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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10.라스토케2: 물레방아와 폭포의 마을

신부의 순백 실크 면사포가 겹겹이 너울대는 폭포와 전원마을

by yo Lee

코라나 강가

부엌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 떴다. 큰 새소리가, 소란스럽지 않고 낭랑하다.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긴다.

싱싱한 야채샐러드와 스테이크, 김, 볶은고추장, 초절임 오이, 가지장아찌, 양파 장아찌를 꺼내놓으니, 오늘도 메뉴 풍성하다.

숙소 앞 정육점 쇠고기 값은 매우 싸서 스테이크, 토마토를 넣은 스튜, 육개장들에 아낌없이 투척,

저녁 식사분까지 미리 만들어 두었다. (물가가 최근 많이 올랐다고!)

관광 채비를 하고 나오니,

호스트가 따라 나와 길안내를 해준다.

도보 10분이면 족한, 1km 떨어진 곳이란다.

어제 버스 타고 온 길을 거슬러 휘어진 모퉁이를 돌아드니, 강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이 보이고, 벌써 도착한 관광객들이 마을 쪽으로 줄지어 내려간다.


< 코라나 강의 여러 풍경>

물레방앗간
라스토케 마을 옆, 다리
코라나 강변


우리는 마을 반대쪽 교량 아래로 내려가 어젯밤 보았던 슬루니치차 강과 만나게 되는 코라나 강 쪽을 먼저 가보기로 한다.

잔디가 깔린 강가 따라 거슬러 올라가니 피크닉족이 머물 수 있는 정자가 있다.

한 가족이 물놀이를 즐긴다. 건너편에 보트가 메어져 있다.

보트로 강을 거슬러 오르면 보일, 멋진 풍광이 엿보인다.


라스토케의 폭포들

라스토케를 조망하기 좋은 건너편 언덕으로 갔다.

슬루니 높은 분지 안, 움푹 파내려 간 지형 안에 라스토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건너다 보인다.

관광용 홍보 사진과 라스토케 여행자들의 영을 많이 보고 왔지만, 실제 풍경은 엄선되었을 자료물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숲 속의 요정마을’이니, ‘아름다운 숲 속 전원마을’이니 하는 표현에도, 별 기대가 없었는데, 그보다 더 상위급 표현도 수긍될 만하다.

여기저기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져 내리는 폭포 물줄기들은,

마치 ‘만들어서 처음 입혀진 신부의 면사포’ 같기도 하고,

얇디얇은 우리네 노방 실크 한복감을 줄줄이 늘어뜨린 것도 같고,

극세사 실크실로 짠 레이스가 겹겹이 겹쳐져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을 여기저기 나무의 녹음 속을 뚫고 나와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바위를 배경으로 한 투명함이 절경을 이룬다.

세계 명승지 사진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숲과 마을 사이를 나지막이 감돌아 폭포를 이루며 떨어져 내리는 풍경은 첨 본다.

개울과 폭포와 녹지 속의 마을은 통째로 작품이 되었다.

자그마한 이 마을은 한눈에 다 담긴다.

흐르는 물과 나무와 군데군데 언덕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황홀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을 코스에서 빼지 말라던 말에 완전 동의한다. 플리트비체와 함께 라스토케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라스토케는 먼저 마을 건너편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순서

폭포 조망 장소를 떠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슬루니 16개 마을 중 하나인 라스토케는 17세기부터 풍부한 수차를 이용한 습식 제분산업의 중요 부분을 차지했고 최고 많을 때는 22개의 방앗간이 있었다고 한다.

점차 전체 지역의 습식 제분소가 됨으로써 19세기에는 슬루니 지역의 중심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약 60여 명의 주민만이 거주한다고.

물레방아와 여기저기 주택들을 가까이서 눈에 담는다.

깨끗한 물이 흐르며 내는 물소리는 힐링 사운드이다.

나무 사이를 무릎 이하의 낮은 깊이로 흐르며 마을 전체를 굽이굽이 감 도는 물은 양이 많아도 친근하다.

방앗간을 배경으로 오리들이 노니는 모습과 큰 나무들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들이 이루는 전원적 풍경은 완벽한 구도를 갖춘 그림이 된다.

맨 앞의 둥근 모양이 방앗간의 부속품

마을 입구 물레방앗간 앞에서 중년의 두 여성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반가움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여정을 묻는다. 들어보니 그분들은 여행사의 소그룹 여행인 듯하다. 항공권 구입부터 현지에서의 일정까지를 여행사 플래너와 협의해서 기획하고, 현지 여행사와 연계하여 전 일정의 숙소, 이동 교통편 및 식사 등을 제공받는다고.

이곳에도 승용차로 데려다줘서 관광이 끝나면 기사와 다시 만나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거란다.

