충우돌 정생물이니까 눈앞에 앉아 있는 늙은 정생물을 봐도 한 번씩 내가 옛날의 나로 보이는 듯 ㅋ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여사친이 아니고 은사님이니까 더 예의 있고 다정하게 대해 줄 때가 많아서 만나면 훈훈하다 ㅋㅋㅋ
그리고 나는 생명과학 교사지만 남자와 여자는 같은 종으로 묶이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남녀의 뇌구조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ㅋㅋㅋ 누군가는 그게 남녀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문제라고 하겠지만(물론 사람의 문제인 거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암튼 내 기준 뇌구조가 다른 남사친과 교류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내가 친한 동성 친구에게서 받는 감정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남사친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과연 내 동성친구들도 나에게 저렇게 해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기준 내 동성친구인 여자애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성친구인 남자애들이라서 말했거나 보여줬던 행동을 몇 개만 정리해 보겠다.
1. 내가 힘들다고 할 때 왜 힘든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들어주거나 그냥 맛있는 거 사주면서 내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내가 왜 힘든지 알기를 원하지만 나는 내가 왜 힘든지 말하기는 싫고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럴 때 남사친들은 하나 같이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이유를 물어본다고 해도 내가 말하기 싫다고 하면 쿨하게 넘어가주는 경우가 많았음)
2. 자기도 피곤한 상황에서 차로 나를 데려다 주기(물론 나도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남자 동료 교사나 남사친 차를 타게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고, 동료 여교사 중에도 이런 일을 해주는 분들이 종종 있지만 대부분 여자들은 자기가 피곤한 상황이거나 자기 집에 갈 때 나를 데려다주면 동선이 엄청 좋지 않은 상황이면 나를 배려해 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남자 동료 교사나 남사친들은 그래도 일단 나의 상황을 먼저 고려해서 자기는 괜찮다면서 내가 조금 더 편할 수 있게 차로 우리 집 또는 내가 가야 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훈훈한 경우가 많았음)
3.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질투하지 않기(여자 친구들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물론 자기 일처럼 같이 좋아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질투를 느껴서 그걸 표현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데 남사친들은 그저 내가 좋아하니까 자기도 좋다 이런 느낌을 표현해 줘서 내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겨서 기쁨만 느끼고 싶은 상황에서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음)
4.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해도 편안함(내가 학교에서도 남자 교사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여과 없이 다해도 보통 남자 교사들은 어떤 큰 리액션이 없음. 정생물이 또 신났구나 아니면 또 빡쳤구나 정도의 리액션으로 내 말을 잘 들어줌. 하지만 여자 교사들은 나처럼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는 게 좀 어려움)
그래서 내 소개를 하다가 갑자기 여학생 밖에 없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왜 우리 인생에 남사친이 필요한가?"에 대한 내 생각을 수업 첫 시간에 이야기했는데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인스타에 올려서 그다음 반 수업을 들어가니 아이들이 남사친 강의 해달라고 하질 않나 ㅋㅋㅋㅋㅋ 그래서 신나서 이야기해 주고 난 뒤에 수업 마치는 종이 치면, 교탁 앞으로 다가와 엄지를 들이밀며 "진짜 최고였어요"라는 강의 후기를 나에게 말해서 나는 생명과학 수업할 때 이런 취급을 한 번도 안 받아 봤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인문학 일타강사 느낌이잖아 ㅋㅋㅋ
2024년 우리 학교 최고의 명강의를 여기서 다 할 순 없고, 남사친이 필요한 이유를 두 줄 요약하기 느낌으로 정리해 보면 물론 우리랑 이야기가 잘 통하고 내 이야기에 공감을 잘해주는 친구들은 동성 친구지만 뇌구조가 우리와는 다른 남사친과 이야기하다 보면 또 다른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남자 친구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남자 친구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고, 요구하게 되지만 우리가 남사친에게 뭘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암튼 우리 학교에는 여중, 여고를 다니는 애들이 많아서 강의 끝에는 대학은 제발 여대 가지 말라고 공부를 잘해도 이화여대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뭔가 우리랑 뇌구조가 달라서 같은 종으로 묶이는 게 이해는 안 되는 그들이지만 동성 친구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그들만이 가진 매력이 있는 건 확실하다. 우리 인생에 남사친이 있다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