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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와인의 세계를 경험하다

달콤한 빛, 포트와인의 서서

by 트릴로그 trilogue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이야기


본격적으로 포트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두 도시의 이야기부터 간단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도루강을 따라 흐르는 포르투갈 북부 여행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두 도시의 이중주를 만나는 일과 같다. 바로 포르투와 빌라 노바 드 가이아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유명한 동루이스 1세 다리로 굳건히 연결된 이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는 맞닿아 있지만, 품고 있는 이야기와 색깔은 분명히 다르다.


동루이스 다리를 중심으로 왼쪽이 포르투, 오른쪽이 가이아


포르투가 유서 깊은 북부의 중심 도시로서 자신만의 매력을 뽐낸다면, 강 건너편의 가이아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포르투갈 북부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도루강 남쪽에 위치한 빌라 노바 드 가이아는 포르투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독립적인 도시다. 이곳의 정체성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바로 포트 와인(Port Wine)이다.


가이아 지도와 포트 와인셀러들 (Rick Steves Portugal 지도 인용)


가이아 강변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포트 와인 셀러들은 이곳이 포트 와인의 심장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루 강 상류의 가파른 계단식 포도밭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이 이 가이아의 저장고에서 오랜 시간 숙성을 거쳐 비로소 우리가 아는 '포트 와인'이 된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와이너리 투어에 참여하여 포트 와인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배우고, 각기 다른 풍미의 와인을 시음하며 달콤하고 향긋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포트 와인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이아인 셈이다.


줄지어 있는 포트와인 셀러들


또한, 가이아는 포르투 시내의 가장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강변을 따라 거닐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포르투의 붉은 지붕들이 펼쳐내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풍경은 해 질 녘 노을이 강물에 물들 때 특히 황홀하며,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잊지 못할 순간을 기록한다. 포르투의 웅장한 스카이라인과 어우러진 도루 강의 풍경은 가이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가이아 케이블카가 포트와인 셀러들을 굽어 보며 전망대로 오르고 있다.
다른 분위기로 바꿔본 포르투의 모습


포르투가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자랑한다면, 빌라 노바 드 가이아는 포트 와인의 달콤한 유산과 숨 막히는 경치를 선사한다. 이 두 도시는 결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동루이스 1세 다리 위를 걷거나, 라벨루 보트(Rabelo Boat)를 타고 강 위를 유람하며 두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면, 서로 다른 매력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완벽한 여행 경험을 완성함을 깨닫게 된다. 포르투의 활기찬 골목과 가이아의 고요한 와이너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포르투갈 북부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포트와인에 대한 이해


포르투를 대표하는 미식, 포트 와인은 단순한 술을 넘어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지닌 이 주정강화 와인은 포르투갈 북부 도루 밸리에서 생산되며, 포트 와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의 와인셀러에서 숙성된다. 이곳에는 수많은 포트 와인 셀러들이 자리하고 있어, 포트 와인의 제조 과정을 배우고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는 것이 포르투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포트 와인 셀러 오크통의 모습


포르투갈어로 '항구'를 뜻하는 포르투(Porto)는 와인의 명칭에도 고스란히 사용되어 '포트 와인'이라 불린다. 이는 샴페인이나 코냑처럼 지명이 곧 와인의 상징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 흥미롭게도 포트 와인의 탄생과 발전에는 영국의 역할이 지대하다. 영국의 기후는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영국 상인들은 일찍이 포르투갈 북부 도루 강 유역에 주목하며 포도밭을 개척했다.


도루 밸리 와이너리의 모습 (직접 가서 찍지 못해 Getty Images 사진 인용)

17세기부터 포르투에서 생산된 와인이 영국 본토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포르투갈의 강한 햇빛으로 인한 와인 맛의 변질을 막기 위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첨가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 와인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는 강을 따라 들어온 와인을 수출을 위해 숙성시키던 핵심적인 장소였으며, 오늘날 '포트 와인'이라는 상표는 포트 와인 재단의 엄격한 승인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도루 강을 바라보면 라벨루 보트라는 고풍스러운 배들이 눈에 띈다. 이 특이하게 생긴 목조선들은 현재 주로 관광용으로 쓰이지만, 한때는 포르투갈의 핵심 산업인 포트 와인 운송의 생명줄이었다. 라벨루 보트의 주된 역할은 도루 계곡의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트 와인 통을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숙성 창고까지 강을 통해 운반하는 것이었다. 당시 육상 운송이 어려웠던 시절, 험난한 도루 강은 와인 산업의 유일한 운송로였고, 라벨루 보트는 예측 불가능한 급류와 암초 속에서도 와인을 실어 날랐다. 뱃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운항했으며, 배의 안전을 기원하며 종교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라벨루 보트들


