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 일상 여행자

예술이 흐르는 섬, 자말렉으로 가요

by 이집트 손은옥

카이로 도시 이야기를 쓰다가 ‘자말렉(Zamalek)’ 앞에서 이렇게 오래 멈춰있게 될지 몰랐다.

카이로에서 제일 좋아하는 지역인 자말렉에 대해 쓰려니, 이런 면모 저런 면모 얼기설기 얽혀지며 장황해지기만 한다. 진정하고, 다시 담백하게!


자말렉은 원래 '게지라(Gezira)'라고 불렸다. 나일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카이로 북동부에 살고 있는 나는 자말렉에 가기 위해서는 나일강을 건너야 한다. 나일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항상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된다. 처음 건너는 다리가 아닌데도, 그 다리를 건너는 길와 강과 구름은 항상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리 너머의 자말렉의 고풍스러운 실루엣을 보면 설레인다.


항상 찍었다던 자말렉 가는 길 사진은 다 어디 뒀는지.. 자말렉'에서' 찍은 사진만 보이니, 나일강의 모습 감상하시길 ^^;;

자말렉은 다운타운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있는데, 다운타운과 마찬가지로, 19세기 초반에 유럽식 정원으로 개발되면서 점차 상류층 지역이 된 곳이다. 당시 이집트는 유럽의 감성에 빠져 있었고, 이곳도 자연스럽게 유럽풍의 주택가로 변모 되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오는 하늘에서 보면, 카이로의 건물들은 보통 모래빛 네모난 성냥갑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자말렉의 프랑스풍 발코니를 가진 오래된 저택들은 이질적인 매력을 풍기는 모양이다.


요즘 카이로 인근에서 가장 시세가 비싼 곳은 동쪽으로는 뉴카이로, 서쪽으로는 쉐이크 자이드라고 불리는 신생 컴파운드들이지만, 카이로 안에서 ‘전통적인 상류층’이라는 타이틀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자말렉이다. 자말렉 지역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동체 의식 같은것도 느껴진다.


이집트 사회는 사회경제적 계층 구분이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적 차이도 꽤나 크다.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면, 사는 지역을 묻는다. 뉴카이로 거주하던 시절, “~컴파운드(폐쇄형 주거 단지)에 살아요” 하고 말하면, 아파트인지 단독 하우스인지, 어느 구역인지를 묻는 추가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대략 사는 곳과 사는 형태를 물어보며, 은근히 상대방의 재력과 배경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자말렉에서 오래 살았다는 건, 곧 뜨내기가 아닌 집안 혹은 한세대 이상 부를 유지했다는 의미로 보통 받아들여진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강남에서 자랐어" 같은 뉘앙스로 다가온달까?




자말렉이 예술적 낭만이 있는 지역으로 여겨지는데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예술대학과 학생들이 빚어내는 모습들 덕분일 것이다. 자말렉에는 20개가 넘는 갤러리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피카소 아트 갤러리를 꼽을 수 있겠다.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1971년, 이브라힘 모하메드 압델 라흐만이 연 액자 공방이 그 시초였다. 작품을 전시하고 보관할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림도, 사람도 그곳으로 모였다. 1996년, 그는 그 공간을 갤러리로 확장했고, 피카소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그 뒤를 따라 1990년대부터 자말렉에는 미술 공간들이 하나 둘 들어선것이다.

'자말렉 갤러리' 입구

자말렉은 이집트 현대미술의 흐름을 실제로 품어온 장소다. 많은 신진 작가들이 이 지역에서 첫 전시를 열었고, 이곳에서 열린 주요 전시들은 2000년대 이후 이집트 미술의 주제를 사회비판, 정체성, 도시성으로 확장시킨 계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집트 현대미술은 중동 특유의 투박한 듯 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가지고 있고, 작가들의 담아내는 전통적 요소와 현대사회인식이 위트 있게 담긴 그림들이다. 매끈한 미래가 아닌 과거의 따뜻했던 기억들과 추억을 머금고 있는 듯한 작품들이 특히 마음에 든다.


자말렉은 미술 뿐 아니라 음악을 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바로 이집트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국립오페라단과 발레단, 교향악단이 상주하는 이곳은 1988년 건립되었고, 이후 이집트 공연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클래식 뿐 아니라 현대무용, 재즈, 아랍 전통음악까지 포괄하는 공연들이 열리며,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혀왔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하는데,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림의 떡처럼 공연 광고를 약 오르게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아이다(Aida)의 공연 광고도 후일을 기약하며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아이다 공연은 두 아이들 모두 십대가 되고 나서부터, 벼르고 있지만 왠일인지 카이로에서 공연소식이 없다. 오페라 '아이다'는 원래 이집트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될 예정이었지만, 18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먼저 공연되었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 오페라는 지금도 이집트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연으로 여겨진다.



자말렉 감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곳을 꼽으라면, 편집숍인 ‘메종 69(Maison 69)’를 꼽겠다. 집이라는 개념을 컨셉으로 한 편집숍인데, 각 공간이 리빙룸, 주방, 침실처럼 구성되어 있다. 예술과 디자인, 패션이 섞여 있는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이다.

KakaoTalk_Photo_2025-05-10-17-55-45.jpeg @ maison69store 인스타그램

창립자인 아미르 파요(Amir Fayo)는 이곳을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창작과 영감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멋지게 꾸며놓은 놓은 그 공간에서 자말렉을 베이스로 하는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가구업체들과 협업을 하거나, 장식품을 파는 등 작은 예술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선한 일은 아니지만, 주로 전통적인 로컬 샵이나 상업적인 쇼핑몰 중심으로 소비문화가 조성된 곳에서 대형 컨셉샵 혹은 편집샵의 출현은 유럽문화에 익숙한 상류층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느날, 이곳에서 의상과 잡화류 등을 둘러보다가 괜찮게 보고 있었던 가방안에 한국 신문이 들어있었던 것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다. 어떤 유통경로를 통해서 이곳까지 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집트 고급 편집샵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모습에 흐뭇하고 반가웠다.


이집트 마지막 왕의 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을 호텔로 개조한 메리어트 호텔도 자말렉에 위치해있다. 이 호텔 뒷편으로 여러 음식점이 줄지어 모여 있다. 이집트 프렌차이즈 1호점이 탄생하기도 하는 곳이다.

트렌드가 시작되는 곳, 그 이야기는 아무래도 다음편에 이어서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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