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ook H Aug 12. 2024

밤하늘 별 바라보기

엄마로서 가져야 할 마음 가짐.


오랜만에 밤하늘에 별들을 감상 중이다.


까만 하늘, 그리고 별.

언제나 같은 모습 그대로인 하늘을 매일매일 바라보면서도 별들을 이리도 좋아할 수가 있을까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진 매일매일 나와서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했다.

장마가 시작되고부터 습한 날씨로 밤기온도 후덥지근해지고 실내 에어컨 바람의 시원함을 놓을 수 없어 마당에 나와 앉아있기가 꺼려지길 며칠....

 

끝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끝나고 폭염주의보가 매일 발령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밤에 나와 이렇게 별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하늘에 별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


무심코 올려다보는 하늘에 별이 몇 개 없어 보여도 가만가만히 시선을 하늘에 두어 어둠에 익숙해지면 시야가 밝아지면서 숨어있던 별들이 쏙쏙 몸을 드러낸다. 그럼 하나둘 밖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무수히 많아지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내가 들을 감상을 할 수 있게 몸을 드러내어준 별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그렇게 나는 별들이 지켜보는 하늘 아래서 브런치 글을 작성할 요량으로 태블릿을 꺼내어 들었다.






오늘도 딸아이를 데리고 베이커리로 향했다.


매일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카페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 언니들에게 말을 건네 보이며 친해지고 싶어 하는 딸아이다. 그 모습이 전부라면 안쓰러운 마음에 예쁘기만 할 텐데....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 때론 힘듦을 만들어 내기도 다.

 

카페로 들어가기 전부터 우린 메뉴를 정한다.

정해진 메뉴로 입을 맞추고 들어가선 엄마가 주문하는 것만 지켜보기로 그렇게 우린 약속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많은 종류의 빵들이 진열되어 있다.  엄마가 쟁반과 집게를 잡으면 녀석은 빵을 고르기 시작한다.


"주하야, 오늘은 샌드위치가 많이 나왔네. 저기 가서 보자."


"악! 진짜야???!!! 악!"


하지 말라고 하는 일들에 녀석은 자기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제지당하는 일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며 조용히 있으란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요란스러운 행동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딸이다.


이럴 줄 알면서 나는 또 딸아이에게 얌전히 있어주기를 바라며 기대를 했다.

딸아이가 조용히 사람들 속에 묻혀주기를.....


그리고 늘 딸아이는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튀는 행동을 해 보였다.


딸아이의 튀는 행동이 보이자마자 엄만 딸을 쫓아가다가 말고 벌게진 얼굴로 재빨리 방향을 어 반대편에서 빵을 구경했다.


그러면 딸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고 풀이 죽어 엄마를 따라온다.


왜 그게 그렇게 안될까.....


매일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 보이고도 엄마에게 미안해서 엄마를 애써 부르며 엄마의 화를 확인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 엄만 또 자책....

그래그래 엄마가 좀 너무했지....


그렇게 우리 모녀는 매일같이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위해주며 서로를 걱정했다.


그리고 딸아이와 빵을 고르고 카운터에 가서 음료를 주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카운터 언니에게 말을 건넨다.


"언니 뻐요!!!"


녀석은 쁘다는 말을 하면 사장님들이 보통 서비스음식을 내어주는 걸 득했다.

그래서 상대에게 이쁘다는 인사를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런 부분에서도 엄마의 제지가 들어간 지 오래다.


그럼 녀석은 더 그런 돌출 행동을 해 보이며 카페사장님 앞에서 빵을 향해 혀를 날름 거리는 제스처를 해 보이며 빵을 달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녀석의 특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녀석을 보면서 가정교육을 운운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안 해본 방법들이 없었다.

매를 들어보기도 하고 화를 무섭게 내어보기도 했던 긴 시간들은 그저 아이를 바꾸려 했던 엄마의 욕심이었음을,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일이었구나 깨달으며 그렇게 늘 마무리가 되었다. 중요한 건 아이를 바꾸려 아이의 황소 같은 고집을 꺾느라 온갖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다 보면 우리의 일상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손님이 많은 관계로 언니는 음료를 만들러 가고 녀석은 그런 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서있다.

그럼 엄마는 그런 녀석의 뒤에 서서 오늘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약간의 창피함, 약간의 비참함, 그리고 녀석에 대한 짠함....


"주하야, 이리 와. 어서."


엄마의 부름에  녀석은 엄마를 따라 자리에 앉아서 빵을 양손에 가득 들고 우적우적 먹는다.

입안 가득 소스를 묻혀가며 그 또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녀석의 특유 행동임에 이해를 해야 했다.


녀석은 뭐든 과하고 넘쳤다.


그 행동이 좋건 나쁘건 녀석은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애썼다.

그게 녀석의 본능이며 제지를 하면 녀석 안에서 불편함과 동시에 반감이 밖으로 튀어나와 더욱 문제행동들을 가중시켰다.


녀석의 그런 행동들로 인해 정신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약을 먹여야 하는 게 맞을지, 그대로 녀석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몰랐다. 평소 모든 부분들이 녀석의 귀여움에 덮여 심각성이 안 느껴지다가 중학교를 다니면서 단체생활에 대한 어려움에 녀석의 불만이 때론 위험한 상황만들었기에 우린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의 답은 달랐다.


