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생활교육 시도와 실패담

현직 교사로서 바라본 교육정책-3

by Charles Walker

이래뵈도 나는 중등 1급 정교사 자격연수(이하 1정연수)까지 받고 온 사람이다(당연히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1정연수 때 가장 좋았던 기억은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였다. 그 시간에 경험했던 모든 삽화들이 내겐 새로웠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들끼리 동그랗게 둘러앉아 게임처럼 다양한 활동도 하고, 주제에 맞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고, 나중에는 이야기할 시간이 모자라서 진행하시는 선생님들께서 '행복한 곤욕'을 치르는 모습도 봐야 했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서클(circle)'이었다. 아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서클이다. 서클은 북미 인디언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마을에 갈등이 있거나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이 발생했을 때, 마을 구성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때 발언하는 사람은 어떤 막대기를 쥐고 말해야 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동안에는 누구도 중간에 끼어들 수 없다. 그 막대기가 바로 '토킹 스틱'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에서 쓰이는 서클도 방식은 이와 같다. 실로 간단한 규칙이다.


정진, <회복적 생활교육 학급운영 가이드북>

회복적 서클에 심히 감명받은 결과, 나는 정진 선생님의 <회복적 생활교육 학급운영 가이드북>을 비롯하여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구해다 읽으며 추가적인 공부를 더 했다. 그리고 새로 만날 아이들에게 이를 적용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나에겐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 만날' 아이들이라고는 했지만 그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내가 2학년 담임이었을 때 맡았던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을 그저 3학년으로 그대로 받아 올라가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문과 두 반이 섞이는 것이라 옆 반에서 넘어오는 아이들도 잘 아는 아이들이었다. 내겐 회복적 생활교육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도 좋아할 거라고 믿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장난스럽거나 성의 없이 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학급장 1명과 부학급장 2명도 서클에서 선출되었는데, 후보 출마 과정을 생략하고 선거를 치르지도 않은 채 선출된 학급장과 부학급장은 당장 닥쳐올 학교 행사인 리더십 캠프 참가를 모두 거부했다. 리더십 캠프 참가를 학급장, 부학급장 모두가 거부한 반은 우리 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학급 임원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책임을 강요하게 되는 구조가 발생해 버렸다. 리더십 캠프 행사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 선생님과 주최 부서인 안전생활부에 엄청난 누를 끼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내가 무리하게 진행했던 서클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서클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학급 운영을 위해 '존중의 약속' 서클을 열어서 학급 구성원 모두가 지켜야 할 존중의 약속을 함께 만들어 전지에 써서 교실 앞 벽면에 부착해 두기도 했다. 잘 지켜졌을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그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왜, 어떤 약속이 특히 지켜지지 않았는지를 점검하는 서클도 열었다. 그 서클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스럽고, 성의가 없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서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다는 정보를 다른 경로를 통해 듣기도 했다. 이젠 인정해야 했다. 나의 회복적 생활교육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학기말, 졸업할 때가 가까워졌을 때쯤 나와 라포(rapport)가 상당히 많이 형성된 학생 한 명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학생이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 서클은 아무래도 무리수였던 것 같아요.' 그 학생도 떠날 때가 되니 나에게 확실히 해 두고 싶었던 거겠지. 후배들에게는 악수(惡手)를 두지 말았으면 하는 선한 의도도 있었을 테고.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 두 번 다시 이런 시도는 하지 않으리. 그때 굳게 다짐했다.


그래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존중의 약속 서클에 대한 정보는 필요할 것 같아 아래에 정리해 둔다.



<존중의 약속 작성표>

(위의 책, p.255~256)

[교사-학생]

- 교사는 학생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교사는 학생에게 어떻게 존중받고 싶은가?

[학생-교사]

- 학생은 선생님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학생은 선생님께 어떻게 존중받고 싶은가?

[학생-학생]

- 나는 다른 친구들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어떻게 존중받고 싶은가?

[공동체(학급, 학교 시설, 환경 등)]

- 나는 우리 학급(학교)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 나는 우리 학급(학교)에게 어떻게 존중받고 싶은가?



한동안 참 마음이 아팠다. 야심차게 내걸었던 회복적 생활교육의 깃발이 그렇게 맥없이 꺾여버리는 걸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딱하기도 했고, 이런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게 입시 위주의 시스템 때문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실패 이후 어쨌든 고3 아이들에겐 원하는 대학에 보내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는 생각에, 철저히 고객 대하듯 했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 요구사항은 무엇인지 살피고 또 살피며.


