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집을 부려 구태여
내가 그걸 왜 골랐지
자꾸만 이런 곳만 가려고 하네
내가 이런 걸 좋아했던가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음,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나의 선택이 있더라고요.
그 선택은 곧 취향이란 이름으로 자리하기도 하죠.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 전엔 잘 몰랐습니다. 나의 취향이란 것,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내가 행복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들 등. 그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겠거니 하면서 살아갔죠. 삶에 지장은 없었으니 어떻게든 이리저리 살아갔지만, 자꾸만 숨이 턱 막히는 질문이 있었어요. "넌 어떤 사람이야?"
책 속에서 마주한 구절이었는데, 당황한 주인공 친구에 빙의라도 하듯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나는 나 자신을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나와 어색하구나.'
그렇게 참여자는 나 하나. <나와 친해지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신 다짐을 하나 했어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처럼 나 자신과도 천천히 친해지겠다고. 자주 만나며 자연스레 스며들고 좋은 것들을 차근차근 눈에 담아주겠다고. 나 자신에게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겠다고.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쌓아 나갔고, 촘촘하게 쌓인 시간들 속 제 취향이란 게 생겨났어요.
시간이 좀 필요하단 걸 인정하고, 저를 알아가니 세상이 좀 달라 보였습니다. 때론 무언가가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 생각은 저를 더 잘 살고 싶게 만들었고, 이 세상을 더 유영하고 싶게끔 만들었죠.
그 설레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톺아 보았던 제 취향을 적어보려고 해요. 제 취향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도, 또는 더 많은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자꾸만 노포를 갑니다. 칼국수, 육회, 파전, 백반 등등..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식당. 대대로 운영하시는 식당. 누군가의 세월이 한 움큼 담긴 식당. 어쩌면 저는 그곳에서 음식과 함께 그 자리의 세월을 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한 세월이 한 그릇의 음식에 담겨 제게 전해진다니. 그 사실에 짜릿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겐 꽤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이 되니, 더할 나위 없는 곳이죠. 가끔 1인분이 안 되는 곳이 있기는 하다만, 울상을 지으면 한 번씩 들어오라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던.. (감사합니다. 목포의 한 식당..)
군산엔 짬뽕/짜장면이 꽤 유명해요. 웨이팅이 있는 식당도 더러 있습니다. 제겐 웨이팅 하는 맛집보다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께서 우르르 들어가시는 식당이 더 눈에 들어왔죠. 할아버지 분들의 단골 옛날 짜장 4천원 식당이라.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빼곤 다 어르신 분들이었지만, 한 그릇 가득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나왔답니다. 그날의 기록을 들여다보니,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노포 좋아 사람이었죠.
'쉼'에는 참 다양한 모양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하고, 누군가는 산책을 하며, 또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죠. 요즘 드는 생각은 누워서 쉬는 것만 휴식이 아니라, 뇌가 쉬어갈 수 있다면 어디든 스스로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단 생각을 해요.
요즘의 제 안식처는 집도 바다도 아닌 <여유로운 버스 안>입니다. 특히 뒷자리를 선호해요. 승하차 알림을 설정해 두곤, 혼자 오롯이 바깥의 풍경을 음미합니다. 저 빼곤 모두가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 느낌이 퍽 여유롭습니다. 이맘때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버스와 함께 달려가다 보면, 무거웠던 고민과 걱정들이 실은 별게 아닌 것이 되기도 합니다. 이게 명상인가. 머리와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에서든, 일상에서든 굳이 버스를 골라 타서 그 안에서의 시간을 즐기기도 합니다.
잔잔하고 고요한 걸 좋아하는 사람. 이런 저도 가끔 제가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자전거 탈 때, 야구 경기를 볼 때, 그리고 요즘은 드럼을 배울 때.
자전거부터 말하자면,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스피드와 그 순간의 바람을 격하게 애정합니다. 아 물론, 남들 눈에는 기본 속도일 수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을 때, 제 사촌이 "뛰는 게 더 빠르겠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으니 말이죠. 어쨌든 요즘은 제 나름대로의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자유를 느낀달까요. 자유가 형태가 있는 유형의 무엇이라면 아마 자전거 바퀴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야구는 한 팀을 응원한 지 9년 정도 되었으니, 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제 모습이 몹시 낯설 때가 있습니다. 리틀 감독이 되어 선수들을 격려하고, 가끔 인상도 찌푸리고,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제 감정을 푸는 해소의 통로(?)가 야구인 걸 수도 있겠네요. 요즘은 아주 잘하고 있어서 불안히 기쁩니다.
저는 요즘 새로이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왜 드럼을 선택했을까 톺아보면, 결국 이도 취향이더라고요. 학생 때부터 꾸준히 밴드 음악을 애정해 왔기에. 듣는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드럼의 경쾌한 소리를 직접 쳐서 들었을 때 더 큰 쾌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완곡을.
제 취향을 가장 많이 깨닫는 구간은 '갤러리를 들여다볼 때'이기도 한데요. 제 갤러리에 들어가 보면, 동물들이 참 많습니다. 아마 제 반려견 마루가 60%, 우연히 만난 고양이가 30% 정도 될 만큼 고양이 사진도 은근 많았죠. 잔잔하고 원하는대로 유유히 살아가는 고양이가 제 모습과 닮았다고 이따금씩 느끼기도 해요.
스스로의 취향을 알고 싶을 때, "반복적으로 눈이 가는 게 있어?"라는 질문도 도움이 됩니다. 제겐 고양이, 바다, 옛날의 흔적이 담긴 무언가, 잔잔한 영화, 밀크티 등등이 있죠.
제 선택엔 다 이유가 있기에.
제 취향을 모두 다 나열하다 보면.. 밤을 새울 것 같기도, 다음 글이 막막해질 것 같기도 해 서둘러 줄을 그어 봤습니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소제목이 슬쩍 바뀌었는데요. 이 소제목의 챕터에서는 제가 '굳이' 하는 것들을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왜 굳이 고요함을 차리는지, 왜 굳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지 등등이 있겠죠. 오늘은 굳이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찾아간 제 취향들을 소개드려 봤어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오늘도 굳이. 구태여. 행복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