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한국 가요
들어가며
2002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당시의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고 그곳에서 나는 '부적응자'였다. 반 아이들의 은근한(가끔은 노골적인) 따돌림 속에서 나는 서서히 지쳐갔고, 마음 기댈 유일한 곳은 음악뿐이었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기에, 유독 가요계 또한 양질의 음악들이 넘쳐났다. 그때 나에게는 각종 음반들을 사 모으며 cd 플레이어로 그 음반들을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그해에 본격적으로 '나는 뮤지션이 되겠다'라는 꿈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그때 음악이 내게 건네는 위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서서 이리저리 위태롭게 휘청이는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주고, 기꺼이 손잡아주며 나를 살리는 위로였다. 내가 음악으로부터 그런 위로를 받았다면, 나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음악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거창한 이유 따위 갖다붙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냥, 내 마음이 원했다. 노래하기를 원했고 음악을 간절히 원했다.
2022년, 내 티스토리 블로그(uniloverse.tistory.com)에 '20년 전 음악 이야기'라는 특집을 게시한 적이 있다. 2002년이 벌써 20년 전이라는 사실에 문득 놀라기도 하고 내 꿈을 잊고 산 지가 이렇게 오래 되었나 싶은 생각에 어쩐지 서글프기도 하여 2002년에 발표된 거의 모든 가요 앨범들을 총망라하여 'K-R&B, 발라드, 록, 댄스/힙합, 아이돌' 이렇게 파트를 나누어 작성했다. 이 지면에 그 모든 특집을 모두 쓸 수는 없겠으나, 그 당시에 참 정성스레 그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힐링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오늘은 2002년 그 당시, 나를 뮤지션의 꿈으로 인도했던 앨범들만 따로 뽑아서 소개하려 한다.
#1. K-R&B의 초석을 세우다
K-R&B, 소몰이창법 등의 용어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SG워너비가 처음 등장한 2004년부터지만, 이미 2002년부터 그 전초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R&B 음악은 본디 흑인음악으로, 90년대 미국 대중음악의 메인스트림이었다. 미국 팝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흐름도 R&B 중심이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한국의 R&B는 미국 본류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른바 한국의 재해석이 가미된 K-R&B의 시대가 2002년에 열리게 된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창법을 쏙 닮은 박화요비는 이정봉의 원곡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곡 '어떤가요'로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였다. 이 곡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애절한 록 발라드의 원곡과는 달리 감성적이고 섬세한 R&B 특유의 터치가 가미되어 완전히 새로운 곡처럼 들리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촉촉한 감성이 담긴 발라드 '이런밤', 박화요비 본인이 굉장히 애착을 가진 곡이라는 '사랑은', 애절한 표현력이 압권인 '끝이 보일때쯤', 팝 발라드 형식의 'If' 같은 곡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생명력이 느껴지는 좋은 곡들이다.
정석원 작곡의 '꿈에'를 타이틀로 내건 박정현의 4집 앨범 [OP.4]는 약 30만장 가까이 팔려나가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뛰어난 가창력과 높은 완성도의 음악성이 좋은 시너지를 낸, 보기 드문 명반이었다. 박정현은 박화요비와 자주 비견되곤 하는데, 주로 브레시한 소리를 구사하는 박화요비와는 달리 박정현은 단단하게 자리잡혀 쭉 뻗어나가는 소리를 많이 사용한다. 가수 본인의 음악적 지향성과 취향 등이 반영된 스타일 차이겠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두 가수의 기량 차이가 얼마나 벌어져 있는가를 본다면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故 휘성의 '안 되나요'는 2002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현정 작곡의 R&B 발라드인 '안 되나요'는 애절한 노랫말과 임팩트 있는 멜로디로 라이브 무대 하나 없이도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재미있는 건 라이브 무대에서 마침내 공개된 가수 휘성의 비주얼(!) 때문이었다. 바로 그의 패션이 문제였는데, 레게 스타일로 땋은 머리에 헤어밴드, 그리고 힙합으로 쫙 빼입은 모습은 애절한 R&B 발라드를 부르기에는 너무도 언밸런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매력 포인트로 통했는지, 그 이후로도 휘성 하면 힙합 패션으로 발라드를 부르던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안 되나요'의 성공을 발판 삼아 내놓은 김도훈 작곡의 후속곡 '전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외에도 3번째 후속곡 '아직도', 3박자 R&B 곡 '떠나', 팬들 사이에서 숨은 명곡으로 회자되는 '제발', 가스펠 분위기의 풍성한 소울 곡 '하늘에서', 시스코(Sisqo)의 곡을 리메이크한 'Incomplet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여 필자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는데,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앨범의 타이틀곡을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수록곡들을 작곡하며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윤건, 그리고 브라운 아이즈라는 팀의 색깔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실력파 보컬리스트 나얼. 이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최고의 시너지를 내며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데에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는 타이틀곡인 '점점'을 비롯하여 '비오는 압구정', 'For You', '떠나지마'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나얼이 직접 작곡하여 본연의 음악적 지향성을 드러낸 R&B 곡인 'True Luv'와 같은 숨은 명곡들도 필청 포인트이다.