19세기말 철도 건설과 20세기 중반 댐 건설로 강 수위가 안정되고 육상 운송이 발달하면서, 1971년을 마지막으로 라벨루 보트의 상업적 역할은 끝이 났다. 요즘 라벨루 보트는 포르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아이콘이 되었다. 이제는 도루 강 6개 다리 크루즈와 같은 관광 투어에 활용되며, 매년 6월 24일 포르투의 수호성인 축제인 상 조앙 축제에서는 라벨루 보트 경주가 열리기도 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기와 맞지 않아 그 광경을 볼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 배들은 단순한 운송 수단을 넘어, 포르투갈 와인 산업의 발전과 도루강 유역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포르투의 정취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의 제약으로 도루강 상류의 도루 밸리, 계단식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장관을 직접 찾아가 보지 못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지역은 포트 와인의 뿌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자, 강과 산이 빚어낸 독특한 풍광을 간직한 땅이다. 그 풍경을 눈앞에서 마주하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 남았지만, 동시에 그 아쉬움은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할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여행의 여백은 때로 미완의 갈증을 남기지만, 바로 그 미완이 새로운 여정을 꿈꾸게 만든다. 도루 밸리는 나에게 언젠가 꼭 돌아와야 할 다음 여행의 약속이자, 포트 와인의 이야기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처럼 남아 있다.


그라함스 포트 와이너리에서의 환상적인 경험


포르투 중심거리 구경을 마친 우리는 우버 택시를 타고 미리 점심 식사를 예약해 둔 그라함스(Graham's) 포트 와이너리로 향했다. 걸어서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기 위하여 우버를 이용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언덕에 고즈넉이 자리한 그라함스 포트 와이너리는 단순히 와인을 맛보는 곳을 넘어선다. 1820년부터 이어져 온 깊은 역사와 변치 않는 장인 정신이 어우러져, 방문하는 이들에게 오감 만족의 황홀경을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포르투 여행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라함스 와이너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켜가 쌓인 우아함이다. 정성스레 가꿔진 정원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20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명문 와이너리의 품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북적이는 도심에서 벗어나 언덕 위에 고즈넉이 자리한 이곳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포트 와인의 깊은 역사를 오롯이 느끼게 했다.

그라함스 포트와이너리의 정문과 후문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예상치 못했던 정전 사태가 있었던 날의 다음 날이었다. 그 여파로 그라함스의 레스토랑 비눔(Vinum)의 실내 좌석은 이용할 수 없었고, 대신 파라솔이 있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아야 했다. 하지만 이 뜻밖의 상황은 오히려 더욱 특별하고 낭만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그라함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도루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압도적인 파노라마 뷰다. 와이너리 테라스나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포르투 시내와 도루 강의 전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최고급 포트 와인을 음미하며 이 황홀한 풍경을 감상하는 경험은 그라함스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이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와인의 맛이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더욱 깊어지는 순간이다.


그라함스에서 바라본 멋진 전경


불안정한 전력 때문에 주문할 수 있는 메뉴도 제한되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로웠다. 복잡한 선택지 대신, 와이너리에서 제공하는 신선하고 소박한 몇 가지 요리 중에서 고르는 것이었다. 강물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은 자연의 조명과 에어컨이 되어 주었다. 진한 베리 향의 루비 포트와 견과류 향이 특징인 토니 포트를 맛보며 각 와인이 지닌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맛깔스러운 음식과 세 종류의 와인(포트 와인 두 가지와 화이트 와인 한 가지)을 기울이며, 눈앞에 펼쳐진 포르투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시간은 그 어떤 화려한 점심보다도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 정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오히려 포르투의 자연과 어우러진 더욱 깊이 있는 미식 경험을 선물해 준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와인숍에서 마음에 드는 20년 산 포트 와인을 구매하며 소중한 추억을 담아왔다.


우리가 주문했던 음식들
비눔의 외부과 와인숍의 내부 모습


그라함스 와이너리에서의 만족스러운 시간을 뒤로하고, 우리는 가이아 지구를 향해 언덕을 내려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포르투 언덕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오른편으로는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 사이로 세계적인 포트 와인 브랜드의 와이너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라함스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레스토랑을 나서자, 눈앞에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포르투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도루 강 위로 우뚝 솟은 동 루이스 1세 다리와 강 양편에 빽빽하게 들어선 붉은 지붕의 건물들, 그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마치 한 폭의 예술 작품 같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위로 유유히 떠다니는 라벨루 보트들은 포트 와인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는 듯했고,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장엄함마저 느끼게 했다. 와인 한 잔의 여운과 함께 바라본 포르투의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조화였다.



시내로 돌아오기 위해 정교하게 놓인 돌길을 걷는 동안 포르투의 또 다른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강가에 자리한 작은 카페들과 상점들,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강 건너편 퍼즐 조각처럼 정교하게 맞춰진 풍경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잔잔한 강물 위로 반사되는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걸음마다 포르투의 낭만이 스며드는 듯한 그 강변길은 그라함스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여정이었다.


그라함스 와이너리는 포트 와인의 본고장에서 와인의 깊이를 이해하고, 포르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오감을 만족시키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포르투에서의 하루는 와인, 역사, 그리고 뜻밖의 유쾌한 경험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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