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에서 만난 다채로운 풍경
비에 젖은 아침, 우리는 호텔에서 출발하여 호시우역을 지나 바이루 알투 언덕을 향해 걸었다. 경사진 골목을 오르내리는 글로리아 푸니쿨라는 운행이 중단되어 언덕 위에 잠시 멈춰 서 있었지만, 그 철제 궤도와 낡은 차체만으로도 이 도시의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잠시 광장을 거쳐 이곳에 왔을 때는 푸니쿨라가 운행하고 있어 사진도 옆에서 찍었었는데 막상 오늘 타려고 하니 비 때문인지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벽마다 번져 있던 그라피티와 벽화는 비에 닿아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리스본이 품고 있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기운을 증언하고 있었다.
언덕 끝에 자리한 상 페드루 드 알칸타라 전망대는 19세기 초에 조성된 정원과 테라스로 이루어진 곳이다. 분수와 조각상, 오래된 나무들이 긴 세월을 견뎌온 도시의 흔적처럼 서 있다. 날이 개면서 공원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망이 점점 선명해졌다.
바닥에 깔린 푸른빛 아줄레주 지도는 여행자들에게 리스본의 지리를 안내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파노라마와 어우러져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곳에 서면 테주강의 유장한 흐름과 상 조르즈 성의 웅장한 실루엣, 바이샤의 정갈한 거리와 알파마의 미로 같은 골목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순간,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평범한 라틴어 교사였던 그레고리우스가 어느 날 낯선 여인이 남기고 간 책과 기차표를 따라 리스본으로 향하던 이야기. 그는 이 전망대에 서서 처음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스스로를 옭아매던 일상의 질서에서 벗어나 낯선 길 위에 선 그의 시선은 곧 나의 시선과 겹쳐졌다.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나 역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길을 조용히 묻게 되었다. 전망대에는 언제나 삶의 장면들이 스며 있다.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여행자들. 이 일상의 풍경들은 영화 속 대사처럼,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삶을 수없이 되돌아볼 수 있다”는 말을 조용히 증명하는 듯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거리에는 찬란한 건축과 함께 깊은 흔적도 겹쳐 있다. 살라자르 독재의 그림자, 민주화와 혁명의 열기, 알파마의 오래된 골목에 남은 저항과 희망의 서사들. 영화 속 아마데우가 걸었던 길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리스본의 골목들과 겹쳐졌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이 도시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역사와 삶을 품은 또 하나의 ‘야간열차’ 임을 깨달았다. 짧은 머무름에도 전망대는 나에게 깊은 시간을 선물했다. 시민들의 쉼터이자 여행자들의 사색의 무대, 낮에는 고요한 정원으로, 밤에는 빛의 파노라마로 변하는 언덕 위의 이 테라스는 리스본이 들려주는 가장 잔잔한 세레나데였다.
Night Train to Lisbon OST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는 리스본의 늦은 오후,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조용히 시작되었다. 낡고 가파른 '아센소르 다 비카' 푸니쿨라의 선로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언덕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도시의 숨결을 하나씩 들이마셨다. 비가 갓 그친 거리의 벽화들은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지만, 그 흐릿함 속에도 리스본 특유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시의 기억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듯했다.
푸니쿨라가 고요히 멈춰 선 오후, 관광객들의 북적거림이 아직 시작되기 전 이 고즈넉한 시간을 선택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산타 카타리나 광장에 도착하자, 이미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전망대 한편 작은 매점에서 우리는 차가운 사그레스 생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황금빛 거품이 살짝 올라온 맥주잔을 손에 쥐고, 테주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의 청량함이란. 포르투갈의 대표 맥주가 주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늦은 오후의 따스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불리는 '아다마스토르', 이곳은 화려한 관광 명소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소박한 공간이었다. 기타를 안고 앉은 젊은이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즉흥 멜로디, 강물을 바라보며 어깨를 맞댄 연인들의 속삭임, 하루를 정리하며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석양과 함께 공간을 채워갔다. 우리 역시 그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맥주를 홀짝이며 리스본이 선사하는 평온함에 몸을 맡겼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아다마스토르 석상을 바라보며 맥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포르투갈 대문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불멸의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에 등장하는 바다의 거인, 폭풍과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 석상의 위엄 있는 모습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묵묵히 지켜보는 듯했다.
