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 딱딱한 네모박스 같은 자동차들, 빨간 불빛이 연해졌다 찐해졌다 번짐을 반복한다. 졸다 깨다 하듯 흠짓흠짓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모임장소 근처에 도착해 눈대중으로 지도를 확인한다. 위치를 머리에 새기고 삼겹살집을 찾는다. 월요일이기에 당연히 주차도 여유롭게 할 줄 알았는데 도착해서 20분째 모두가 하얀 띠의네모칸을 찾는다. 빨간 번짐이 가득한 골목미로 속에 갇혀 헤매고 그 미로를 이리저리 눈과 고개와 핸들을 굴려 간신히 풀고 빠져나왔다. 네모박스 문을 잠그고 지금은 더 빠른 나의 두 다리로 꽤 걸어 딱딱해지려는 손과 얼굴을 비비며 삼겹살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고급인테리어와 주황색 깨끗한 불빛으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티를 냈다.
와.. 만석이다. 다른 테이블 위에는 벌써 초록색 병들과 투명한 빈 술병들, 뒤로 젖혀진 허리로 모든 말하면 다 허락해 줄 것같은 즐겁게 풀려버린 얼굴들로 인사불성의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안내해 준 예약 테이블은 다행히 제일 구석에 문 울타리가 있는 인사불성 도시와는 좀 떨어진 섬같은 조용한 방이었다.
8년 전 시작된 모임. 예전에는 자주 만나 함께 땀 흘리는 사이였다. 지금은 각자의 위치의 사연으로 모임이 유지되진 않지만 1년에 한 번 얼굴을 마주 보여 안부를 묻는다. 걱정을 덜어주고잘 살아있다는 서로의 확인시간인 것이다. 소중한 시간. 반가운 사람들.
언니들 3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이야! 머리를 다 잘랐네! 스타일들이 너희 둘이 똑같다 흐흐!"
반갑게 눈으로 외관을 스캔하며 인사를 나눈다.
"술 먹는 파는 이쪽! 안 먹는 파는 저쪽으로!"
나는 저쪽이 되었다.
"술 안 마셔?" 언니들의 물음에 술끊었다는 신호를 하자마자 다음 동생과 언니들이 우르르 들어와 모두 한데 모였다. 정신없이 대화가 레이저처럼 나한테서 저기로 이쪽 끝에서 저 너머로 사방으로 입에서 형형색색 광선들이 나가며 쇼가 펼쳐졌다.
자리에 앉았다. 술 먹는 파 5명, 술 안 먹는 파 5명. 오늘은 정확한 수치로 갈렸다.
일정한 규칙이 있지만 사정없는 깊은 칼집이 내져 있는 삼겹살을 먹으며 대화의 레이저쇼가 화려하게 이어졌다.
월요일이니 부담스럽지 않게 헤어지는 시간을 정확히 22시로 정하고 2차로 이동했다.
퓨전 요릿집이다.
술 안 먹는 파들이 하이볼을 시킨다.
"여기 하이볼 4 플러스 1이야"
"무알콜,탄산수 선택이 있어"
4명이 시키는데 1잔이 서비스로 나오니 나도 시키라고 얘기한다.
"옹 좋아! 그럼 청귤하이볼 탄산수로 할게!" 무알콜도 술맛이 나는 것이 싫었던 4명은 탄산수로 주문을 했다. 제주도의 귤밭을 연상시키는 하이볼이 싱그럽게 만들어져 나왔다.
너무 예쁜 하이볼 때문에 술 먹는 파들의 테이블 앞에 있는 단순해 보이는 소주, 맥주의 부러움을 받으며 침샘 자극으로흐르는 침을 꿀떡 삼키며 건배를 했다.
다들 한 입씩 들이켰다. 섬의 물결과 싱그러움이 꿀꺽 소리 내며 제주도목구멍 폭포를 따라 몸 안으로 청량하게 들어가는 것이 겉으로도 투영되었다. 나는 사장님께서 놓친 빨대를 다시 챙기느라 아직 폭포 매표소입술에도 집입하지 못하고 침만 삼킨 상태였다.
그런데 술을 한잔도 못하는 언니 왈.
"이거 마치 술 같아. 쓴맛이나."
사람들이 기미하 듯 다시 쩝쩝 먹어본다.
"달다. 맛있네! 술맛이 조금 나긴 하는 것 같다.""신기하네!"
의심 없이 시간이 흘렀다.
한 모금씩 더 빠른 물살의 폭포가 만들어졌다.
사진을 찍고 가져온 빨대를 꽃았다. 나도 기대감이 극도로 치닿았다. 먹으려고 손잡이를 드는데 언니가 이상하다..! 얼굴이 벌게지고 몸에 힘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뭐지!! 사장님!! 을 불렀다. 아니 급하게 호출했다.
아... 무알콜, 탄산수를 고르는데 무알콜은 알코올이 없는 것이 맞고 탄산수는 진짜술이 들어가고 토닉워터대신 탄산수라고.. 설명해 주셨다. 의심했던 것이 정답인 것을 안 순간. 의심의 봉인된 울타리가 무너지며 언니는 더욱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물을 찾고... 얼굴과 목은 화산이 되어갔다. 어깨는 안으로 점점 말리며 동그레 졌다.
그리하여 하이볼음료가 아닌 술들은 고스란히 옆테이블의 술파로 강제 이송되었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한 모금도 입에 안된상황이 신기할 따름이다.금주하고 주문하는 감도 잊었나 보다.나도 의심 없이 탄산수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여기는 술집니다. 그렇게 어리둥절 신기하게 먹지 않았다. 금주의 소중한 나의 현실에 나도 모르게 알코올이 들어올 뻔했다.
이벤트적인 하이볼 사건으로 우리는 재미있어 웃고 어이가 없어또 웃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하이볼에 들어간 양주를 꿀꺽한 언니를!! 진정시켰다.
모두 흰 옷을 입은 상황에서 김치찌개를 푸다, 빨간 총알들이 파다닥 사방으로 튀었는데 나만 그 많은 총알들을 어리둥절하게 피한 웃픈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