겨울에 발표된 김범수의 정규 3집 앨범과 그 타이틀곡인 '보고싶다'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오성 배우와 장서희 배우가 출연하여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뮤직비디오도 화제를 모았는데, 정작 이 곡이 완전히 불붙었던 시기는 그 이듬해인 2003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OST로 삽입되면서부터였다. '보고싶다'의 존재감이 워낙 컸기에, 앨범에 수록된 다른 좋은 곡들이 묻힌 감이 없지 않다. 이현도 작곡의 '바보같은 내게'는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R&B 곡으로, 김범수의 탁월한 보컬 역량이 유감 없이 드러난 명곡이다. 그 외에도 애절한 발라드 '사랑해요', 재즈 풍의 마이너 발라드 '이별 뒤에서', 김범수의 첫 자작곡 '혼자', 기타 선율 위에 담담하게 부른 '나 없이 행복할 널 위해', 김형석 작곡의 팝 발라드 '일기',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상케 하는 재즈 발라드 '눈 속의 너', 전작이었던 2집 앨범의 타이틀곡 '하루'를 영어로 번안한 'Hello Goodbye Hello' 등 명곡이 많이 수록된 앨범이다.
#2. 발라드의 왕자&공주의 등장
누군들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2002년 발라드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성시경이다. 감미로운 음색으로 나즈막이 불러주는 그의 노래는 마치 발라드라는 장르에 꼭 맞춰진 듯했다. 이미 이때부터 이문세-신승훈-조성모를 잇는 발라드의 직계 계승자로 낙점되었던 성시경은 지금까지도 한국 발라드의 대명사 격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여성 가수 중에서는 장나라가 많은 인기를 모았다. 예쁜 외모와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장나라는 요즘엔 중국 활동이나 배우로서의 모습으로밖에는 만나보기 힘든 얼굴이 되었다.
발라드 세계관 최강자 성시경은 박근태가 작곡한 상큼한 라틴 분위기의 타이틀곡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내세우며 야심차게 컴백했다. 데뷔곡 '내게 오는 길'과 1집 '처음처럼'으로 이미 많은 대중들은 차세대 발라더로 성시경을 점찍고 있던 중, 이 2집 앨범 [Melodie D' Amour]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이 앨범은 한국 발라드의 정수(精髓)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윤종신이 작곡한 후속곡이자 성시경의 커리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넌 감동이었어'를 비롯하여, 서정적인 발라드 '선인장', 나원주 작곡의 '바램', 달콤쌉싸름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발라드 '좋을텐데', 김조한과 듀엣으로 부른 '사랑이겠죠'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장나라도 정규 2집 앨범 [Sweet Dream]을 발표하며 심상치 않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성시경과도 친분이 있어 방송출연도 자주 함께 했었는데, 그렇기에 뭇 남성들은 성시경을 엄청나게 질투했었다(...). 장나라는 가냘픈 소녀의 이미지로 왠지 '지켜주고 싶은' 느낌의 스타였는데,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상당한 악바리라고 하며 자기 일에 굉장히 열성적으로 임하는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 이 앨범은 장나라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는데, 타이틀곡 'Sweet Dream' 말고도 성시경이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발라드 '아마도 사랑이겠죠', 박근태 작곡의 슬픈 발라드 '혼자서도 잘해요', 겨울 느낌 물씬 풍기는 'Snowman' 등이 수록되어 있다.
