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으로 노래하는 도시의 리듬
아우구스타 개선문(Arco da Rua Augusta)은 ‘승리의 아치’라는 이름처럼 눈부신 백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코메르시우 광장의 독보적 랜드마크다. 광장 쪽에는 마리아 1세가 민족 영웅 바스쿠 다 가마와 폼발 후작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정교한 조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아우구스타 거리 쪽에는 섬세한 시계가 장식되어 있다.
나는 리스본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온몸으로 체감하고자 개선문 전망대를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전망대 입구를 찾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타 거리에서 개선문을 바라보면서 아치 왼쪽 귀퉁이에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건물 벽에 작은 현판이 붙어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라 주의 깊게 살펴야 했다.
전망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계 아래 위치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코메르시우 광장에서부터 호시우 광장까지 뻗은 아우구스타 거리가 한눈에 펼쳐져, 리스본 도시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묵직한 돌문을 지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 순간, 무거운 과거의 흔적 속에서 미래로 향하는 듯한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좁은 공간을 서서히 오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몇 초 만에 도착한 꼭대기에서 문이 열리고 계단을 조금 올라가니 숨이 멎을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발아래로는 노란 건물들이 둘러싼 코메르시우 광장이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펼쳐졌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대한 도시라는 유기체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작은 세포 같았고, 그들의 발걸음과 움직임은 이 도시의 맥박이 되어 전해졌다. 햇살에 반짝이는 돌바닥은 이 공간이 왕들의 위엄을 달래던 자취임을 짐작하게 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리스본 특유의 붉은 지붕 위로 옮겨갔다. 주황색과 테라코타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축소된 도시를 보는 듯했다. 그 사이로 뻗은 좁은 골목들은 오래된 이야기와 세월을 품고 있었고, 1755년 대지진 이후 폼발 후작이 설계한 엄격한 격자형 거리인 바이샤 지구와 중세 모습을 간직한 알파마 지구의 대비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내는 듯했다. 노란 트램이 골목을 느릿하게 가로질러 가는 소리가 이 모든 풍경에 생기를 더했다.
멀리 테주강은 은빛 파도로 반짝이며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다리, 4월 25일 다리가 장엄하게 도시 풍경을 수놓았다. 푸른 하늘 아래 강과 다리, 주변 언덕 위 건물들은 완벽한 조화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냈다. 강 위를 오가는 작은 배들과 정박 중인 커다란 크루즈선들은 리스본이 바다와 깊은 관계임을 보여 주었다.
개선문 난간에 기대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도시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였다. 신선한 바다 내음이 섞인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 광장 아랫사람들 웅성임과 웃음소리, 그리고 도시의 분주한 소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교향곡처럼 들렸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활력이 멋지게 겹쳐지는 그 순간, 나는 리스본에 담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 장소에서 온전히 한눈에 담긴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우구스타 개선문 전망대는 그저 높은 곳에서 도시 모습을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리스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적 이야기의 무대이자, 도시의 숨결을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나는 리스본이라는 거대한 서사시를 한 페이지씩 넘기듯, 도시의 진면목과 마주했다.
리스본의 심장부, 아우구스타 거리를 거닐다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한다면, 그곳이 바로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의 입구다. 1902년에 운행을 시작하여 1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낮은 지대의 바이샤와 언덕 위 바이루 알투 지역을 수직으로 이어온 이 엘리베이터는, 처음에는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다 1907년부터 전기로 변모하였다.
새로운 건축 자재였던 강철로 지어진 이 신고전주의 양식의 엘리베이터는 철골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도 소개되었다.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인 라울 메스니에르 드 퐁사르가 네오고딕 양식으로 설계한 이 작품은, 45m 높이 꼭대기에 전망대를 품고 있다. 페소아는 이곳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보는 전망은 출신지를 막론하고 찬탄을 자아낸다"라고 예찬하기도 했다.
리스본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먼저 바이샤 지구와 바이루 알투 지구를 잇는 통로에 닿는다. 엘리베이터 위 전망대에선 상 조르주성부터 리스본 대성당 그리고 테주강까지 리스본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리스본의 전경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사람들 역시 풍경이 취한 듯 사진 찍기 바빴다. 리스본의 다채로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엘리베이터가 자리한 바이샤 지구는 1755년 대지진 이후 바둑판처럼 정돈된 계획도시의 면모를 드러내고, 호시우 광장과 코메르시우 광장의 웅장함은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묵묵히 이야기해 주었다. 시야의 끝에는 거대한 테주강이 유유히 흐르며, 강을 따라 늘어선 강변 풍경과 멀리 보이는 4월 25일 다리는 리스본이 항구 도시임을 실감케 하였다. 시선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니 언덕 위에 위용을 자랑하는 상 조르즈 성이 보여 도시의 깊이를 더해주며,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카르모 수녀원은 대지진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면서도 아름다운 도시 풍경과 대비되어 더욱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곱 언덕의 도시'라는 별명처럼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과 언덕들은 리스본 특유의 정취를 더하고, 도시의 상징인 노란색 트램들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 전망대는 리스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도시 풍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리스본 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리스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야외 미술관이지만, 그중에서도 도시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과 푸니쿨라는 리스본 풍경에 살아있는 곡선의 미학을 더한다. 낡고 삐걱거리면서도 묘하게 정겹고 세련된 이 대중교통수단들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리스본의 영혼을 담은 예술 작품과도 같다.
특히 이들의 곡선적인 움직임 속에는 포르투갈인들이 깊이 간직한 고유한 정서인 '사우다드(Saudade)'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우다드는 단순한 향수나 그리움을 넘어서,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에 대한 달콤 쌉싸름한 동경이자 동시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애잔함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이다. 이는 상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포르투갈 특유의 미학적 정서로, 이 책의 후반부에서 더 깊이 있게 다루게 될 핵심 개념이다.
