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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겹, 리스본의 심장을 걷다

역사의 숨결과 일상의 리듬 사이에서

by 트릴로그 trilogue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오직 여행자만이 끝날뿐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


포르투에서 리스본까지: FlixBus 3시간의 여정


포르투의 아침은 여느 때처럼 도루 강 위로 잔잔히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숙소 체크아웃을 마친 뒤 볼트 택시로 캄파냐 역 인근의 FlixBus 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10시 출발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마신 마지막 커피는 짧은 작별 인사 같았다.


FlixBus 탑승 직전


정시에 도착한 녹색과 흰색의 FlixBus는 깔끔하고 단정했다. 리스본까지는 약 300킬로미터의 거리다. 이제 막 약 3시간의 이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좌석은 생각보다 넉넉했고, 각 자리마다 USB 충전 포트와 접이식 테이블이 갖춰져 있었다. 창가에 앉아 가방을 발치에 두고, 물과 책, 노트를 꺼내놓았다.


캐리어는 안전하게


포르투에서 리스본까지의 여정
“리스본까지 직행 3시간, 중간 정차는 없습니다."

운전기사의 짧은 안내가 전해지자, 버스 안은 금세 정숙해졌다. 창밖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아마 도중에 한번 쉬고 가는 버스도 있는 모양이다. 버스가 천천히 출발하며 포르투의 마지막 모습들이 스쳐갔다. 붉은 기와지붕들이 물결치듯 이어지고, 멀리 도루강 위로 아치형의 동루이스 1세 다리가 아스라이 보인다. 이내 A1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분주한 도시의 기운은 서서히 사라지고, 내륙의 평온함이 자리 잡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유칼립투스 숲, 드문드문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구릉이 부드럽게 굴곡을 이루는 풍경. 화려한 도시와는 다른, 소박하지만 본질적인 포르투갈의 얼굴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저마다의 시간이 흘렀다. 앞자리의 두 여인은 한동안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곧 조용해졌고, 옆자리 학생은 묵묵히 과제를 이어갔다. 뒷자리 부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속에서 나 또한 여행 일지를 정리하며 풍경에 마음을 맡겼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이 지나자 풍경이 다시 바뀌었다. 구릉은 점차 평지로, 숲은 건물과 도로로 자리를 내어주었다. 멀리서 거대한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 위로 붉은빛 4월 25일 다리가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테주강이었다. 버스 안은 도착을 앞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바빠졌고, 나 역시 가방을 정리하며 마음을 새로이 했다.


도착한 오리엔테 터미널의 모습


정확히 3시간 15분 만에 FlixBus는 리스본 오리엔테 터미널에 멈춰 섰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구조공학자, 조각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흰 철골과 유리 구조물은 거대한 새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 예술·공학·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며, 역동적인 곡선과 혁신적인 구조로 잘 알려져 있다. 3시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며 들은 기사의 인사가 따뜻했고 인상적이었다.


“Obrigado, boa viagem(고맙습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리스본, 광장 속을 걷다


리스본 중심부의 지도 ('Rick Steves Portugal'에서 인용)


물결 위에 쌓인 시간들


테주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어귀에 리스본이 있다. 1147년부터 이곳은 포르투갈의 중심이었지만, 도시의 진짜 나이는 그보다 훨씬 오래다. 로마인들이 남긴 돌길 위로 무어인들의 기하학적 타일이 덧입혀지고, 그 위에 다시 대항해 시대의 황금이 스며들었다. 1755년의 대지진이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지만, 폐허에서 일어선 도시는 이전보다 더 견고해졌다.


Lisboa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시다. 오디세우스가 세웠다는 전설 속 울리시포에서 시작된 이 이름은, 신화와 역사 사이 어디쯤에 자리한다. 진실이든 허구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 도시가 언제나 떠남과 돌아옴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센트 성인의 유해가 강을 건널 때 까마귀 두 마리가 따라왔다는 이야기는 도시 곳곳의 문장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리스본 사람들의 진짜 성인은 따로 있다. 12세기말 이곳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죽은 안토니오 성인. 파도바의 안토니오라 불리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여전히 리스본의 아들이다. 매년 6월 13일이면 도시가 변한다. 골목마다 정어리 굽는 냄새가 퍼지고, 바일레 포푸라르의 리듬이 밤새 이어진다. 관광객들은 이것을 축제라 부르지만, 리스본 사람들에게는 그냥 6월이다. 성인을 기리는 마음과 여름을 맞는 기쁨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시절.


