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과 수도원을 품은 신성한 유산
리스본 시내를 걸으면서 새삼 놀란 점이 있었다. 언덕과 골목마다 크고 작은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자가 아니지만, 이 성당들을 마주할 때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가 겪어온 수백 년의 굴곡과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임을 느끼게 된다. 어떤 성당은 무너진 폐허로 남아 새로운 상징이 되었으며, 또 다른 성당은 지금도 신자들의 기도가 이어지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가 지나온 격변과 회복을 고스란히 증언하는 장소였다.
나는 리스본에서 다섯 곳의 성당과 수도원을 찾았다. 상 도밍고 성당, 순교자들의 성모 성당, 카르무 수녀원, 리스본 대성당, 그리고 상 비센트 드 포라 수도원. 그곳들을 차례로 걸으며 느낀 것은 화려한 건축미보다도 상흔이 만들어낸 울림과 고요 속에서 피어난 힘이었다.
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은 단순히 종교적 공간을 보는 경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과 직접 맞닿는 일이었다. 불길의 흔적을 간직한 벽, 은은한 빛 속에서 신앙의 무게를 일깨우는 제단, 지붕 없는 폐허로 하늘을 품은 수도원…. 리스본의 성당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 도시는 어떻게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다.
호시우 광장과 피게이라 광장 사이, 수많은 인파가 오고 가는 좁은 골목 끝에 상 도밍고 성당이 서 있다. 소박한 외관 속에서 이 성당은 리스본이 지나온 고난을 누구보다 극적으로 간직한 건축물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이후 수세기를 지내오는 동안, 이 성당은 두 차례의 대지진과 1959년의 대화재를 겪었다. 특히 화재로 건물 내부가 거의 전소되었으나, 1990년 성당을 재개방할 때 성당을 완전히 새롭게 꾸미는 대신 벽과 기둥의 상처를 억지로 지워내지 않았다고 한다.
성당의 입구에 서자마자, 한 도시가 겪어온 고통의 흔적이 압축된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지진과 화재로 검게 그을린 벽면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성당의 표면에 남아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신앙의 무게를 더 실감하게 했다. 마치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버텨온 역사의 강인함을 말해주는 증언 같았다. 높은 천장, 회색빛 기둥이 굵직하게 서 있지만, 진짜 시선을 붙잡는 것은 검게 그을린 벽과 탄 자국이었다. 기둥이 갈라진 그대로, 돌벽에 그을음이 남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흔적은 슬픔보다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장식이 사라진 자리, 남아 있는 것은 오히려 꺾이지 않고 버텨낸 의지였다.
이곳은 단순한 교회가 아니라 리스본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1506년 4월, 지진과 전염병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이 성당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떤 개종한 유대인이 그 기적을 의심한다는 말을 했다가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그게 시작이 되어 며칠간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다. 약 2천 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성당 안에 서 있으니 벽들이 말은 없지만 그 자체로 긴 역사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왕실 결혼식이나 종교재판 같은 큰 행사들도 여기서 열렸다고 하니, 정말 많은 일들을 지켜본 공간이다. 출구에는 화재 피해를 담은 타블로이드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성당 밖에는 그때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조용히 서 있었는데, 그 앞에서 한참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인 믿음의 공간이 동시에 인간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는 게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화려한 장식보다도 이런 아픈 기억과 기념물들이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시아두 거리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베르트랑 서점 바로 옆에 순교자들의 성모 성당(Basílica de Nossa Senhora dos Mártires)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작은 건물 같지만, 그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시간이 겹쳐 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마치 골목의 현재와 성당의 과거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듯했다.
1147년, 리스본을 되찾기 위한 전투에서 희생된 전사들을 기리며 세워진 이 성당은 긴 역사의 무게를 지고 있다. 1755년 대지진이 도시 전체를 흔들어놓은 뒤, 18세기 후반 바로크와 네오클래식 양식이 섞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재건 과정에서 단순함과 우아함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건축물이 되었다.
외관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았다. 차분한 회색 돌벽과 단정한 장식, 섬세한 조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 담백함이 오히려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길을 오래 붙잡는다. 성당 앞의 작은 광장에서는 간혹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고, 근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이 신성함과 일상이 어우러진 리스본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냈다.
중후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고요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감쌌다. 밖의 소음이 마법처럼 사라지고, 다른 차원의 시간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높은 아치형 천장은 장엄하지만 과장되지 않았고, 그 아래로 은은한 향의 냄새가 떠다녔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알록달록한 그림자가 되어 흰 대리석 바닥 위에서 잔잔히 흔들렸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각도가 성당 내부의 분위기를 미묘하게 바꿔놓았다.