여행사 단체 여행의 단점을 보완한 상품이지만 대신 비용이 매우 비쌌다. 여정의 자율적 틈새를 갖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아침을 두둑하게 잘 먹었지만 여기저기 경탄하며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점심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식당 Petro에 들어가서 송어와 스테이크를 시켰다. 각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느긋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식당 Petro
송어구이와 스테이크

슬루니 마을 구경

점심을 먹고 라스토케와 연결된 슬루니 마을로 언덕을 넘어 올라갔다. 관공서와 도서관 여행안내소 등이 있는 이 동네는 꽤 오래된 모습의 주택들이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고샅을 걷는 우리를 포치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는 노년 부부 모습이 저만치서 보인다.

오래된 마을 회관과 교회와 작은 공연장을 지나 우리 숙소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공원이 있다.

많은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있다. 그들도 역시 우리 동양인을 주시하는 듯하다. 우리도 잠시 발길을 멈춰 벤치에 앉아 이 마을 사람들을 구경한다.

마침 하굣길인 듯, 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우리네와 다를 바 없이 활기차다.

피곤한 발을 잠시 추스르고, 어젯밤에 걷다가 되돌아온 슬루니치차강을 다시 보려고 큰길을 건넌다.


스태리 그라드 슬루니 (Stari Grad slunj)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와 아름다운 강물빛에 경탄한다. 이름 모를 보라색 꽃, 길가에 피어난 여러 작은 꽃들이 짙은 코발트 강물 색과 하모니를 이룬다. 어젯밤 돌아 선 곳을 지나쳐 나무다리를 건넌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 우람한 돌 벽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태리 그라드 슬루니 (Stari Grad slunj)이다. 안내책자의 내용을 옮긴다.


Slunj의 중세 도시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390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봉건 영주인 Krk의 Frankopan Counts의 거주지로 지어졌으며 궁전과 몇 개의 방들이 더 추가되었을 칠각형 구조의 형태로 지어졌다.

이후 슬루니 치차 강 (Slunjčica River)에 의해 3면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바위 절벽에서 유리한 전략적 위치는 16 세기 오스만 공격에서 중요한 방어기지로 사용되었다. 이 기간 동안 도시는 동부 쪽에 추가로 반 포탑과 보호 구덩이가 있는 수비 벽의 외부 원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태를 짐작 못할 만큼 허물어져, 주저앉은 모양새다.

1528년 오스만 터어키의 공격으로 슬루니 (Slunj)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이곳과 수도원, 그 외 많은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곳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이로부터 150년 동안 오스만 제국 지배를 받던 슬루니는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 치하로 넘어간다.

오스트리아는 이 일대를 군정 국경 지대로 다스렸다.


줄곧 베네치아 지배하에 있었던 이스트라 반도의 로빈, 풀라 와는 다른 역사를 지닌 셈이다.

500여 년 세월 속에 여러 전쟁을 겪은 이 지역의 지난한 역사를 반증하는 이 요새의 무너져 내린 돌들 속에는 얼마나 진한 민중들의 슬픔이 스며들어 있을까 잠시 생각케 한다.

스태리 글라드 요새
예전 모습 안내문
마을로 오르는 길이 옆으로 나있다.

분지 위의 슬루니 마을

요새를 지나 언덕을 오르니 예상치 못한 넓은 지대가 펼쳐져 있고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지나 길들이 어디론가 향해 뻗어 있다. 이 지역은 해발 260여 m로 표시되어 있다. 15세기경에는 이곳이 번성한 슬루니 마을이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도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쪽으로 연결된다.

불과 25km 거리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이 있다. 지도에 나타난 또 다른 슬루니의 숙소들과 여행사가 이 높은 지대에 있을 줄 예상 못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아랫마을에서 머물다 떠날 것이다.

여정이 넉넉하다면 슬루니 길을 통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홀로 걸어오는 한 마을 주민을 만났다. 인근에 누군가의 묘가 있어서 꽃을 놓으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녀를 좇아가보니 묘에 놓을 꽃과 성물들을 파는 가게로 들어간다. 우리가 서 있는 주변, 가까운 곳에 묘지가 있는지 꽃을 놓은 여인이 곧 다시 나타났다. 얘기를 하고 싶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서로 얼굴을 보며 웃기만 하다가 사진 한 장을 찍고 헤어졌다.

되돌아오는 길,

요새를 지나 언덕을 내려오니 아까 건넜던 다리 근처에서 한 남자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도 멈춰 서서 그의 낚시를 지켜본다.

맑은 강물은 여전히 옥색이고 투명한 포말을 일으키며 돌멩이를 타 넘어 흘러내려간다.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을 낚시꾼이 완성해 준다.

영 입질이 안 오는 모양이다. 네댓 번 자리를 옮기더니 주섬주섬 도구를 싸들고 돌아간다.

우리도 덩달아 실망을 하고 강줄기 거슬러 마을로 돌아 나온다.


석양을 머금은 숙소 건너편 동네의 키 큰 나무들 실루엣이 어제처럼 무척이나 아름답다.

오늘도 해는 기울고 라스토케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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