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ook H Aug 13. 2024

폭우가 내리던 날

살아간다는 건.....

"주하야, 우리 커피 마시러 나갔다 올래?"


우리 집엔 60 킬로그램이 나가는 거견 체리 녀석이 있다.  그레이트데인 부견과 래브라도 레트리버 모견 사이에서 태어난 녀석이다 보니 그레이트데인의 유난히 겁 많은 성격과 예민한 레트리버인 엄마의 성격을 닮아 무척이나 여리디 여린 녀석이다.


그런 녀석은 매일같이 나에게만 시선을 꽂아놓고 내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고 내가 부동자세면 녀석도 인형처럼 꼼짝 않고 앉았다.


하루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날엔 이 녀석도 내 옆에서 그렇게 가만히 누워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며 버티다 버티다 심심하면 낑낑거리며 내게 와서 안긴다.


오늘도 그런 녀석을 보며 안쓰러워 딸아이에게 체리 데리고 간식 사 먹이러 나가자 했다.


우리 거북이 딸아이는 잠깐의 외출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녀석의 나이가 열아홉이 될때까지 봐왔으니 그런 녀석 으레 기다려주는 건 당연지사였다.


딸아이와 매일같이 붙어 있으면서 우리의 하루 중 외출하는 빈도 횟수도 적지 않았다. 그로인해 우리의 하루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한다. 잠깐잠깐의 외출은 딸아이나 엄마에게 기분전환도 되고 좋다. 




차에 올라 우린 옆동네로 건너갔다.


시골로 이사 온 지 10년이 넘었건만 누가 어디 사냐 물으면 여전히 외지인이라 대답한다. 집성촌인 줄 모르고 이사를 왔다가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었는지 모른다.  이들의 성향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아무런 마음가짐 없이 왔다가 된통 고생한 꼴이었다.  이들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처음 봤다 했겠지....


동네사람들이 불편해 우리의 외출은 늘 건너 건너 동네가 되었다.  


그렇게 건너 동네로 차를 향해 간 곳은 농협 하나로 마트.  우선 멍뭉이 체리와 주하의 사랑 지미냥이의 간식을 사고,  쫀득이 두 개를 집으며 저녁에 영화 보며 먹자 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00 카페로 가서 딸아이는 블루베리라떼를 주문하고 엄만 마끼야또 아이스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디 여행 다녀오셨어요?"

"아뇨. 항상 집콕인걸요."


우리의 행선지는 늘 단골로 만들어놓은 가게이기에 그곳엔 항상 친숙한 사장님들이 존재한다.  사장님들의 인성이 좋은 곳만 골라 다니는 것 같다.


오늘도 녀석은 사장님께 이런저런 말들로 친숙함을 쌓고, 엄만 뒤에서 그런 녀석 뒤통수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적당한때에 분위기 썰렁하지 않게 말을 받아 이어주곤 한다.


그러고 있자니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지더니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들이 우두둑 떨어지면서 온 세상이 비로 가득했다.


카페문을 열고 나서려니 빗물들이 세차게 몰아쳐 순식간에 우린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고 말았다.


운전대를 잡고 집을 향해 달리면서 빗물에 젖은 몸이 에어컨 바람에 닿자 으스스 추웠다.  그런 순간에도 우리 딸아이의 귀여움은 여전히 뿜뿜 뿜어졌으니...


"구두구두!! 내 구두!!! 구두 망가져!!!"


엄만 세차게 몰아친 빗물이 손에 쥐고 있는 커피 안으로 들어갈까, 녀석 몸이 젖을까 그게 걱정인데 반해 녀석은 엄마에게 소리치며 자신의 구두가 망가질걸 염려했다.


굽이 높은 구두를 좋아하고, 짧은 치마를 좋아하며 화장하기를 좋아하는 천생 여자인 딸아이다.

그 와중에 구두를 외치며 구두 괜찮은 거냐 엄마에게 묻길 여러 번....


그런 녀석 바라보며 빙그시 웃어 주었다.


그렇게 집을 향해 운전대를 잡고 있자니 자동차 유리창으로 세차게 부딪히는 빗줄기는 우리의 옛 힘든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한겨울에 구두를 고집했던 일곱 살짜리 고집불통 아가씨, 겨울이면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기 십상이었던 녀석이었기에 구두를 못 신게 하니 녀석과의 신경전으로 힘들었던 날들.


배꼽티를 굳이 입겠다 고집 피우는 배볼록 통통 아가씨.  살 빼고 입으라 하니 하의를 배위로 당겨 입어 배꼽을 그렇게 가려서라도 배꼽티를 입고 말겠다는 그런 딸아이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땐 그 모든 게 다 심각했고 심리전이 있었으며 고집불통인 딸아이가 그저 힘들다고만 여겨졌다.


녀석의 손을 잡으며 엄마가 말했다.


"주하야, 그동안 우리 참 힘들었다. 주하도, 엄마도, 아빠도. 그렇지?"


"아, 몰라!!! 아 체리야!!!!"


괜한 화살이 또 체리에게 꽂혀선 체리에게 화를 내다 말고 눈물을 글썽인다.  감성이 예민한 딸아이에게 엄마가 또 눈물샘을 자극시켰나 보다.


집에 도착할 때 까지도 비는 그칠 생각을 않고 바닥에 굵은 빗줄기가 탁탁 튕겨가며 물을 튀긴다.


"엄마, 비 맞아도 돼?"

"에이, 이왕 맞은 거 그냥 우리 비 맞고 샤워하자."


우린 집에 도착해 마당에 주차를 하고 체리와 함께 비를 맞으며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신나게 뛰어다녔다.


피부로 비를 느끼고 머리 위로 두둑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땅 위로 올라오는 비냄새를 맡고, 그런 풍경에 미소가 절로 났다. 그리고 풀밭에서 벌레도 통통 튀어나왔다. 그렇게 체리와 딸아이와 엄만 마당에서 몇 바퀴 뛰고는 누가 먼저 들어가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현관문을 향해 달렸고 딸아이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문 앞까지 막 도착한 엄마를 뒤로하고 문을 탁. 잠갔다. ㅠㅠ


늘 녀석이 하는 장난 중 하나였다.


가끔 녀석이 삐지면 마당에 잠깐 나가있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어느 결에 문을 잠가버리기도 한다.

여름엔 그런대로 딸아이에게 쫓겨나도 괜찮은데 추운 겨울엔 너무 오랜 시간 쫓겨나 있을 땐 힘들더라. ㅠㅠ


예전엔 알지 못했다.


무언가 자꾸 바랐고 무언가 더 있을 것 같고 무언가를 위해 계속 노력을 하며 살았다.

한데 한해 한해 나이를 먹고 그렇게 세월을 지내보니 그냥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이 모습이 사는 거더라.


쫓을 필요도 쫓길 이유도 무언가 이룰 것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우린 충분히 행복했다......


오늘도 우린 그랬다....












작가의 이전글 밤하늘 별 바라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