#3. Rock Will Never Die!
록(Rock)이라는 장르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빼놓으면 섭섭할 장르다. 90년대 미국의 메인스트림이었던 R&B보다도 훨씬 더 전에, 록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신중현을 비롯한 미8군 세대부터 헤비메탈, 퓨전 록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록 음악은 (금지곡 조치라는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고서 유유히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한국의 록 열풍이 가장 불타올랐던 시기는 80년대 중반으로, 이른바 록 밴드 간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 등이 그 주축 세력이었으나, 90년대에 이르러 각 밴드의 보컬들이 솔로 가수로 전향하는 등 하향세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에는 인디 밴드 중심으로 록 씬이 형성되는데, 2002년 한국의 록 음악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보자.
2대 보컬이었던 이승철을 객원으로 재영입하고, 희대의 명곡 'Never Ending Story'를 발표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린 밴드 부활. 연이은 흥행 실패로 밴드의 존속마저 위태로웠던 끝에 거둔 성공이라 더욱 값진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밴드의 수장이자 작곡가 김태원이 'Never Ending Story'를 작업할 당시의 이야기가 무척 가슴아프다. 곡을 쓰기가 너무 어려워 집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져 있게 되었는데, 그때의 그리움을 담은 곡이 바로 'Never Ending Story'인 것이다. 김태원 특유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성이 이승철의 감각적인 목소리와 만나 최고의 시너지를 낸 것이다. 'Never Ending Story'의 그늘에 다소 가리긴 했지만, 이 앨범에도 '새벽', '네번째 회상' 등 잔잔한 분위기의 명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자우림의 4집 앨범은 자우림 특유의 음울하고도 시크한 에너지가 듬뿍 담긴 명반으로, 앨범의 전체적인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모던 록 장르인 '팬이야'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팬이야'의 발랄함에 속아서(?) 앨범을 구매했다면 앨범 수록곡들을 접한 이들은 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두운 느낌의 발라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고혹적인 스윙 재즈 풍의 'Hey Guyz', 작은 고양이를 노래한 귀여운 곡 '르샤마지끄' 등이 수록되어 있다.
#4. 2002년의 댄스와 힙합
90년대부터 대한민국의 여름을 책임져 왔던 3인조 혼성 그룹 쿨은 2001년부터 여름과 겨울에 각각 앨범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특히 2002년에 발표한 정규 7집과 7.5집은 대중성과 음악성 모두를 인정받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트 넘치는 쿨 특유의 분위기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진실'과 후속곡 '숙아'로 많은 사랑을 받은 7집 앨범이다. 어느새 여름이 되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면 허전한 존재가 되었던 쿨은 요즘 소식이 통 뜸하다. 홍일점 멤버인 유리의 경우 결혼 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김성수와 이재훈은 가끔 예능 프로그램들에 모습을 비추기는 하지만 노래하는 모습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이다. 어쨌든, 이 앨범에서 다소 엽기적인(?) 노랫말로 화제를 모았던 곡이 있는데, 바로 'Blue Eyes'라는 미디움 템포 발라드 곡이다. 내일이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약속된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는 내용(...)인데,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노랫말을 두고 이게 맞냐, 이해가 되냐 등등으로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앞서 밝혔듯이, 쿨은 2001년부터 이른바 'Whisper' 시리즈라고 하는 겨울 스페셜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즉 한해에 앨범을 두 장씩 발표하는 것인데 여름에 발표하는 정규 앨범에는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하고 신나는 댄스곡들을, 겨울에 발표하는 스페셜 앨범에는 따뜻한 느낌의 발라드 곡들을 주로 수록하여 발표하는 형식이다. 2001년에 내놓은 [First Whisper] 앨범의 타이틀곡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심지어 지금까지도 조정석의 리메이크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아로하'였던 것. 2001년에 이것으로 재미를 본 덕에, 이 프로젝트는 2002년에도 무사히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Second Whisper]라고 명명된 2002년 겨울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곡은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번째 난장이'였는데, 이 곡도 훌륭했지만 이 앨범은 수록곡 전체가 모두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그 중에도 후속곡이었던 '작년, 오늘', 후렴구에서의 템포 반전이 인상적인 '산책', 작곡가 김석찬과 듀엣으로 부른 '걱정이죠', 래퍼 김성수의 숨겨진 보컬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Darling' 등을 추천한다.