리스본에서는 자동차 대신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는 노란 트램에 올라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이 도시를 걷기에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8번 트램은 "리스본의 핵심"이라 불릴 만하다. 바이후 알투, 바이샤, 알파마 등 리스본의 주요 관광지를 두루 거치며 도시의 매력적인 구시가지 골목들을 누빈다.
최대 38명까지 탈 수 있는 이 트램은 일반 도로에 설치된 차로를 따라 일반 차들과 함께 달린다. 때로는 아주 좁은 골목을 지나며 건물들과 부딪힐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곡예 운전을 하기도 한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면 창밖으로 진짜 리스본이 펼쳐진다. 지나가는 버스와 조심스럽게 서로를 양보하고, 지나가던 시민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까지.
이 느린 움직임 속에서 여행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하며 자연스레 사우다드의 감성에 젖어든다. 창밖으로 빨래가 널린 창문, 길가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벽마다 그려진 그라피티가 트램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과거의 리스본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완벽했던 순간들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그것이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아쉬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바로 이런 순간에 사우다드의 본질 -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깊어지는 상실감과 그리움 - 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파고든다.
28번 트램이 워낙 유명하여 혼잡하다면, 12번 트램은 훌륭한 대안이 된다. 28번 트램 노선 중에서도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알파마 지역의 주요 명소들을 순환하는 '알짜배기' 노선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포우사다 알파마 호텔 앞에는 12번과 28번이 모두 다녀 아주 편리했다. 28번 트램보다 덜 알려져 있어 비교적 한산하게 리스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고풍스러운 객차 안에서 리스본 대성당 앞을 지나가는 모습은 이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포토존을 선사한다. 12번 트램은 주요 관광지만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며, 28번 트램 못지않은 리스본의 정취를 선사한다. 특히 이 트램을 타고 있으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 즉 사우다드의 본질을 조용히 체험하게 된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에 밀려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 그것이 바로 사우다드의 핵심이다.
15번 트램은 시 중심가와 벨렘 지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노선이다. 15번 트램(E15)은 최신식 전동식 저상 트램으로, 2023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현대식 트램이라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는 덜할 수 있으나,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찾아 벨렝탑,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 기념비로 향하는 편리한 수단이다. 피게이라 광장이나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출발하여 테주강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며, 강변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느리게 움직이는 트램에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테주강을 바라보다 보면, 바쁘게 산다는 것이 그리 중요치 않게 느껴지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사우다드는 찾아온다.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영광스러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 그 시간적 거리감이 만들어내는 묘한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트램이 도시의 큰 그림을 그리는 화려한 붓놀림이라면, 푸니쿨라는 좀 더 은밀하고 집중적인 곡선을 선사하는 정교한 연필 선과 같다. 리스본의 몇몇 푸니쿨라들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도시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짧지만 강렬한 경사로를 오가며 숨겨진 보석 같은 풍경들을 드러낸다.
리스본 푸니쿨라 중에서도 특히 그림 같고 사진 찍기 좋은 비카 푸니쿨라는 카이스 두 소드레역 근처의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다. 푸니쿨라가 덜컹이며 경사를 오를 때, 양옆으로는 다채로운 색깔의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창문마다 걸린 화분과 빨래가 정겨운 분위기를 더한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저 멀리 테주강의 푸른 물결이 점차 드러나며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마치 좁은 터널을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이다. 이 좁은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완벽했던 순간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지나간 시간의 아쉬움을 함께 느끼게 하여, 사우다드의 이중적 감성을 그대로 체험하게 한다.
헤스토라도레스 광장에서 상 페드로 알칸타라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글로리아 푸니쿨라(Ascensor da Glória)는 리스본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통로다. 짧은 거리를 가파르게 올라가면, 눈앞에 상 조르즈 성과 바이샤 지구, 테주강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해 질 녘, 노을에 물든 리스본의 풍경 앞에서는 사우다드가 절정에 달한다.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며, 아름다운 순간일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상실에 대한 예감이 바로 사우다드의 정수인 것이다.
리스본의 트램과 푸니쿨라가 그리는 곡선은 단순한 미학적 아름다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리스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즉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대변하기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리스본의 트램과 푸니쿨라는 서두르지 않고 오히려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볼 것을 권한다.
이동하는 동안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풍경들, 그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곡선이라는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서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사우다드가 조용히 마음을 파고들었다.
리스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언덕을 가로지르는 노란 트램의 곡선이나 빌딩 사이로 사라지는 푸니쿨라의 모습은 분명 마음속에 사우다드라는 잔잔한 파동을 오래도록 남길 것이다. 이 신비로운 감정의 정체와 그것이 포르투갈 문화 전반에 미친 깊은 영향에 대해서는, 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파두와 함께 조금 더 자세히 경험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9월 3일 오후 6시경 러시아워에 글로리아 푸니쿨라가 탈선하여 1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푸니쿨라 케이블 고정 지점의 피로로 인해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차량이 통제력을 잃고 건물과 충돌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상징적인 노란색 객차가 완전히 파괴된 참혹한 현장을 뉴스를 통해 보니 정말 끔찍했다.
1885년부터 운행되어 온 이 역사적인 푸니쿨라는 리스본 시내와 언덕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자 관광명소였는데, 이런 비극이 일어나다니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몇 달 전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 찍은 사진을 위에 올렸는데 현장의 'SUBWAY '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유족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온다. 포르투갈 정부는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했고, 전 세계가 이 비극적인 사고에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 한번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