이미 공연을 하고 있던 허스키한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부르는 파두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 애잔하면서도 깊은 선율이 황혼빛과 어우러지며, 마치 이 도시의 영혼을 직접 들려주는 듯했다.
저 멀리 4월 25일 다리가 붉은 철골 구조로 테주강을 당당히 가로지르고, 강 건너편 언덕 위의 크리스토 레이 예수상이 두 팔을 벌려 도시 전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해가 점점 낮아지면서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강물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어갔고, 리스본 전체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채의 베일에 싸여갔다.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의 진정한 매력은 거창한 볼거리가 아니라 이런 소소하고 진솔한 순간들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그레스 맥주의 쌉쌀함이 입안에 맴도는 동안,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길거리에서 파는 간단한 음식 냄새, 현지인들의 정겨운 포르투갈어, 관광객들의 탄성이 어우러진 이곳은 포르투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모두 품고 있는 살아있는 무대였다.
어둠이 서서히 도시를 덮어가고 건물들 사이로 노란 불빛이 하나씩 깜빡이기 시작할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리스본 언덕 위의 작은 전망대에서 보낸 이 시간은, 낯선 여행자에게도 오래된 도시의 주민에게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여운 가득한 빛과 소리, 그리고 사그레스 맥주의 깔끔한 뒷맛 속에서, 우리는 도시와 함께 흘러가는 시간의 깊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점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예약해 둔 현지맛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스본 여행 중 가장 자주 지나쳤던 장소가 있다면, 단연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Miradouro das Portas do Sol)였다. 알파마 지구 언덕에 자리한 이곳은 우리가 머물렀던 포우사다 알파마 호텔 바로 앞에 있어서, 눈을 뜨고 커튼을 젖히는 순간마다 그 풍경이 인사하듯 다가왔다.
언덕을 따라 계단을 오르거나 노란 트램 28번을 타고 올라오면, 어느새 푸른 하늘 아래 테주강이 유유히 흐르는 장관이 펼쳐진다. 강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발아래로는 붉은 기와지붕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알파마의 풍경이 이어진다. 그 붉은색 틈사이로 솟은 하얀 건물들과 우아한 곡선의 국립 판테온, 그리고 상 비센트 드 포라 수도원의 정갈한 흰 파사드가 조화를 이룬다. 이런 풍경 앞에서는 말보다 탄성이 먼저 나온다.
전망대 앞으로는 소담한 야외 테라스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포르투갈 특유의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된 발코니 아래서, 여행객들이 에스프레소나 차가운 맥주를 곁들여 풍경을 음미한다. 나 역시 여러 차례 이곳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굳이 무언가를 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머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포르타스 두 솔은 단순한 전망대 이상의 공간이다. 도시 전체의 흐름을 담은 창문이자, 천년 고도 알파마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는 액자 같은 곳이다. 이른 아침 이곳에 서면 리스본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여는 소리, 골목길을 쓸어내는 아주머니의 빗자루 소리, 부드러운 햇살이 오래된 벽에 스며드는 고요함까지. 이곳의 풍경은 웅장함보다 친밀함에 가깝고, 수백 년을 이어온 삶의 결이 배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상 조르즈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깐 들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굳이 더 높은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바로 이 풍경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리스본에서의 매일은 끝없이 걷고 오르고 내려오는 여정의 반복이었지만, 그 중간에 만난 이 전망대는 마치 쉼표처럼 내 여행의 리듬을 부드럽게 조율해 주었다. 다시 번잡한 골목으로 향하기 전, 포르타스 두 솔에서 머물렀던 평온한 시간들은 지금까지도 마음속 가장 선명한 자리에 남아 있다.
리스본 대성당을 지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치 도시가 준비해 둔 선물처럼 조용한 공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타 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 이름부터 성스러운 빛을 뜻하는 이곳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와 거의 코앞 거리에 자리해 알파마 지구의 쌍둥이 같은 존재다.
숨이 가빠질 즈음 마주하게 되는 풍경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하얀 아치형 회랑이 지중해식 우아함을 자아내고, 그 사이사이 포르투갈 전통 타일 아줄레주가 파란 이야기를 속삭인다. 회랑 너머로는 테주강이 은빛 띠처럼 흘러가고, 발아래 펼쳐진 알파마의 붉은 기와지붕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게 겹쳐 있다.