지금은 아이돌 위주의 기획사로 변질되었지만 이때만 해도 YG는 힙합 레이블의 성격이 강했다. 지누션, 원타임, 페리 등을 필두로 힙합 장르의 결과물을 주로 내놓았던 YG는 산하 레이블 성격의 엠보트(M.Boat)에서 런칭한 신인 R&B 가수 휘성의 등장으로 R&B 쪽으로 영토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 3인조 스위티(Swi-T)는 그러한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비주얼과 가창력이 언뜻 미국의 R&B 걸그룹인 티엘씨(TLC)를 연상케 한다. 이후 YG는 원년 멤버인 지누션, 원타임, 페리와 스위티, 휘성 등을 한데 묶어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다.
스위티의 데뷔 앨범 [Swi-T]의 타이틀곡은 강렬한 비트의 힙합 R&B 곡 'I'll Be There'였다. 귀에 때려박히는 듯한 비트감과 털기 춤 등이 화제를 모으기는 했지만 대중들의 기대치를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이다. 게다가 후속곡으로 내놓은 R&B 곡 'On And On'의 미약한 존재감으로 인해 스위티는 결국 대중적인 흥행에는 실패하게 된다. 차라리 뉴잭스윙 장르인 'Everybody Get Down'으로 더 오래 활동했다면 가능성이 좀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YG 사단의 모든 아티스트가 총출동하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인 YG Family의 앨범 발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7년에 이미 '우리는 YG Family'를 타이틀곡으로 한 YG Family 1집을 발표했었고, 제법 재미를 본 바 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에서 YG 사단은 YG 소속 아티스트들과 엠보트(M.Boat) 레이블의 신인가수 휘성을 대동하고 YG Family 2집을 만들어 내놓는다. 이 앨범의 포인트는 수면 위로 이미 드러난 아티스트들 이외에, 당시에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던 아티스트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YG 소속이면서 아직 데뷔하기 전이었던 세븐(SE7EN)과 마스타 우(Masta Wu), JC지은, 그리고 엠보트의 비밀병기 박지연(훗날 '거미'라는 활동명으로 활동하게 되는 그 가수 맞다.)의 존재가 그것이다. 특히 박지연이 부른 알리샤 키스(Alicia Keys)의 'Fallin''은 압권이다.
