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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골목

강변과 골목에서 만난 맛집

by 트릴로그 trilogue

포르투의 진정한 매력은 화려한 명소만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깊숙한 곳, 강변의 작은 테라스, 현지인들만 아는 식당에서 비로소 이 도시의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물밥, 프란세시냐, 바칼라우, 문어요리로 이어지는 포르투갈 미식의 계보는 관광객들에게 주로 알려진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동네 식당에서 그 참맛을 드러낸다. 사실 포르투 같은 유명한 관광도시에서 현지인들만 아는 식당은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가급적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을 피해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정전의 오후, 예기치 않은 발견


포르투 도착 첫날 오후 2시. 작열하는 태양이 도시를 달구던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러운 정전이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에어컨은 숨을 멈췄고, 얼음은 녹기 시작했으며, 도시의 일상적 리듬은 잠시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동루이스 다리 전망대'에서 경사가 꽤 가파른 내리막 골목길을 따라 히베이라 지구로 내려갔다. 동루이스 다리의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 찍다가 강변에 툭 튀어나온 작은 공간에 자리한 Ponte Pensil 바를 발견했다. 더위와 갈증,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강변 풍경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유혹이었을까.


Ponte Pensil 바에 들어서니 손님들은 야외 좌석에 제법 있었지만, 어딘가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실내의 환한 조명은 꺼져 있었고, 전기를 쓰던 모든 기기들도 멈춰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야외의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포르투를 대표하는 슈퍼복 맥주 몇 병을 주문했는데, 계산은 오직 현금만 가능했다.


바로 그 순간, Ponte Pensil 바의 진짜 매력이 드러났다. 인공조명이 사라진 자리를 포르투의 자연광이 채웠고, 강물 위로 반짝이는 햇살과 다리의 웅장한 철골 구조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에어컨, 음악, 믹서기 소음 대신 도루강의 잔잔한 물결 소리와 강변을 걷는 이들의 발걸음, 드문드문 들려오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Ponte Pensil의 모습과 거기서 바라본 히베이라 광장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포르투의 가장 순수한 숨결을 느낀 셈이었다. 냉장고의 찬기가 채 가시지 않은 맥주를 마시며, 예상치 못한 온도감 속 새로운 경험도 했다. 정전이라는 뜻밖의 상황에서 Ponte Pensil 바의 숨겨진 얼굴—번화함 뒤에 있던 자연스럽고 서정적인 고요함—을 만난 시간이었다.


다리 위 소년들의 다이빙


바 안에서는 불편함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바깥 도루 강변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단순히 더위를 식히려는 행동을 넘어서, 포르투의 젊음과 자유로움, 강렬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소년들은 망설임 없이 높은 다리 위에서 푸른 강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의 다이빙은 더위로부터의 해방이자, 세상을 향한 자신감 넘치는 도전처럼 보였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뛰어드는 순간마다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강으로 뛰어드는 소년들이 마냥 부럽다.

정전으로 잠시 멈춘 듯한 도시의 정적 속에서, 소년들의 다이빙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환호성, 물에 뛰어드는 소리, 다시 강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들은 그 순간의 포르투가 얼마나 살아 숨 쉬는 곳인지를 보여주었다. 관광객들에게는 특별한 풍경이겠지만, 포르투 소년들에게는 더운 오후의 지극히 평범하고 즐거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도시의 혼란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루강을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와 낭만을 느꼈다. 정전도, 더위도 그들의 순수한 즐거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측 불가능했던 하루 속에서 만난, 포르투의 또 다른 진짜 얼굴이었다.


강변의 바칼라우, Muro do Bacalhau


저녁식사를 위해 계획했던 타베르나 도스 메르카도레스(Taberna Dos Mercadores)는 결국 포기해야 했다. 유명한 전통 해산물 레스토랑이었지만 예약이 불가능했고, 직접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섰다. 포르투에서의 짧은 일정을 고려할 때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타베르나 도스 메르카도레스의 기다리는 줄
히베이라 광장 입구

대신 히베이라 지구 강변 끝자락에서 Muro do Bacalhau를 찾아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구 요리 전문점이다. 포르투갈은 "1001가지 대구 요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바칼라우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조리법부터 현대적 재해석까지 다양한 바칼라우 요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레스토랑은 도루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부는 아늑하면서도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식사의 만족도를 높여주었다.

레스토랑 무루 두 바칼라우의 분위기


바칼라우 요리의 완벽함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Bacalhau à Brás였다. 잘게 찢은 소금에 절인 대구 살, 얇게 채 썬 감자, 양파를 함께 볶은 뒤 달걀노른자로 부드럽게 버무려 완성하는 요리다. 짭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계속해서 포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요리는 단순히 대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넘어, 포르투갈 사람들의 오랜 역사와 삶이 담겨 있는 듯했다. 소금에 절여 보관했던 바칼라우가 이렇게 섬세하고 다층적인 맛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갑오징어와 오리밥의 만남

매니저의 추천으로 주문한 갑오징어 구이요리도 기억에 남는다. 부드럽게 구운 갑오징어에 상큼한 포르투갈산 청포도 와인 소스를 곁들인 요리였다. 탱글 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상큼한 소스가 해산물 특유의 비린 맛을 잡아주며 신선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요리는 오리밥(Duck Rice with Chorizo).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였다. 잘게 찢은 오리 고기와 초리소, 건과일 조각을 넣어 풍미를 살린 요리 위에 생햄이 올려져 고소함을 더했다. 짭조름한 감칠맛과 건과일의 은은한 단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주문한 음식들


모든 요리가 전통과 재료 본연의 맛을 존중하면서도 조화로운 풍미를 만들어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식사와 함께 곁들인 현지 와인은 바칼라우 요리와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주었다. 도루 강변을 바라보며 진정한 포르투갈 음식을 즐기는 경험은 포르투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히베이라와 주변 야경


플로레스 거리의 보석, 칸티나 32


브라가 당일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로 돌아온 저녁, 우리는 플로레스 거리(Rua das Flores)로 향했다. '꽃의 거리'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이 거리는 16세기 초 포르투의 번영기에 조성되었다. 양옆으로 늘어선 오래된 건물들의 1층은 지금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었다.

