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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술을?

해맑금주(金作)88일째

by 샤인진

운동모임 송년회날.

언니, 동생, 오라버니, 어르신등 다양한 빛깔 나이를 가진 4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빛깔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 종목의 특성으로 마치 증조부터 조카, 어린아이, 친척들까지 한가득 한자리에 모인 것처럼 클럽 가족들로 꽉 찼다.

간단한 음식들이 식탁에 차려졌다. 그 주위로 야외에서 모닥불 피우듯 음식과 사람들이 점점 커지는 불씨에 옹기종기 따뜻함을 쬐고 나누었다.


행사의 묘미!

알루미늄 통에 사사삭 달그락 이름이 쓰여있는 경품 종이가 흔들린다. 어떤 마음상태였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모두를 한꺼번에 설렘으로 만드는 추첨 시간이다.

당첨자들은 두 팔을 번쩍 들며 마치 달리기 시합 결승전 띠를 통과 하 듯 활짝 열린 가슴과 입으로 행복감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함께 운동과 이벤트 행사로 클럽 가족분들과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회식장소로 이동한다.


연말 회식은 고기 아니면 횟집.

고정되어 있는 점이 아쉽지만 12월 말. 40명의 인원을 받아주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고깃집으로 이동한다.


금주 전과 다르게 나는 술 안 먹는 테이블로 자연스럽게 착석한다.

40명 중 술 안 먹는 6명이 모였고 의도치 않게 각자 술을 먹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태생 때부터 술을 못하는 사람. 내일 일찍 공부 예정이 있는 입시생. 아내의 눈치. 어제 너무 달려 쉬고 싶은 간. 등

각자의 이유는 모두 달랐지만 결론은 같다. 술을 안 먹는 것. 나처럼 술을 끊은 금주인은 없었다.


전만 해도 이 모임 술자리에 함께하던 언니들과 오라버니가 놀라며 다가왔다. 가뜩이나 키가 엄청 크신 오라버니는 깜짝 놀란 가슴 열고 목이 늘어나시며 한 마리의 기린처럼 걸어오셨다.

나는 앉아서 한참이나 위로 시선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뭐! 술을 끊었다고?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좋은 술을 왜 끊어? 언제까지? 계속 쭉?"

말씀하시던 오라버니의 숨의 긴 호흡으로 정말 아쉬워하심이 느껴졌다.


함께 술을 즐겼던 추억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그 기대감이 아쉬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 또한 이 점은 참 아쉽다.

하지만 신기하다. 조급하지가 않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 모임에 가고 싶고 대화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지금은 내가 원했고 내가 이것을 실행하고 있다는 나의 의지. 그것도 강한 의지. 그것이 자신감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나로, 자기 자신으로 되어있고 온전하고 확고한 힘이 느껴지고 있다.

강한 힘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고명환 님의 '고전이 답했다' 중에 있는 구절이 생각났다.


당신이 무언가를 할 때 고통스럽지 않다면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

술 먹을 때 즐겁기는 하지만 더 큰 쾌락을 위해서 고통의 물을 주고 있다.

지금 금주의 행동. 시간이 지난 나의 미래에 어떻게 작용하여 나타날지 오히려 기대감이 더 크다.

그 기대감으로 참아진다.

20년간 술을 그리 쉼 없이 먹었으니 이제 금주의 세상도 경험해 볼만 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금주의 세상에 발은 들여놓으며 새로운,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인도되고 있다.

'언니, 오라버니 저 지켜봐 주세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묵언의 메세지를 보냈다.


밑줄치고 별 하나 띄운 구절


회식을 마치고 나왔다.

눈이 온다. 천천히... 살포시... 떨어진다.

나의 강한 의지처럼 내리는 덩어리가 어찌나 큰지 그 눈의 결정이 다 보일 것 만 같았다.

충만하고 상쾌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빨래와 집 정리를 정성 들여하고 책을 1장이라도 읽고 싶다.

그리고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 운동을 할 것이다.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 행복하다.


달라진 점이다.

금주 전.

한잔하고 집에 오면 양말이 공중으로 날려 바닥에 떨어진다. 만약 강아지라도 있는 집이었다면 장난감으로 착각하고 양말을 물고 볼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물어뜯고 있었을 것이다.

뼈대 없어진 옷들은 소파 위에 겹겹이 쌓여있다. 짐 들이 바닥에 이곳저곳 집 없는 고양이들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내일의 일이 된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숙취로 청소와 일정은 '대강이' '대충이'로 마무리되었다.


뿌듯한 마음이 함께 이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술을 엄청 많이 먹었던 나의 과거를 생각한다.

운동모임의 회비에서 나의 술값이 절약되어 조금 더 가치 있는 상황에 쓰임을 상상한다.

미소 지어지며 포근한 잠에..드..은...다.


당신이 노력하는 지금의 행동이 미래에 무엇 되어 나의 곁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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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금주(황금金창조作)- 삶을 해맑게 황금으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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