볼트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오리엔테 터미널의 모습을 담다


리스본 오리엔테 터미널에서 볼트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강이 없었다면 리스본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관통해 흘러온 테주강은 여기서 대서양과 만나면서, 수 세기 동안 포르투갈인들에게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호텔은 아우구스타 거리 근처에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밖으로 나가니, 햇빛이 석회암 건물들에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었다. 거리는 여러 나라 말이 뒤섞인 소음으로 가득했다. 아우구스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개선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너머로 코메르시우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코메르시우 광장에 서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만난 시간들


광장은 완벽한 무대였다. 삼면의 노란 건물이 객석을 만들고, 테주강이 배경 역할을 했다. 1층 아케이드의 카페에서는 커피 향이 흘러나왔고, 중앙의 주제 1세 기마상은 변함없이 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커다란 비누거품을 만들어내자 아이들이 몰려들어 깔깔거렸다. 다른 한쪽에서는 파두 가수가 기타를 들고 애절한 선율을 뽑아냈다. 노천카페의 재즈와 거리 음악이 서로 경쟁하듯 울려 퍼졌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위는 비눗방울 모습. 아래는 워터프런트에서 버스킹 하는 모습


광장을 천천히 거닐며, 나는 이곳이 품은 역사와 문학을 떠올렸다. 한쪽에는 포르투갈의 바다와 모험을 노래한 카몽이스가 있었다. 그는 모험가이자 작가로,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를 루시아드라는 서사시로 기록했다. 모로코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고, 인도의 고아에서는 빚으로 감옥에 갇히며, 중국에서는 난파를 겪었던 그의 삶은 포르투갈 제국의 모험과 위험을 상징한다.


또 다른 한편에는 20세기 포르투갈의 정신을 담은 페르난도 페소아도 떠올랐다. 그는 여러 가명을 통해 서로 다른 목소리와 세계관을 글로 표현했으며, 시골 사람의 순수한 시선부터 철학자의 날카로운 사유까지, 그의 시와 산문은 다층적이었다. 우리는 광장 근처, 그가 즐겨 찾던 식당에 들러 잠시 쉬며 커피를 마셨다. 오래된 나무 테이블과 은은한 조명이, 마치 페소아가 한쪽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를 써 내려가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의 오른쪽에 모자와 사진이 걸려 있는 자리가 페소아의 단골석이다


페소아가 단골로 다녔던 식당 'Martinho da Arcada'.


지만 리스본의 평화로운 오늘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755년 11월 1일, 대지진과 쓰나미, 이어진 대화재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폼발 후작의 재건과 시민들의 회복력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균형 잡힌 건물과 활기찬 거리, 테주강을 마주한 계단에서 다시 생동하는 도시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광장을 바라보며,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의 장면이 떠올랐다. 군인들의 총구에 꽃이 꽂히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날. 이전까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광장과 강 위로 퍼져나가던 순간이, 오늘날에도 이 거리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은은하게 이어지는 듯했다.


계단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나는 3년 전 톨레도를 떠올렸다. 성벽 아래를 굽이치던 타구스강의 고요한 곡선, 파라도르 호텔의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그 단단한 물줄기. 같은 강이었다. 다만 톨레도에서는 타구스였고, 여기서는 테주일 뿐. 스페인 고원에서는 역사의 침묵을 간직했던 강이, 리스본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향한 항로가 되어 있었다.


Parador de Toledo 호텔 앞 전망대에 내려와 바라본 톨레도 시내 모습
톨레도 산마르틴 다리(Puente de San Martín)에서 내려다본 타구스강의 모습


늦은 오후, 계단에 앉아 테주강을 바라보니, 한때 향신료 무역으로 분주하던 소음은 이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목소리로 바뀌어 파도처럼 흘렀다. 과거와 현재, 문학과 역사, 인간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3시의 해가 강 위로 선명한 빛을 던지며 테주강 수면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광장의 계단에 앉아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강바람에 실려오는 소금기, 거리 공연자의 아코디언 선율,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천카페의 컵 부딪치는 소리.