약을 꼭 먹여야 한다며 어떻게 약을 먹일생각을 안 하냐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며 무표정한 얼굴에 무성의한 말투로 부모를 무지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는 그를 보며 우린 신뢰 대신 불신만 생겼다.


그런 의사 앞에 앉아 상담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의 딸이었어도 저렇게 쉽게 정신과 약을 먹여라 이야기가 나왔을까. 아마도 저분은 아픈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 듯 보였다.


우린 다른 병원에 예약을 잡아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은 얘긴 약을 먹일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며 좀 더 두고 보자 하셨고,  그 후 의외로 정신과가 아닌 산부인과 선생님을 뵈면서 우리의 고민은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프래더윌리 전문의인 친구가 있어 물어봤는데 이 아이들의 성향이 원래 그런 거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냥 받아들이며 사는 수밖에...."


우리의 생각도 같았다.






빵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셰이크 한 잔을 꾸역꾸역 먹어서일까 집에 도착해 한참 구토를 하고 손발이 바르르 떨려왔다.


신랑과 딸아이가 엄마 괜찮냐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화장실 문 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섰다.


고마웠다.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걱정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의 요란했던 아픔은 순식간에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아픔이 진정이 되고서 우린 테이블에 도란도란 둘러앉았다.


저녁을 늦은 시간까지 먹지 못한 신랑에게 스파게티를 해 주고 아빠 혼자 먹는다며 투정 부리는 식탐 많은 딸아이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꺼내었다.


그리고 엄만 오늘 한잔도 먹지 않은 커피를 이제야 하나 꺼내 들었다.


커피는 내게 보상 같은 의미다.

힘든 하루를 보상하는....


그렇게 우리 셋은 얼굴을 마주 보며 한 식탁에 앉아 함께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딸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주 작고 당연한 일상에 행복으로 가슴이 벅찰 때가 많았다.


그리고 또 우리 부부는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운다. 보통 우리 부부의 이야기 화제는 딸아이다. 딸아이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오늘도 나는 하루를 정리하듯 신랑에게 내 생각을 말한다.


내 아이는 어떠한 행동들도 다 할 수 있다고.

튀는 행동도, 일반치 않은 행동들도 다 할 수 있는 아이이며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한데 그 모습에 힘들어하는 건 내가 못나서지 딸아이가 원인이 아니야. 딸아이로 인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느끼는 것뿐이지, 딸아이로 인해서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아이는.... 엄마인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를 늘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바로서야 그런 딸아이를 옆에서 지켜 줄 수 있으니 지금 현재 중요한 건 내가 건강한 생각으로 바로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바로 서야 그런 딸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일관된 마음으로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어른이 되려면 멀었구나. 그래도 이런 알아차림이 어디냐.'


엄마가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알아차리고 어찌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개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니 엄마는 오늘도 너로 인해 어른이 되어 간다.


평소 그림을 그리면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자주 듣곤 하는데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스님이 그 질문에 대한 을 내어주시는 모습에서 내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 지옥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지옥이란 불구덩이 속에서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법륜스님께 살려달라 말하는 형상과 같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그 원인들은 모두 자신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불행이었다. 사람들 하나하나 얘기를 듣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안에서 불행을 만들어 허우적댄다. 그리고 나 자신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 또한 아이로 인해 힘든 게 아니라 내가 불행을 자초하는 것임을 자각한다.


왜 장애가 있다고 힘들다 생각할까? 그것 또한 편견일 뿐인데. 사람들 안에서 딸아이가 튀는 행동을 보여 내가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힘들어하는 이유가 정말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편견과 나의 편견 속에서 창피함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는 창피한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그렇게 생각의 차이로 내 행복과 불행은 갈려진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결론이 나온다.

'난 힘든 게 없구나. 별 일도 아닌 일에 내가 힘듦을 자초하고 있구나. 내가 바뀌어야겠다.'


사회생활이나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그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사람이란 별거 없구나. 그냥 다 거기서 거기구나.

인생 또한 별거 없구나 다 거기서 거기다.


별거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서 별거 아닌 세상을 살면서 힘들어할 일이 뭐가 있고 큰일이 뭐가 있을까?


그냥 모든 걸 자연스럽게 겸허히 받아 들이며 살면 그뿐이지 않을까 그게 사는 것이리라. 그게 인생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 세 식구.

엄마 아빠 앞에서 방탄소년단 지민이 오빠 발사이즈를 묻는다.


엄마 아빠는 네이버에 검색해 보라고 얘기해 준다.


"주하야, <방탄소년단 지민 발사이즈>라고 치면 나올 거야."


엄마 말에 따라 검색을 해보고 결과가 나오니 녀석이 신나 한다.  그리고 지민 오빠 신발을 사야 한다며 열심히 온라인 쇼핑 중이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귀여움에 웃음이 나온다.


애교가 얼마나 많은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아이처럼 녀석의 귀여움은 아빠엄마의 힘듦을 행복으로 걸러내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녀석과 오랜 시간 이렇게 껌딱지처럼 붙어서 지낼 수 있는 이유다..


내가 힘들어한다는 건 나 자신이 나약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 녀석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고 엄만 오늘도 다짐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