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너만은 처음 그곳에 머물러 주겠니

윤상, '이별 없던 세상' (1992)

by Charles Walker
윤상 2집 Part 2 (1992)
어린 시절 햇살같은 추억에
나도 모르게 걷고 있는 여기에
가득 고인 내 꿈처럼 커다란
하얀 풍선을 안고 있는 아이들

내 작은 기억 속에도
그런 모습 있었지
풍선 하나로 세상을
다 가진 듯 부푼 내 가슴

이제는 무얼 찾아야 채울 수 있을까
마음만으론 찾을 수 없어
저 멀리 날아가버린 내 작은 소망과
밤하늘의 작은 별을

너무 쉽게 포기하며 살았지
눈 감은 채 잊어보려 했지만

그 모든 걸 잃었다고만
생각을 하지 마
바로 그건 어른이라는
또 다른 이름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 나에겐 아득한 곳인걸
기억만으론 갈 수가 없어
너만은 처음 그곳에 머물러 주겠니
이별이 없는 그곳에서

저 멀리 날아가버린 새하얀 풍선도
너의 눈 속엔 그대로인걸
너만은 처음 그곳에 머물러 주겠니
이별이 없는 그곳에서

윤상, '이별 없던 세상' 가사 전문


윤상의 2집 앨범은 1집의 대중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느낌의 Part 1과 뮤지션으로서의 실험성이 드러난 Part 2로 나뉘어 발표되었다. 윤상 본인에게 어느 쪽 앨범에 더 애착이 있는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별 없던 세상'은 바로 그 2집 Part 2의 2번 트랙에 수록된 곡이다.

윤상 음악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단연코 '노스탤지어'이다. 시간은 일방적으로 선형적인 속성을 가졌으며, 그렇기에 흘러간 시간과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노래 속 주인공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설령 안다고 한들 그것을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이 이별의 연속임을, '하얀 풍선을 안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알아차린다. 저 아이들의 모습과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다. 흘러간 과거는 아무리 애를 써도 지금은 닿을 수가 없기에 '환상'이다.

현실을 살고 순간에 집중하는 삶이 '어른이라는 또 다른 이름'에 부여된 책무였기에, 과거로의 회상에 젖어 허우적대는 일은 '포기'해야 했다. 어느덧 너무 많은 이별을 겪으며 살았던 탓에 이별이 이별인지 아닌지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노래 속 주인공은 노래를 듣는 우리를 '너'라 부르며 당부에 가까운 권유를 건넨다. '처음 그곳, 이별이 없는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이미 너무 먼 곳으로 돌아와 버린 자신을 대신해서, 너만이라도 '하얀 풍선'을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있어 달라고.

이 노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와 같은 사람이 듣는다면 노래 속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 되어 어쩐지 함께 서글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래의 기울기를 아이들 쪽으로 옮겨준다면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희망의 찬가가 될 수 있다. 이렇듯 같은 노래일지라도 듣는 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와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1992년의 윤상이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파 했던 대상이 아이들, 다시 말해 당대의 청소년들이었으리라는 짐작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들은 윤상의 잔잔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너희만큼은,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격려와 응원을 듣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을까.

윤상의 메시지는 현재 한 아이의 아빠이자 교사로 살고 있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외압에 의해 포기한 채 나도, 누구도 되지 못한 채 40년을 살아온 나처럼은 말고, 우리 아들을 비롯한 이 세상의 수많은 아이들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뜻대로 삶을 디자인하며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욕심을 더 부린다면, 모두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존중해 주었으면.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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