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MOT)

듣는 이를 몸서리치게 하는 으스스한 목소리

by Charles Walker
스크린샷 2026-01-08 오후 2.15.05.png 못(MOT) 정규 1집 [비선형 (non-linear)] (2004)

밴드 '못'을 이끄는 리더는 싱어송라이터 이이언(eAeon)이다. 한국 대중음악상 100대 명반 리스트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 이 앨범을 모르고 살았을 거다. 이렇게 우울하게 내면으로 침잠하는 음악을 내가 무슨 수로 알겠는가? 끽해야 넬 정도만 듣고 말았겠지.


보컬 이이언의 목소리는 음험하다. 결코 소리를 내지르는 법이 없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만드는 노래이다. 2번 트랙 'What a Wonderful World'는 설마설마 싶겠지만,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원곡인 그 노래 맞다. 재즈 스탠더드인 데다가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 때문에 원작의 각인이 진하게 남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다른 스타일로 바꿔 버리니 새로운 곡을 듣는 듯 신선하다. 원작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예찬하는 느낌이라면, 못의 버전은 반어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는 차이가 있다.


사실 밴드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록보다는 인더스트리얼이나 일렉트로니카 음악 같은 느낌이 강하다. 못은 이후로도 정규앨범 두 장을 더 내놓긴 하는데, 1집을 넘어서는 결과물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이이언의 솔로 프로젝트 중 [Guilty Free] (2012)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못의 1집에 이어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못 앨범에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친하게 지냈던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학생과 음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다가 내가 '혹시 지독하게 우울한 것도 좋아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에 내가 이 앨범을 추천해 주었다. 그러고 며칠 후 그 학생이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앨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듣는다'라고 말했다.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악이 너무 우울해서 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면 어쩌지, 하고 괜히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친구는 음악과 자기 생활의 분리가 잘 되는 학생이었기에 음악에 이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삶을 충실히 잘 살다가 무사히 졸업했다.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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