테주강 워터프런트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리스본은 그렇게 흘러간다. 과거를 품되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꿈꾸되 현재를 놓치지 않으면서. 테주강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도시. 신화와 역사, 파괴와 재생, 모험과 향수가 한 장면에 겹쳐지는 곳. 오후의 햇살이 노란 건물들을 따뜻하게 감쌀 때, 우리는 그 모든 시간 속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아우구스타 거리, 일상과 여행의 경계


다시 개선문을 통과하니 아우구스타 거리가 펼쳐졌다. 1755년 대지진 이후 바이샤 지구의 재건 과정에서 만들어진, 길이 1.2km의 보행자 전용 거리다. 바닥에는 전통 기법인 ‘칼사다 포르투게사’가 깔려 흑백의 기하학적 무늬가 이어진다.


아우구스타거리에서 바라본 개선문의 위용


거리 양옆에는 18세기 양식을 따른 네다섯 층 건물이 늘어서 있고, 1층은 식당과 기념품점, 위층은 주거와 사무 공간으로 쓰인다. 오래된 건물 외벽에 아줄레주 장식이 남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점심 무렵, 카페와 레스토랑은 관광객과 주민 모두로 활기가 넘쳤다.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나오니, 거리 모퉁이에서 젊은 음악가가 기타로 파두를 연주하고 있었다. 기타 케이스에는 여러 나라 동전이 뒤섞여 있었다.

아우구스타 거리의 모습과 공중부양 중인 거리예술가


거리를 걷다가 만난 제과점 ‘만테가리아’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19세기부터 운영된 이곳은 파스텔 드 나타로 유명하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맛본 바삭한 겉면과 부드러운 커스터드는 ‘리스본의 첫맛’으로 손색이 없었다. 조금 더 걷자 코르크 제품을 가득 진열한 상점이 보였다. 포르투갈은 세계 코르크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 지갑, 가방, 심지어 우산까지 코르크로 만든 물건들은 흔하면서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관광과 생활, 전통과 현대가 거리 곳곳에서 동시에 드러나고 있었다.


3대 나타집 중의 하나라는 '만테가리아'에서 리스본의 첫 나타를 즐기다




리스본 중심에서 도시의 맥박을 느끼다

아우구스타 거리를 끝까지 올라서자 호시우 광장이 나타났다. 중세 이래 리스본의 중심이었으며, 19세기 중반 지금의 형태로 정비되었다.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돈 페드루 4세 동상 주위로, 바닥에는 흑백의 파도무늬 칼사다가 출렁였다. 이는 바다의 도시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무늬다. 몇 년 전 갔었던 마카오의 세도나 광장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분수대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카페테라스에는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이 섞여 있었다. 광장에 앉아 잠시 그 활기를 지켜보니,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여전히 도시인의 생활 무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호시우 광장
호시우 역의 모습


호시우 광장에서 이어지는 인파의 흐름을 따라 몇 걸음 옮기니 도심의 분주함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헤스타우라도르스 광장에 다다랐다. 넓은 아스팔트 위로 바쁘게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 속에서도,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는 묵묵히 시간을 관통하며 서 있었다. 한 나라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돌기둥 앞에 서면, 역사란 결코 책 속의 사건이 아니라 도시의 공기 속에 스며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헤스타우라도르스 광장


광장 위에 흑과 백의 문양을 새겨 넣은 칼사다 바닥을 천천히 걸을 때, 나는 문득 발밑의 돌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장인의 손길이 모여, 도시 전체를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엮어 놓은 것이다. 그 위를 걷는 순간, 여행자는 단순한 행인이 아니라 역사의 무늬 속을 지나가는 존재가 된다.


칼사다 작업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재현한 동상


독립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을 지키고 있지만,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은 기념비가 아니라 작은 잔에 담긴 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장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가게, '아 진자냐(A Ginjinha)'. 19세기부터 이곳은 변함없이 체리주를 내어왔다. 안으로 들어설 필요조차 없었다. 창가에서 주문하면 작은 잔이 내어지고, 사람들은 길 위에서 잔을 기울인다.


