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슬픈 노래는 그만두어요

신촌블루스,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1989)

by Charles Walker
신촌블루스 2집 (1989)
이제 모든 것은 끝나고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데
이제 모든 것은 끝나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데

슬픈 노래는 그만두어요
이젠 울고 싶지 않아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이제 모든 것은 끝나고
꽃잎처럼 흩어져가버려
이제 모든 것은 끝나고
강물처럼 흘러갔는데

슬픈 표정은 그만두어요
이젠 울고 싶지 않아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신촌블루스, '아무 말도 없이 떠나요' 가사 전문



여러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멋들어지게 시작하는 이 블루스 곡을 듣다 보면, 세상사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아 오히려 후련하고 홀가분해 보이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굴곡진 삶을 살면서 '슬픈 노래'도 숱하게 불러야 했고 언제나 '슬픈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어느새부턴가 슬퍼하는 일도, 기뻐하는 일도 다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은 사람은 말이 많다. 뭘 하면서든 이유를 붙이고, 핑계가 는다.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고, 그것들을 지켜야 하기에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기에 매사에 방어적이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갖고 있던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기 때문이다. 슬픔도, 미련도, 행복도. 아무것도 없는 제로(0, zero) 상태에서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기에, 그는 누구에게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아무 말도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가 '떠나'는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성싶다. 그가 어디를 가든 그것은 그의 자유일 뿐, 우리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삶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미련 없이, 욕심 없이 쿨하게 사는 것. 어떤 변명도, 어떤 이유도 덧붙이지 않고 사는 것. 나를 규정짓지 않는 것. 자유로울 것.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인트로에서 밝혔듯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살아왔기에, 내가 내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방법을 모른다. 더 심각한 것은 '여태까지의 방식이 잘못되었으니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고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머리로는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실제 내 삶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다. 내 것으로 내면화가 되어야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지는데, 갖은 노력을 다 해봐도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거다.


배워야 달라질 수 있는데. 배워야 다시 살아갈 수 있는데. 여태껏 잘못 배운 상흔(傷痕)이 너무 깊게 남은 탓에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이론적으로, 관념적으로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췌 '자유롭게 사는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그런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기에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마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노래 속 그가 부럽다. '모든 것을 끝내고' 미련 없이 넥스트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이. 대체 어떤 경험이 그를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 숱한 슬픔과 눈물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치욕과 세상의 이기심들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걸까?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로서 비추어지는 그는 내게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즉 초인(超人)처럼 보인다. 달리 초인이랄 게 무엇이겠는가? 진정한 배움이 일어났고, 이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 그것이 내게는 초인의 모습이다.


나도, 언젠가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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