화려한 금빛 제단 대신 단아한 성모상이 중앙에 자리해, 보는 이를 위압하기보다 부드럽게 에워쌌다.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지만, 여전히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때때로 들려오는 가벼운 종소리가 공간의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벽면을 장식한 조각들과 성화들은 각각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오랜 세월 동안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소망을 묵묵히 지켜본 증인 같았다.
그 속에서 신자들은 조용히 기도했다. 관광객보다 많은 현지 신자들의 모습은 이곳이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의 공간임을 증명한다.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잡고 성모상 앞에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중년의 남성이 혼자 묵주를 굴리며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한 블록만 걸어도 시장의 소음과 관광의 번잡함이 넘치는 시내 한복판에서, 이곳만큼은 완전히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나는 뒤쪽 벤치에 조용히 앉아 성당의 정적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는 이번 여행이 무탈하게 마무리되기를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했다. 기도대 위의 작은 촛불 하나, 제단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 기둥에 새겨진 문양들이 모두 오랜 세월을 지나온 흔적처럼 다가왔다. 바로 옆 서점에서 책장을 넘기던 손길과 성당 안의 고요한 공기가 함께 존재하는 이 순간을 느끼며, 좁은 골목 한쪽에 담긴 리스본의 깊은 시간과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조용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 성당 깊숙한 곳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높은 천장을 타고 퍼져나가는 음악은 공간 전체를 신성한 울림으로 채웠다. 바깥에서 상점들을 구경하던 아내와 처제 부부가 그 소리에 이끌려 성당으로 들어왔다. 아이들까지도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그 순간만큼은 경건한 표정이 되었다. 음악과 고요가 어우러지고, 빛과 그림자가 춤추는 순간, 순교자들의 성모 성당은 화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장 깊은 경건함을 보여주었다.
이곳에서는 웅장함이 아닌 잔잔한 감동이, 화려함이 아닌 진실한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성당을 나서면서 뒤돌아본 그 작은 건물은,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역사와 일상, 신성함과 소박함을 하나로 엮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인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14세기, 영웅 누누 알바레스 페헤이라가 세운 카르무 수녀원(Museu Arqueológico do Carmo)은 한때 리스본 최대의 성당이었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축물로, 중세 포르투갈의 종교적 권위와 예술적 성취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1755년 11월 1일, 만성절 미사가 한창이던 그 순간 대지진이 도시를 뒤흔들었고, 거대한 지붕과 상당 부분의 벽체가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2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카르무 수녀원은 그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다.
지금의 수녀원은 지붕이 없는 채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마치 불완전한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완전함보다 더 강렬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남아 있는 고딕 아치 구조들은 기도하는 손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지나간다. 멀리서 바라본 수녀원의 실루엣은 리스본의 붉은 지붕들 사이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내부는 현재 고고학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세 시대의 유물들과 포르투갈 각지에서 발굴된 고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사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을 보지 않아도 이 공간 자체가 충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설명판이나 가이드의 해설이 없어도, 카르모 수녀원은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말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이 이 공간의 표정을 끊임없이 바꾼다. 리스본에 머무는 동안 공교롭게 이곳엔 이른 아침, 한자 그리고 늦은 오후 이렇게 세 번이나 성당을 지나치며 그 시간대의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동쪽 벽을 스치면 돌벽의 색감은 은은한 황금빛으로 물든다. 한낮의 강한 햇볕 아래서는 아치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선명한 패턴을 그려내고, 석양 무렵에는 서쪽 하늘의 붉은빛이 남아있는 기둥들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바이샤 지구에서 올려다보면 수녀원은 언덕 위의 거대한 그림자처럼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볼 때는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깊이가 한층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 이끼가 낀 모서리들, 비바람에 닳아 둥글어진 조각상들이 모두 그 긴 세월을 증언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재앙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버텨낸 리스본의 정신"이다. 완전히 복구하지도, 완전히 철거하지도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겠다는 선택 자체가 이 도시가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처를 지우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그 상처를 통해 더 깊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리스본만의 철학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알파마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두 개의 종탑이 묵직하게 도시 위에 서 있는 리스본 대성당(산타 마리아 마이오르)이 먼저 보인다. 12세기에 세워지기 시작한,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다. 멀리서도 그 존재감이 확실하다. 무어인의 모스크 자리에 십자군이 세운 이 성당은 80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손상되고 보수되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거친 돌벽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훗날 고딕과 바로크가 덧붙었다. 1755년 대지진도, 여러 전쟁도 이 건물의 근본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무게감 있는 모습이 요새처럼 든든했다.