광장에 잠시 머물며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가는 이들의 풍경은 리스본 특유의 소박한 삶의 리듬을 잘 보여준다. 나 또한 그 흐름 속에 잠시 머물며, 작은 잔 하나가 도시의 정체성을 어떻게 품어낼 수 있는지를 깊이 느꼈다. 우리는 나중에 리스본 식당을 들릴 때마다 무료로 제공된 진자냐를 여러 번 경험했다.


아 진자냐(A Ginjinha)의 멋진 모습


해 질 녘에 도착한 피게이라 광장은 호시우 광장보다 더 분주했다. 18세기 무화과나무에서 이름을 얻은 이곳은 지금 대중교통의 허브다. 광장에는 트램과 버스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지하철 환승객이 몰려들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지도를 펴든 관광객, 장바구니를 들고 귀가하는 주민, 수다 떠는 학생들까지. 모두가 같은 공간을 다른 용도로 채우고 있었다. 중앙의 주제 1세 기마상과 대지진 재건을 묘사한 부조는, 분주한 현재를 배경으로 다시 한번 도시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밤이 되니 상 조르즈 성의 윤곽이 가깝게 느껴졌다.


피게이라 광장 도착 직후와 어둠이 드리워진 모습. 뒤편의 환한 곳이 상 조르즈 성이다
포르투갈의 명물인 정어리 통조림 기념품 상점 'Mundo Fantástico da Sardinha Portuguesa'의 모습




카몽이스 광장, 문학의 기억

다음 날 아침,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오르자 카몽이스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투갈의 국민 서사시 『루지아다스』의 작가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다. 1867년 건립된 동상 주변에는 여덟 명의 작가 조각상이 둘러서 있고, 기단에는 시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카몽이스 광장의 모습


바이루 알투의 중심에 자리한 이 광장은 젊은이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장소다. 낮부터 작은 갤러리와 빈티지 상점, 파두 하우스가 둘러 있었지만 특히 저녁이 되자 레스토랑 테라스가 열리고 사람들의 활기가 두드러졌다. 대학생들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고, 연인들은 광장 벤치에서 소곤거렸다. 관광객들은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국의 문학적 순간을 기록했다.




폼발 광장과 리베르다데 대로, 재건의 상징

도심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니 마르케스 데 폼발 광장에 다다랐다. 원형 교차로 중심, 높이 32미터의 기둥 위에는 리스본 재건을 총괄한 폼발 후작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기단의 부조는 대지진과 재건의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사자상은 용기와 의지를 상징한다.

폼발 광장

광장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동상은 언제나 같은 자세지만, 발아래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남쪽으로는 19세기에 파리의 샹젤리제를 본떠 만든 리베르다데 대로가 곧게 뻗어있었다. 당시 포르투갈 최대 규모의 대로였던 이 길은 지금도 고급 호텔과 브랜드 상점으로 가득했다. 들어선 현대적 건물과 화려한 쇼핑몰은 리스본의 또 다른 현재를 보여주었다.


에두아르두 7세 공원, 도시와 시간의 파노라마


리베르다데 대로의 끝자락에는 에두아르두 7세 공원이 있다. 1903년,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리스본 방문을 기념해 조성된 대형 공원으로, 프랑스식 정원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넓은 잔디와 대칭적인 화단, 분수와 산책로가 절제된 질서의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에두아르두 7세 공원. 멀리 테주강이 보인다

공원 정상에 오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이샤 지구의 격자형 가로, 저 멀리 알파마 언덕과 바이루 알투의 지붕들, 테주강과 그 위의 4월 25일 다리, 강 건너 크리스투 레이 동상까지. 아주 맑은 날에는 카스카이스 해안선까지 보인다고 하지만, 이날은 노을빛이 도시를 은은하게 덮으며 또 다른 장관을 완성해 주었다.

콜롬비아의 유명한 조각가 보테로의 작품 '모성 Maternidad'이 인상적이다


저녁 무렵, 공원 벤치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았다. 이 광장들을 걸으며 만난 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의 층위였다. 대항해 시대의 영광, 대지진 이후의 재건,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의 이상, 그리고 오늘의 분주한 일상까지. 리스본의 광장은 과거와 현재가 매 순간 나란히 살아 있는 무대였음을 깨닫게 했다.


중심지 상세지도 ('Rick Steves Portugal'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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