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밴쿠버에서 살아남기
어느 날 아침, 나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피를 빠는 거머리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내가 캐나다 밴쿠버로 온 지도 2년이 넘었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아내의 제안에 동의하여 10년이 넘게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지금 가끔씩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거머리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행히도 실제로 거머리로 변하지 않았다. 거머리가 되었다면 바로 변기물에 흘려 내려갔을 것 같다.)
2년 전, 밴쿠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는 바로 직장을 구했다. 나는 아내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워크퍼밋을 가질 수 있도록 밴쿠버 컬리지에 들어갔다. 컬리지에 다니는 동안은 회사 생활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브라질, 태국,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조별 활동을 하고 수업을 듣다 보면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느낌도 들었다. 친구라고 하지만 10년, 15년 이상 차이가 나는지라 한국에서는 서로 편하게 다가갈 수 없겠지만 여기서는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하는 것도 좋았다. 컬리지 다니는 내내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팀원들과는 꽤 친해져서 작년 크리스마스에서 다 같이 소소한 홈파티도 했다.
그리고 1년 전쯤, 컬리지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캐나다 취준생이 되었다. 취준생이라니.. 이건 내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손님이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자면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인턴생활을 했던 회사에 취업되어 아내의 손에 이끌려 단풍국에 오기 전까지 10년 넘게 꾸준히 다니고 있었었다. 중간에 2번 정도 이직 준비를 해봤으나 면접까지도 가지 못했다. 이런 나에게 취준생 타이틀이 붙었다. 그것도 캐나다 땅에서.
졸업 직후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열심히 학교 다녔던 보상처럼 몬트리올과 퀘벡시티를 여행했다. 퀘벡시티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하다는 것은 여행 일정을 짜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렇게 밴쿠버에서 살게 되고 졸업 축하 여행으로 퀘벡시티 갈 줄 알았으면 드라마 좀 볼걸. 그래도 퀘벡시티는 도시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이뻤다. 물론 유명하다는 "빨간 문"도 찾았지만 역시 드라마를 안 본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도깨비"를 재미있게 봤다던 아내마저 빨간 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여행 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이었다면 취뽀카페에 가업부터 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Linkedin Profile 구성부터 시작했다. 여러 회사에 resume를 내고 친절한 거절 메일들을 받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요리, 집안일 그리고 육아에 비중을 높이고 있었다. 그동안 친절한 거절 메일들은 더 쌓여갔고 시간도 계속 흘러갔다.
요리와 집안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은 내가 모두 보러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집에 10m만 나가면 동네 마트나 구멍가게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마트를 가려면 몇 버스나 스카이트레인으로 몇 정거장은 가야 한다. 그리고 물가도 비싸서 쉽사리 물건을 사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 집은 최근에 Costco 회원 가입을 해서 Costco에서 장을 많이 본다. 하지만 우리는 차를 사지 않았다. 그래서 Costco 장을 보려면 구르마 위에 이사 올 때 사용했던 박스를 올린 상태에서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몇 정거장을 가서 박스 안에 식품들을 싣고 돌아온다. 구르마 위에 식료품이 한가득 있는 박스를 싣고 한국의 지하철 같은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오고 있으면 가끔씩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식료품을 담은 해운이사용 박스에는 수신자 이름이었던 내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다. 승객 대부분은 모르는 언어겠지만 한국사람이 있다면 나의 출신이 밝혀질 거 같아서 왠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해가 지나가도 거절 메일은 눈처럼 소복소복 쌓여갔다. 면접까지 간 적도 있지만 첫 인터뷰를 넘어간 적이 없다. 영어 인터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Sorry?", "Pardon?"을 하면 할수록 다음 말이 자신 있게 나오지 않는다.
올해는 아내가 생활비를 일 년 치를 받았다. 매 달 생활비 요청을 하지 않으니 편하다. 그냥 이대로 생활비를 받으면서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스트레스를 비교하자면 회사 생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현재가 편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아내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취업을 하게 되면 이런 생각이 없어질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당연하다는 듯이 없어지게 될까. 아직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