#5. 아이돌의 세대 교체가 본격화되다
1세대 아이돌 시대가 저물고, 아이돌 음악의 세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H.O.T.가 해체하고 S.E.S.와 신화가 마지막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등 한창 때보다는 한풀 꺾인 모습이었지만, SM 엔터테인먼트는 2002년에도 여전히 아이돌 산업에 있어서는 H.O.T. 출신 잔류 멤버인 강타와 문희준, 보아를 필두로 블랙비트, 신비 등의 새로운 그룹을 내놓는 등 여전히 난공불락의 철옹성과 같았다. 반면 박지윤과 지오디(god)의 성공으로 상승세를 점진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던 JYP도 비, 별, 노을 등 신인그룹을 내놓는 등 그 성장 스토리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지면상의 한계로 그 신인들의 앨범을 여기서 소개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재즈 분위기를 한소끔 가미하여 고급진 발라드 음악을 들려주었던 강타는 H.O.T. 멤버들 중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룹 시절의 포지션이 메인 보컬이다 보니 음악적인 완성도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정규 2집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로 테마를 나누어 구성하여 앨범의 짜임새 측면에서도 유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타이틀곡은 정통 발라드 '상록수'이고, 후속곡 '사랑은 기억보다'를 비롯하여 스윙 재즈 풍의 'Happy Happy', 감미로운 러브 송 'Propose', 프랭크 시나트라 풍의 아련한 재즈 발라드 '2032 in Cuba' 등 숨은 명곡들이 가득 수록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2002년에 박효신 3집 다음으로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앨범이 바로 이 앨범이다.)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내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권에서 2002년에 가장 성공한 가수를 묻는다면 단연 보아를 꼽아야 할 것이다. 보아의 2002년 첫 성공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였다. 3월에 나온 일본 첫 정규 앨범인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게다가 연이어 발표한 한국 정규 2집 앨범 [No.1]의 타이틀곡 'No.1'까지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보아는 만 열다섯의 나이에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서 가장 성공한 가수가 되었다.
2002년 여름,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무드를 풍기는 미디움 템포 R&B를 들고 나온 팀이 있다. 바로 브라이언과 환희의 듀오로 구성된 그룹인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이다. 이 정규 3집에는 안타까운 비화가 있는데, 멤버 중 브라이언이 비자 문제로 인해 미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 앨범 녹음도 미국에서 따로 해야 했고 심지어 한국으로 입국하지 못하여 컴백 후 한동안은 환희 혼자 무대에 서야 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앨범의 트랙리스트를 살펴보면, 두 멤버가 함께 부른 곡보다 솔로곡의 비중이 더 많다.
아무튼 이 앨범의 타이틀곡 'Sea Of Love'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음악방송 1위를 거머쥐기도 했고, R&B의 거장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으로부터 선사받은 후속곡 'Condition Of My Heart'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아이돌에서 뮤지션으로 발돋움하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의 4인조로 구성된 핑클은 SM의 S.E.S.에 대한 DSP의 대항마로 런칭된 그룹이다. 핑클 또한 2002년에 DSP와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마지막 정규 앨범인 4집을 발표하는데, 타이틀곡 '영원'의 뮤직비디오에서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핑클의 모든 앨범 중에서 가장 저평가받은 앨범이지만, 당시에 크게 유행했던 게임인 '포트리스'에 수록되며 소소한 화제를 모았던 'Happy'와 같은 곡의 존재감을 간과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S.E.S.의 팬이었는데, 마지막 앨범의 퀄리티만 갖고 비교하라고 한다면 단연코 핑클 앨범이 압승이라고 말할 것이다.
친근한 이미지로 팬덤 외부에서도 호감형 이미지를 구축했던 그룹 지오디도 2002년 12월에 정규 5집을 발표한다. 3집 '거짓말'과 4집 '길'이 연속으로 큰 성공을 거둔 만큼, 5집도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다소 무난한 느낌의 타이틀곡 '편지'는 흥행 연속 행진을 이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밝은 댄스 음악인 '0%'를 후속곡으로 하여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확실히 3, 4집 때만큼의 화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중적인 흥행 측면에서는 주춤한 모습을 보였지만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김태우의 자작곡인 '사랑? 사랑!'을 들어보면 메인 보컬로서의 김태우가 예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가창력을 선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오며
추린다고 추렸는데 무진장 긴 글이 되고 말았다. 무려 여섯 편의 글을, 그것도 3년 전에 쓴 글이라 때로는 간추려야 하고 때로는 필요한 내용을 덧붙여야 하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래도 23년 전, 소중한 꿈을 품었던 한 소년의 열정적인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 <미친 교사의 노랫말 에세이>를 집필하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꿈 같은 건 꾸지 않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던 시절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나다. 나라는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꿈으로만 남겨뒀던 조각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는가. 어디 한 번 두고 보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