플로레스거리에서 마주친 포르투 대학생들과 거리 모습


칸티나 32, 포르투의 감각을 담은 공간

Rua das Flores 32번지에 자리한 칸티나 32(Cantina 32)는 단순한 식당이라기보다, 특별한 분위기와 창의적인 요리로 여행의 기억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공간이다. 겉모습은 오래된 건물의 석재가 주는 묵직한 질감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빈티지와 모던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골목의 정취와도 잘 맞아떨어져, 문 앞에 서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가게 된다.


안으로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 아래 따뜻한 대화 소리가 흘러나오며, 포르투의 낭만이 한층 더 진하게 느껴진다. 겉에서부터 전해지던 좋은 기운이 내부에서는 더욱 풍성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칸티나 32의 외부 모습



맛의 기억, 여행의 완성

칸티나 32의 내부는 마치 작은 보물창고 같았다. 높은 천장과 노출된 콘크리트 벽은 거칠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곳곳에 놓인 빈티지 타자기와 오래된 자전거, 그리고 푸릇한 식물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개성을 불어넣고 있었다. 장식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끌어,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을 완성했다.


우리가 안내받은 자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긴 테이블이었다. 낯선 이들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나누는 방식은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지만, 곧 자연스러운 대화와 웃음으로 이어졌다. 이 특별한 배치 덕분에, 칸티나 32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칸티나 32의 내부 모습


"복잡하지 않은 요리"를 추구한다는 이 식당의 철학은 메뉴 곳곳에서 드러났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흥미로운 조합과 예쁜 플레이팅으로 시각적 즐거움까지 선사했다. 따뜻한 빵과 풍미 깊은 올리브 오일로 식사를 시작했다. 갓 구운 빵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완벽한 서막을 열어주었다.


주문한 음식들

메인 요리로 선택한 문어 구이는 바삭함 속에 부드럽고 쫄깃한 문어살이 완벽하게 익어 있었다. 레몬을 살짝 뿌리니 상큼함이 더해져 물리지 않는 맛을 선사했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문어 요리가 많은 칭찬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산물 리조또는 부드러우면서도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신선한 해산물이 아낌없이 들어가 바다의 풍미를 가득 담았다. 해산물들은 적절히 익어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했고, 잘 어우러진 소스가 깊고 진한 맛을 완성했다.


포르투갈 현지 와인을 곁들이며 포르투에서의 추억을 나누었다.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는 식사의 즐거움을 배가시켰고, 북적이는 공간 속에서도 우리만의 아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칸티나 32에서의 저녁은 단순히 맛있는 식사를 넘어섰다. 포르투의 정취와 미식의 즐거움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정전으로 시작된 예상치 못한 발견부터 강변의 바칼라우, 그리고 플로레스 거리의 세련된 저녁까지. 포르투의 진정한 매력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들 사이에,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그리고 골목길 깊숙한 맛집들에 숨어 있었다. 관광 명소도 좋지만, 이런 진짜 경험들이야말로 여행을 완성하는 것 아닐까. 포르투는 그런 도시였다. 계획에 없던 발견을 선사하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아쉬움을 달래는 밤의 산책


포르투의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다리로 향하는 동안, 도시는 서서히 그 밤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좁은 돌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노란 불빛들, 그리고 도루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브라가를 바삐 다녀오느라 하루 종일 쌓인 피로를 씻어주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포르투의 밤은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거리가 이제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가로등 아래 오래된 건물들의 실루엣이 마치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동루이스 다리 초입에서 바라본 포르투 / 위 사진 중 오른쪽은 상 벤투 역의 모습

마침내 동루이스 1세 다리에 도착했을 때, 철골 아치교는이미 어둠 속에서 황금빛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86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루강의 풍경은 언제 봐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강물 위로 다리의 조명이 흔들리며 비치고,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포트 와인 저장고들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불빛들이 강변을 따라 점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포르투 구시가지의 오렌지빛 지붕들과 상 벤투 역 주변의 불빛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야경을 완성했다.

동루이스 다리에서 바라본 밤의 포르투와 가이아

다리 위에 서서 포르투의 밤을 바라보며 이 순간, 이 풍경, 이 감동이 포르투 여행의 진정한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뺨을 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전철의 종소리와 함께 포르투의 밤은 깊어만 갔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보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감사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동루이스 다리를 질주하는 전철


동루이스 다리에서 바라본 포르투의 야경은 단순한 관광 명소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여행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마무리해 준 소중한 선물이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충분히 야경을 감상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비록 포르투 여행은 끝나가지만, 이 도시가 선사한 이 마지막 밤의 선물은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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