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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추억

- 그림 카페

by 넷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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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그림으로 그려진데다 납작한 평면처럼 보이는 종이집 같은 카페가 있다. 벽면을 제외하면 일종의 착시일 것이다. 색이나 음영을 없애고 선으로만 그려져 극단순화되었다. 옛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간혹 사람이 들어가 만화주인공 하고 춤추고 노래 하는 걸 봤는데, 카페 주인은 혹시 거기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남편이 적록색약인데, 나는 그 세계를 잘 모르지만 살면서 보니 그닥 불편한 것은 없는 듯하다. 같은 적록색약 친구들과는 핸드폰 충전기가 적색에서 녹색으로 바뀐다는 것을 2년간 아무도 알지 못했다거나, 네비게이션에 표시된 정체구간과 원활구간의 구분이 안된다던가, 세탁을 잘못해 분홍색으로 물든 흰옷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거나 하는 정도일 뿐이다.


동물 중에 총천연색을 완벽히 볼 수 있는 건 인간뿐이라는데, 색약이나 색맹이 아니더라도 약간씩 사람마다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SNS에서 이 드레스가 파란색이냐 흰색이냐를 투표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사람은 검정과 흰색 두가지 사이에도 256 단계의 음영을 인식한다. 3원색에 256 음영을 구분하여 조합된 색을 인식한다고 하면 대략 1천7백만 색을 보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모두 다 똑같이 색을 인식하는 건 아닌 것이다.


한데 이곳처럼 흰바탕에 검정선만 있는 세계라면 적어도 색에서 만큼은 누구에게나 같게 보이겠다. 마치 그림책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거울속과 창문밖의 풍경이 오히려 낮설다. 여기 오는 손님들은 모두 엄청나게 튀는 3D 올컬러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1982년 컬러TV가 처음 나오기 전엔 모두 흑백TV였다. 흑백TV에서 주말의 명화로 고전영화를 섭렵하던 시절, 그 실제 색이 어떠할지는 오로지 상상의 영역이었다. 그때 영화학도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던 누군가 중엔 올컬러시대에 적응을 못해서 꿈을 접었을 수도. 이제는 현실보다 더 화려한 색의 초고화질의 TV들이 즐비해 리얼보다 더 리얼해졌다.


가만히 시간이 흐르니 늦은 오후의 햇살이 옅은 커피색을 띠며 실내를 비춘다. 하얀 도화지같던 면면이 오로지 햇살로 물들어간다. 붓으로 그려 손맛이 느껴지는 검은 선들이 몹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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