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
많은 인간관계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어느 날, 텅빈 일기장에 무심하게 적어 내렸던 제 글입니다. 딱히 저렇게 말할 계기가 있었던 것도, 제 자신과의 특별한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심지어 일기를 꾸준히 쓰고, 혼자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와 가까워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이때의 저는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그 뒤로부터 또 몇개월이 지났을까요. 일기를 쓰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나는 어쩌면 '집착'을 하고 있던게 아닐까. '나와 오롯이 친해져야 한다.' '나는 나를 제일 잘 알아야 한다.'는 곧은 마음들이 과해져 슬쩍 휘어진 것이죠. <모자람없이 온전하게>라는 뜻을 가진 '오롯이'라는 단어를 저도 모르게 '완벽히'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성격이 꽤 급한 저는 나와 친해지고, 행복해지는 과정도 속전속결로 하고 싶어했어요. 밥을 먹고 바로 뛰면 속이 쓰리고, 속에 든 걸 뱉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걸 간과했던 걸까요. 그저 조금 휘어진 방향으로 자꾸만 먹고 뱉어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정작 제 속 안에 든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렇게 저는 제가 제일 어려워졌어요.
"왜 나는 내가 제일 어려울까."의 말은 곧, 무언가를 인정하는게 참 어렵다는 말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하고 나면 생각보다 참 많은게 달라진다는 것도요. 인정하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무색한 만큼, 내가 나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편안해졌어요. 안온해졌어요.
인정했다. '오롯이'가 곧 '완벽히'가 아니라는 것을. 설사 그렇다해도 그렇게 되는 건 불가능하고 어렵다는 것을. 그저 나는 오롯이 내가 되는 방향으로 가까워지면 된다.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여전히 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은 제가 제3자여서 그런지, 멀리 떨어져서 바라봐서 그런지 어느정도 '이럴 것이다' 생각하거나, 그저 이해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으면 되곤 했거든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나는 나 자신을 자꾸만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보기에,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인정하는게 좀 어렵다면, 나랑 조금 멀어지는 것도 방법입니다. 멀어진다기 보단, 축소해서 본다는게 맞겠네요. 아이폰 유저로서 예시를 들어보자면, x1배로 사진을 찍을 때와, x3배 또는 x0.5배로 사진을 찍을 때, 볼 수 있는 범위가 많이 달라지잖아요. 저는 그동안 제 세상을 x3배 정도로 보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고민이 생기면 하루 종일 그 고민에 매달렸고, 고민들이 제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았어요.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는 고민 자체도 그랬구요.
내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때면, x0.5배 정도로 나를 바라봐주세요. 그걸 보다 쉽게 하는 방법은 펜과 노트를 들고 다니며 기록을 하거나, 나의 시선을 자꾸만 바깥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버스를 타면 핸드폰 대신 걸어가는 사람들과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풍경들을 마주하고, 좋아하는 바다에 가면 그곳에서의 나를 조명하며 글을 한 편 써주는 것이죠. 글 한 편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이곳에 온 나의 기분을 어떠한지 들여다 봐주면 됩니다. 오늘 한 일을 나열해도 괜찮구요. 대신 그 나열한 것들에 '왜?'를 붙여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내가 선택한 것들의 이유를 찾다보면 반드시 나의 마음과 맞닿게 되더라구요.
이게 '오롯이' 내가 되어가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두서없이 나열했지만, 결국 나를 x0.5배 정도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봐주고, 내가 가진 것들을 인정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그걸 적어 내려주면 되는 것이죠. 쉽지 않지만, 편안함에 이르기엔 이만한 방법이 또 없습니다.
구체적인 제 얘기를 덧붙이자면,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조급함과 조바심이 뒤섞여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하다가 심한 번아웃이 찾아왔고, 제 눈 앞의 모든게 고민 덩어리가 되어버린 때가 있었어요. 하고 있는 일도, 연애도, 나의 건강도, 심지어 더러워져 버린 내 방 상태도. 해결하고 싶다는 일말의 개선 의지도 소멸되어 버린 상태였죠.
다 때려치고 싶다. 뭐부터 때려치지? 라는 극단적인 생각과 함께 무작정 표를 끊어 부산 바다로 향했습니다. 도피가 맞았어요. 방도 치우기 싫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귀찮았고, 하고 있는 일을 마무리 하기엔 에너지가 없었거든요. 떠날 에너지는 있었던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뭐 아무튼 부산 바다로 향했습니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도착한 다대포 해수욕장. 바다와 노을이 참 예뻤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이렇게 예뻤나. 하늘이 이렇게 예뻤나 싶었죠. 그 바다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저는 묘하게 함께 웃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저들 속에 자연스레 섞이고 싶다. 나도 멀리서 보면, 이 바다에서 여유로이, 행복하게 바다를 향유하고 있는 사람이겠지.' 하는 마음이 슬쩍 들었어요.
동시에 내 시선이 너무 좁았다는 생각이 아차..하고 들더라구요. 멀리 바라봤다면, 나는 너무 잘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사람인데, 왜 타박만 했을까. 나를 챙겨주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죠. 저렇게 큰 바다도 저렇게 수없이 찰랑이고 부딪히는데, 이 세상의 자그마한 나는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세 바닥의 일기를 적어 내렸어요. 일인칭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관찰자의 시점으로 저를 바라봐주었습니다. (어렵다면 나에게 편지를 쓰는 방법도 추천해요!) "참 애썼다."는 마음과 함께 편안해지더라구요.
저도 그랬고, 누구나 그럴 수 있어요.
지금도 이따금씩 흔들리기에-
오늘 말이 유난히 길어지네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 건, 언제나 어렵고 참 즐겁습니다. 이걸 나눌 수 있다는게 문득 감사하기도 하구요. 누군가의 혼자만의 시간과 여정들에 문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주엔 또 다른 '오롯이'의 순간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혼자만의 여정을 떠나는
누군가를 부단히 응원하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