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집을 부려 구태여
왜 운전 안해?
운전하면 더 편하지 않아?
혼자 뚜벅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그쵸. 너무 맞는 말이라 때론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법적으론 운전을 할 수 있긴 하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연수도 다시 받고, 운전을 시작할 수도 있고요. 서울살이 탓인지, 이상한 고집이 있는 건지. 아직은 운전하는 여행에 대해 그닥 끌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뚜벅이의 불편함과 비효율성을 헤쳐 나가는 그 짜릿함을 꽤나 애정하나 봅니다.
혼자 걸어서 뚜벅이 여행을 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길치에 직진 본능이 있는 사람이라, 원래 가려던 곳 반대의 방향으로 버스를 타거나,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거나, 차로는 10분 거리를 30분을 장장 돌아가는 등등.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닙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주 여행이 아닐까 싶은데요. 호기롭게 죽림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평화로이 사찰을 즐기다가, 다시 나와보니 오늘 버스 운행이 모두 종료된 겁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거든요. 버스 정류장 앞을 하염없이 서성거리다가 근처에 뭐가 없나 뒤를 슬쩍 돌아보니, 보이는 건 비닐하우스와 음메에- 우는 소들뿐이었죠.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저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택시를 잡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님들은 제 콜에도 답변이 없었어요. 저 멀리 노을이 보이는데 그날따라 그리도 예뻐 보이지 않더라고요. '노을아 아직 때가 아니야..!!'만 반복하고 있던 저. 시내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택시를 잡아보는데, 한 기사 분이 정말 감사히 콜을 받아주셨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택시에 탔는데, 왜 여기에 덩그러니 있냐는 질문을 바로 하시더라고요. '저도.. 예상 못했습니다만..'
무사히 시내에 도착하고 먹은 그날의 곰탕이 그리도 생각이 납니다. 어찌나 맛있던지요. 곰탕 한 그릇과 함께 저는 스스로 '이 일을 잘 헤쳐나간 강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오늘의 이 일은 '웃고 넘길 나주 여행의 해프닝'이 되어 있었죠. 그렇게 여행에서 또 인생을 배웠습니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고,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일들이 때론 웃고 넘기는 가벼운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요.
그동안 뚜벅이로 혼자 정말 많은 곳들을 다녔어요. 국내부터 해외까지 참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이 말을 하는 지금도 올해 말에 혼자 떠날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네요. 이 많은 여행을 꼭 제 두 발로만 하는 건 아닌데요. 뚜벅이 여행에서 '자전거'의 존재란 참 감사합니다. 국내에선 제주, 여수, 대전, 담양 등에서 자전거와 함께 했고, 해외에선 일본 소도시 여행 중에 자전거로 이동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13년 동안이나 자전거를 멀리 했습니다. 어렸을 때 크게 넘어진 기억 탓인데요. 스스로 '나는 자전거를 못 타.'라고 정의를 내려버렸어요. 성인이 된 후, 시도도 안 해보고 말이죠.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스파르타로 '그냥 타.'라고 말해 준 친구 덕분에 아무튼 자전거를 꽤 잘 이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무도 없는 일자 길을 내달릴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요. 최근에 담양에서 아무도 없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시원하게 달렸는데, 그때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으로 지금을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골목 곳곳을 둘러보며,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멈춰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 그게 뚜벅이라 좋은 점 아닐까 싶네요. 아, 물론 전적으로 뚜벅이의 편에 서서 적어보는 뚜벅이에 대한 고찰들입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여행에서 많은 '우연'들이 생긴다는 것. 혼자 걸어서 여행하다보면, 때론 지도앱을 켜지 않고 시내 골목의 곳곳을 둘러보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나는 고양이, 바다, 풍경, 공간, 사람들로 또다른 에피소드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고양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든가, 우연히 마주친 바다에 잠시 앉아 사색을 즐긴다든가, 우연히 만난 현지 사람들을 따라 들어간 밥집이 최애 맛집이 된다든가. 수많은 우연과 변수가 때로는 인생의 유연함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이렇게도 흘러갈 수 있구나.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수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적었지만, 결국 '뚜벅이 혼자 여행은 좋다.'는 말을 이렇게나 길게 해버렸네요. 비효율적. 불편함. 두려움이 때론 자유로움. 편안함. 짜릿함의 이름을 가지기도 하더라고요. 모든 멋진 일엔 두려움이 따른다는 제목을 가진 이연님의 책을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 제목을 인용해보고 싶어지네요.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걷고 있을
누군가를 부단히 응원하며
글을 마쳐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