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제수스 두 몬테로 가는 길
브라가를 찾는다면 봉 제수스 두 몬테(Bom Jesus do Monte)는 놓쳐서는 안 될 목적지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성스러운 분위기와 예술적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히 '교회'나 '성당'을 넘어, 신앙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순례의 장소이자, 방문객 모두에게는 잊지 못할 경외감을 선사하는 종합적인 신성 공간의 의미가 강했다.
이나투 비스트로에서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식당 앞에서 볼트 택시를 타고 곧장 정상까지 올랐다. 불과 15분, 9유로면 갈 수 있었으니 궂은 날씨 속에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보통은 택시로 정상까지 오른 뒤 유명한 바로크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오기를 권장한다. 몸의 힘을 아끼면서도 계단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는 구불구불한 산길과 점점 더 넓어지는 브라가 시내가 보였다. 빗발에 가려진 풍경은 오히려 신비로움을 더했다.
차에서 내리자, 독특한 분위기의 인공동굴(Gruta Artificial de Ernesto Korrodi)과 빗속에 웅장하게 서 있는 바로크 양식의 봉 제수스 두 몬테 교회와 그 주변의 작은 성당들이 눈에 들어왔다.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주 성당 봉 제수스 교회가 빗속에 고요히 서 있었다. 외벽은 빗물에 젖어 더 단단하고 위엄 있어 보였고, 성상과 부조들은 은빛 물기를 머금어 영롱하게 빛났다. 빗소리는 마치 잔잔한 성가처럼 들려 공간을 더욱 경건하게 물들였다.
메인 성당인 봉 제수스 교회는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바로크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교회 내부의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는 고요함 속에서도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종교를 넘어선 깊은 평안함을 선사하는 듯했다. 마치 비 오는 날의 고즈넉한 사찰처럼, 봉 제수스 교회는 차분하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신앙의 길, 577 계단
그러나 봉 제수스의 진정한 매력은 정상의 성당보다도, 그곳에 이르는 길에 숨어 있었다. 지그재그로 꼬인 577개의 계단은 단순한 오르막이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을 담아 걷는 여정이었다. 계단 양쪽에는 작은 예배당과 조각상이 촘촘히 이어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앙의 장면이 새겨지듯 다가왔다. 성경 속 이야기를 담은 부조들은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해 보였고, 특히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마주했을 때는 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독교의 3대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을 표현한 '삼덕의 분수'와 오감을 나타낸 분수였다. 안개와 비가 뒤엉킨 봉 제수스의 계단은 마치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듯 흐릿했다. 물에 젖은 돌길을 내려오다 마주한 분수들은 날씨와 더불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십자가 아래에서 흘러내리던 물줄기는 보이지 않는 근원을 증언하듯 믿음의 무게를 담고 있었고, 치켜든 손끝에서 떨어지는 물은 멀리 다가올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아이들을 품은 여인의 발치에서 쏟아져 내린 물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 세 가지 덕목은 빗방울과 함께 뒤섞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고, 그 흐름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을 적셨다.
이어진 것은 ‘오감의 계단(Escadório dos Cinco Sentidos)'이었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다섯 가지 감각이 각각의 분수와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얼굴, 귀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소리, 입에서 솟구치는 물줄기는 다소 기묘했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마치 인간의 감각이 곧 신성으로 이어지는 문이라는 뜻을 전하는 듯했다.
단순히 물이 나오는 것을 넘어, 각 분수는 인간의 감각과 신성한 지혜를 연결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는 듯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물소리, 비에 젖은 흙내음과 은은한 꽃향기,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까지 오감으로 느끼도록 설계된 건축가의 지혜에 경외심을 느꼈다. 빗방울이 흰 대리석 계단에 떨어져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경건한 기도의 선율처럼 들렸고, 각 채플의 조각상들은 비에 젖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빗줄기에 젖은 분수들은 오감의 허망함을 흘려보내듯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흩어지는 감각의 소음을 지워내자, 빗속에서도 오직 위쪽 성당의 쌍탑 만이 또렷하게 솟아 있었다.
브라가의 전경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단조롭지 않았다. 흐르는 물과 돌 위에 부딪히는 빗방울, 땅과 꽃에서 풍기는 향기, 숲에서 흘러오는 바람 소리가 산문 같은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 계단 위에서의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고요한 기도 같았다.
계단 끝자락에 다다르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브라가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드러났다. 회색빛 하늘 아래 빨간 기와지붕들이 수채화 같은 대비를 이루고, 대성당의 탑과 여러 교회 건물들은 안갯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솟아올랐다.
브라가에서 이 신성하고 아름다운 언덕을 직접 오르내리며, 영혼의 정화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이곳은 분명 당신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신성한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오후 5시, 택시를 부르기 어려워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1.5유로, 20분 남짓이면 충분했고, 버스 창밖으로 스쳐가는 일상의 풍경은 오히려 더 친근했다. 이어 기차를 타고 포르투로 돌아가는 동안,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빗속의 봉 제수스 교회, 장엄한 계단의 길, 브라가 사람들의 미소는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하며 브라가 여정은 마무리되었지만, 비 오는 날 오르내린 봉 제수스 두 몬테의 기억은 삶 속에 깊은 잔상으로 남았다. 브라가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영적인 울림을 주는 도시였고, 그 계단 위에서의 시간은 오래도록 되새길 또 하나의 여정이 되었다.
오후 5시 35분, 브라가역에서 포르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 몸은 다소 피곤하였으나, 마음은 충만하였다. 기차 안에서 금일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되돌아보니, 봉 제수스 두 몬테의 장엄한 계단, 브라가 대성당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 뜻밖의 미식체험 그리고 현지인들의 따뜻한 미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포르투갈 북부의 종교적 전통과 역사를 한 번에 체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다.
포르투 상벤투역에 도착하며 알찬 브라가 여행은 막을 내렸다. 브라가와 봉 제수스 두 몬테는 포르투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완벽한 여행지였으며, 궂은 날씨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이곳은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과거와 현재가 섬세하게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발걸음 닿는 곳마다 고대 로마의 숨결과 깊은 종교적 유산이 짙게 배어 있었다.
리스본과 포르투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지만, 브라가가 지닌 매력은 그저 크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깊이를 지녔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브라가는 역사와 종교, 젊음과 활기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로, 포르투갈 여행 시 꼭 방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 우리는 내일 고속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