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신랑에게 이렇다 설명도 없이 주하를바꿔달라 했다.주하 역시 비몽사몽 잠에서 막 깬 목소리로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주하야!!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가자!!!"
엄마는 늘 즉흥적이었다.
여행도 잠잠하게 일상을 지내다 가고 싶으면 가방을 챙겨 떠나곤 했다.
신혼 초엔 신혼여행 빼곤 제대로 된 여행이란 걸 해본 적 없으니 늘 신랑만 바라보고 신랑이 데려가주길 바라며 신랑만 의지했다. 항상 계획적인 성격의 신랑과 가고 싶을 때 가야 하는 즉흥적인 아내는 처음부터 삐걱거렸고 어느 순간 '에이, 혼자 가지모.' 하고 딸아이 옆에 끼고 그렇게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엄만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생각했던 긴 결혼생활이었는데 요즘 들어 깨닫는다.
엄만 주하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주하가 늘 함께였고 늘 엄마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녀석이 발달장애 아이다 보니 때론 집착과 감정기복으로 힘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날도 우리의 삶의 절반은 되었나 보다. 한데 그에 비례하게 녀석의 귀여움과 애틋함도 늘 함께였다.
어제그제 비가 왔다.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 외에 시간은 늘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차를 타고 나간다. 한데 비가 오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던 이틀.....
신랑이 양평집에서 열심히 잘라 가져온 장작이다. 매일을 장작불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별밤을 감상하는 아내다. 오늘은 장작불에 무얼 구워 먹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10월 16일. 우린 결혼을 해서 1년 만에 주하를 가졌다.그리고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주변인들이 말해 주어 알게 되었다.
"너 왜 이렇게 살이 올랐어?
선숙아. 너 혹시.... 테스트해봐."
"응??? 뭘???"
주하를 낳고부터 쭈욱....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조용히 지냈다.
아이가 아프다 보니 부모로서 죄책감이 들었고 엄마아빠가 안 만났더라면 네가 이렇게 아프게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늘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할 수도 축하받지도 못했다.
그렇게 며칠 전....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올해도 돌아왔고 나는 신랑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그렇게 해서 초밥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우리 귀염둥이 딸아이와 함께.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결혼기념일에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그림 한 점 한 점에 보증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냥 A4용지에 복사하는 것이 아닌, 내 그림을 구매하는 고객이 소중하게 간직할 그런 예쁜 보증서를 만들고 싶어 디자인을 하고 사진인화하는 곳에 파일을 보내 출력을 했다.
긴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한 보람이 있어 기분이 좋았던......
7월 국전에 이어, 10월 경기미술대전에도 내 그림을 출품할 수 있게 되었다.
세 가족이 모두 함께 미술관으로 출동했던 날.....
참,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이름은 흑당이.
전 견주가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매일 집에 혼자 있는 녀석을 마음 아파해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다며 눈물을 머금고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흑당이와 함께 온 흑당이 짐이 어마어마했으며 그 짐들에 내용물들을 보면서 흑당이 엄마가 흑당이를 정말 자식처럼 키웠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포메라니안 견종이 좀 깍쟁이일 줄 알았는데 공주대접받고 자랐을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얼마나 털털하게 사람들을 잘 따르는지 모른다. 성격 좋고 매력덩이인 욘석과 주하가 한 팀이 되어 지낸 지 벌써 2주가 흘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