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집을 부려 구태여
저는 기록을 좋아해요.
아,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게 된 경우인데요. 예전엔 손으로 기록하며 나의 감정을 꺼내는 것에 굉장히 인색하고 서투른 저였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즐기게 되었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생각엔 기록의 손맛을 알아버린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손으로 혼자 여행을 기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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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져 보아 느끼는 느낌.
기록을 좋아하는 이유를 곱씹다가 참 어울리기도, 안 어울리기도 한 단어를 떠올렸어요. '손맛'이라고 하면, 보통 낚시를 할 때나 어머니의 손맛.. 이런 걸 떠올리곤 하잖아요. (이미 기록에 이 표현을 쓰신 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직접 손으로 나의 생각들을 펼치는 장면을 자꾸만 '손맛이 좋다'라고 표현을 하고 싶어 지네요.
손으로 기록을 하다 보면, 자꾸만 솔직해집니다. 마음에 묻어 두었던 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 남들에겐 할 수 없는 말, 또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해요. 특히 혼자 여행을 떠나와서 낯선 곳에 놓이면,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서 그런지 손 끝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 솔직해지곤 하죠.
처음엔 노트 한 바닥이 아니라, 그냥 한 문단을 써내려가는 것도 어려웠어요. 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될까. 쓰려니까 딱히 할 말도 없고, 귀찮다... 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죠. 그랬던 제가 혼자 여행하면서 자발적으로 기록을 하다니. 심지어는 기록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떠한 매력에 그렇게 덥석 빠져버린 걸까요.
손으로 하는 기록을 시작하게 되면서, 사진으로는 기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되었어요. 혼자만의 시간들 속에서 이에 대해 일종의 결핍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이를테면 나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취향들이 있을 수 있겠죠. 이런 건 사진으로 기록이 안되더라고요. 이런 결핍을 채워주었던게 바로 기록이 아닌가 싶어요. 무형의 것들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 그걸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손으로 하는 기록의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기록을 하면서, 일기장 속에서 저와 부단히 싸우기도 합니다. 보통 익숙함을 느끼는 편안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 짜증을 부리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제가 저에게 그러고 있더라고요. 기록을 하다보니, 내가 나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이유를 찾게 된 것이죠. 원하는 모습을 정해두고, 거기에 맞추기를 바랐던 마음. 그게 보이고 나니, 문득 내가 나에게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이전의 저와 새로이 바뀌고 싶은 제가 부단히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기는 것 밖에 없는 좋은 싸움이었어요.
이 밖에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다음의 글을 위해 잠시 멈춰 보겠습니다.
(다음 글도 기록 이야기를 해볼 것이기에_)
-다음주에 만나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