나의 마음은 이때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열정을 가져봤자, 교육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 봤자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며 설령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그건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해야 했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했다. 그래서 김성효 선생님의 <교사의 말 연습>을 꺼내 들었다.

김성효, <교사의 말 연습>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유독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아이를 만날 때가 있다. '너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일 것 같아?'라고 물어보면 그 아이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럼 내 속은 부글부글 끓는 것 같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화가 나지 않겠어? 이렇게 몰아붙이고 싶은데, 그랬다간 또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겠지...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아이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는 2가지에 초점을 두고 지도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상대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게 하기
둘째, 지적하듯 정답을 먼저 말하지 않기

본책 p.95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학생은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걔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느끼는 기분을 알 수 있겠는가? 화가 났다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어느 정도로 어떻다고 대답해야 하는지,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말 대답하기 곤란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원래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학생에게 나를 온전히 이해해보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이고, 오만이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챙겨볼 만한 내용이 있다.


교사는 교실에서 수많은 아이와 밀접하고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과 인간이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교사는 다른 직업과 다르게 감정적으로 에너지 소모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학생과 부딪치게 되거나 학생이 무례하게 행동할 때 다른 누구보다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든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 이런 일은 어느 교실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이런 학생을 대할 때 화를 내거나 야단만 해서는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셋째, 자책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본책 p.72~73


책을 실제로 읽어보면 첫째, 둘째, 셋째까지 모두 세부 내용이 있지만 지면상의 한계로 수록하지 못하고 뼈대만 기록하였음을 미리 알린다. 정리하면 인정과 수용 능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로야 잘 알지만 이 감정이라는 녀석이 트리거만 어떻게 잘못 건드리면 제멋대로 날뛰니 원.


김중수, <교사를 위한 대화법>

이 내용을 좀 더 보완하기 위해 김중수 선생님의 <교사를 위한 대화법>을 꺼내 본다. 학교에 있다 보면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등등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늘 이런 상황에 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 멘탈이 나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나는 그 한계를 넘어서 버렸기에 이렇게 쉬고 있는 것 아니겠나. 일단 책 내용부터 보고 이야기를 이어가 자.


'나한테 왜 이래?', '왜 날 공격하지?'라는 생각 대신 상대가 따질 만하니까 따지는 것이라는 '상대의 관점'에서 듣기를 하게 된다. '듣기'의 방식으로 따지는 상대에게 자꾸 '사실 듣기, 기분 듣기, 숨은 뜻 듣기'를 해주면 내가 기분 나쁘거나 억울해지는 대신 따지러 온 상대의 불편한 마음이 풀려서, 따지러 왔는데 오히려 미안하거나 고마워하는 상대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나의 '듣기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관리자나 악성 민원인들, 학부모들을 대할 때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이 생겨서 학교생활이 당당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본책 p.156~157


내 언어로 요약하자면, 격앙되어 있는 상대방의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청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당신의 말은 이러이러한 것이군요.", "당신은 지금 이러이러한 기분이겠군요.",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이겠군요."라고 말하면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쉬울 것 같은가? 절대 쉽지 않다.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듯한 민원 전화, 조곤조곤 사람 즈려밟는 민원 전화, 무례한 눈빛과 말투로 대드는 학생, 자신의 잣대로 나를 함부로 평가하는 여러 인간들... 그 앞에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고수다. 하지만 나는 그릇이 간장 종지만한 하수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런 공격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학교에서의 일로 대인기피까지 생겨버린 지금으로서는 근처 학교 종소리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진다.


어쨌든 휴직 이전의 나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만용을 부려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제뜻대로 안 되면 상처받고 좌절해서 무너져내리는. 그런 못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왜 교사들이 섣불리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지 몸으로, 감각으로 뼈저리게 느꼈으니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혔다. 일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휴직 이전에 열정적이었던 교사 한 명은 이미 죽었다. 대신 학교를 직장으로 두고 있는 직장인 한 명이 내년 3월에 학교에 되돌아가려고 대기 중이다. 마인드 컨트롤이 내년에도 이렇게 잘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이렇게 나의 실패담을 줄줄 늘어놓았다.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독자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다. 그냥, 나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실패한 게 아니니까. 남이 실패한 거니까 그냥 가볍게 여겨 주셨으면 좋겠다. 어찌됐건 오래 지난 일이고, 지금의 나도 주저앉아 쉬면서 회복하고 있으니 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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