성당 앞 광장에는 늘 사람들이 모인다. 노란 트램 28번이 자주 지나가며 종소리와 함께 리스본 특유의 소음과 활기를 더했다. 근처 카페에서는 커피 향이 흘러나와, 이곳이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성당은 더욱 장엄했다. 두 종탑 사이에 장미창이 크고 깊게 자리하고, 그 아래 현관은 여러 겹의 아치가 겹쳐 있어 터널처럼 보였다. 아치마다 새겨진 세밀한 조각을 들여다보면 옛 석공들의 솜씨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꺼운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도시의 소음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높고 단단한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어서 안정감이 느껴지고, 창을 통과한 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쳐 붉고 푸른 무늬가 되어 바닥 위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본당 중앙에서 제단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천장으로 향한다. 로마네스크의 둥근 아치가 차례차례 이어지고, 그 위로는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천장화가 겹쳐 있었다. 800년이 넘는 세월이 켜켜이 쌓였지만, 화려함보다 고요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제단 앞에는 여전히 현지 사람들이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관광객과 신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어울리고, 발걸음 소리와 기도 소리가 어울려 하나의 잔잔한 울림을 만들었다.
옆 회랑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작은 정원을 둘러싼 고딕의 아치형 복도는 본당보다 훨씬 아늑했다. 햇살이 기둥 사이로 스며들며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새기고, 그 단순한 반복이 아름다운 리듬을 만들었다. 성당 깊은 곳의 예배당은 더욱 엄숙했다. 석관이 놓인 채 고요히 숨 쉬는 공간, 색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왕족의 무덤 위에 신비로운 기운을 더한다.
로마 시대의 흔적 위에 세워졌다는 성당, 그 속에서 이어지는 삶과 기도. 웅장한 본당, 아늑한 회랑, 땅속의 고대 유적이 한 공간에서 겹쳐지며 시간을 이어 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리스본의 깊은 역사와, 그 안에서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며 돌아본 두 개의 종탑은 여전히 묵묵했다. 앞으로도 이 도시는 변하겠지만, 성당은 변화를 품어내며 또 다른 시간을 차근차근 쌓아갈 것이다.
언덕 위로 시선을 올리면, 붉은 지붕 사이로 하얀 첨탑 두 개가 선명하게 솟아 있다. 그곳이 바로 상 비센트 드 포라 수도원이다. 포르투갈 건국 왕 아폰수 1세가 1147년에 세운 이 수도원은 대지진과 전쟁을 견디며 18세기 초 지금의 위용을 갖추었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나라의 신앙과 역사를 담아낸 기념비 같은 장소였다.
외관은 절제된 품격과 장중함을 함께 지닌다. 초기 바로크 양식의 단단한 구조, 소박한 장식, 대리석과 화강암이 만들어내는 명료한 대비가 햇살을 받아 선명히 빛난다. 수도원을 지키고 선 오래된 성인 석상들은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지켜본 증인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바뀐다.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지고, 공간 전체를 감싼 고요가 살며시 가슴에 스며들었다. 벽과 회랑을 가득 채운 아줄레주 타일들은 이곳의 자랑이라고 한다. 짙은 파랑과 흰색으로 그려진 성경 장면과 이솝 우화 속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그림책을 걸으며 읽어 내려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회랑을 걷다 보니 빛이 기둥 사이로 스며들어 그림자와 함께 춤추듯 움직였다. 광장보다 한층 고요한 이곳에서는 건축과 빛, 시간이 어우러지며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수도원 깊은 곳에는 브라간사 왕가의 묘지가 자리했다. 역사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왕들이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역사를 한층 가까운 현실로 다가오게 했다.
언덕을 내려서며 다시 들려온 종소리는 골목과 하늘을 가득 채운다. 그 울림은 시간을 길게 늘리며, 수도원의 고요한 아름다움과 리스본의 깊은 역사감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기게 했다.
흔적이 만든 얼굴
다섯 곳의 공간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품고 있었다. 바로 상처와 회복이 도시의 모습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리스본의 성당과 수도원들은 완벽한 아름다움 대신, 흉터와 흔적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도시의 시간과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며, 사람들의 기억과 신앙, 그리고 리스본이 다시 일어나는 힘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성당을 걷는 일은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신자도 아닌 내가 유럽의 중세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성당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