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 '모닥불' (1972)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박인희, '모닥불' 가사 전문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대학교 MT에서 이 노래가 자주 불리웠다. 하지만 노랫말의 참맛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 삼키며 부른 이들은 별로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짧은 노랫말 속에 인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이 숨어 있는데, 그걸 깨닫고 사는 사람이 몇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닥불'은 삶이다. 생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혼자였던 적이 없다. 상대가 누구이건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지치고, 질리고, 가끔 그립기도 하며.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타다가 언젠가는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날도 오겠지? 하지만 그 깨달음 속에 두려움이나 주저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쓸쓸한 것 같기는 하지만 오히려 담담한 쪽에 가깝다. 그렇기에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 모닥불이 완전히 '꺼지는 그 순간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 혼자가 아닌, '우리들의' 삶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우리 모두의 삶이 된다.
삶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과 모순, 표리부동함에 질려버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고, 나 또한 그런 인간이었기에 나 자신에게조차 환멸감이 일었다. 내가 가진 장작을 최대한 끌어모아 모닥불을 피워 올렸지만, 재를 뿌리거나 찬물을 끼얹으며 불을 꺼뜨리려는 세력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는 소방 호스가 등장하여 내 안에 타오르던 모닥불을 완전히 꺼뜨려 버렸다. 불이 꺼진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기에, 더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반칙이었다. 삶이라는 게임은 그런 식으로 끝내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나면, 항상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내 불이 결국 소방 호스까지 동원되어 꺼져야 할 불이었다면 그건 잘못 피운 불이다. 엉뚱한 시기에, 불을 피우면 안 되는 장소에 불을 피워 놓고는 그 불이 꺼졌다고 슬퍼하며 이야기를 마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살펴서 알맞은 때와 알맞은 곳에 새로운 불을 피우고, 새로운 누군가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