전망대 벽면을 장식한 두 점의 아줄레주 패널이 그 증거다. 하나는 1147년 아폰수 1세가 무어인들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하는 장면을, 다른 하나는 1755년 대지진이 휩쓸기 전 리스본의 모습을 담았다. 푸른 타일 위에 그려진 인물들은 정지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정복과 파괴, 재건과 희망의 시간들이 층층이 침전되어 있다. 나는 종종 그 벽화 앞에 서서, 타일 조각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가만히 읽어내곤 했다.
한쪽 구석에 자리한 물고기 분수대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기하학적 무늬의 아줄레주로 장식된 분수대는 물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장식품이다. 햇살에 반사되는 푸른 타일의 기하학적 패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옆 벤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로운 오후가 완성된다.
사실 우리에게 이 풍경은 일상이었다. 머물렀던 포우사다 알파마 호텔이 전망대 바로 앞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기에, 처음엔 그저 평범한 일상의 배경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며칠을 오가며 점차 깨달았다. 이곳이 단순한 조망 공간이 아니라, 리스본이라는 도시의 정수를 담고 있는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어느 저녁이었다. 황금빛 노을이 테주강 위로 천천히 스며들던 시간. 옆 테이블의 연인이 말없이 손을 맞잡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어쩐지 60년대 프랑스 영화의 한 컷처럼 느껴졌다. 로맨틱하면서도 절제된, 리스본다운 아름다움이었다.
산타 루치아 전망대는 리스본의 대표적인 전망대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28번 트램을 타면 쉽게 도달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서둘러 사진만 찍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머물며 이곳이 품고 있는 시간의 깊이를 느껴보는 데 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동틀 무렵과 일몰 직후 아치 너머로 펼쳐진 하늘의 색깔들, 바람에 살짝 흔들리던 보라색 자카란다 꽃잎들, 그리고 타일에 새겨진 옛이야기와 테주강 건너편 현대적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찰나의 순간들이, 바로 내가 리스본에서 만난 가장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포우사다 알파마 호텔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그라사 전망대는, 리스본이 간직한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이다. 그라사 성당 앞에 자리한 이곳은 다른 전망대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키 큰 소나무들이 서 있는 노천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이나 칼라웅(갈레어) 커피를 홀짝이며, 상 조르즈성과 테주강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리스본의 대표 시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 문학의 거장을 기리는 이 조각상은 전망대에 깊이 있는 문학적 정취를 더한다. 우리가 찾아간 이른 아침 시간,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한낮이라면 북적일 테라스가 텅 비어 있어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곧 이 고요함이 주는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리스본다운 매력이 시작된다. 가벼운 바람이 뺨을 스치며 소나무 향기와 먼바다의 짠 내음을 실어 나른다. 돌길은 제법 가팔랐지만, 이미 언덕 위 호텔에서 출발했기에 다른 전망대들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리스본의 언덕들은 늘 그렇듯, 걷는 이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는 경사다.
전망대에 도착하기 전, 나는 한참 동안 그 풍경을 올려다봤다. 구름이 드리워진 회색빛 하늘 아래, 소나무 가지 사이로 펼쳐진 도시의 모습이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라사 전망대는 단순히 도시를 조망하는 곳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아침의 청량한 공기 속에서 홀로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 테라스 한쪽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몇몇 이른 방문객들. 평소 젊은이들과 현지인들로 붐비는 이곳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고요했다. 그 고요함은 공허함이 아닌, 아침이 주는 '충족감'에 가까웠다.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붉은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포개진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중세의 흔적과 현대의 선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 풍경 속에서, 테주강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 낀 하늘이 만들어낸 은은한 빛이 도시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며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은 젊은이들과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숨은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해 질 녘이면 맥주를 든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고 한다. 28번 트램이 지나가는 덕분에 접근성도 뛰어나지만, 우리가 방문한 이른 아침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 더욱 평화로웠다. 그래서인지 더욱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리스본은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지만, 그 작은 풍경 안에는 견고한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추억, 그리고 목소리들로 가득 찬 도시. 나는 소나무들 사이 벤치에 앉아, 잠시나마 그 모든 것의 일부가 된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그라사 전망대가 선사하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었다.
그라사 전망대를 떠난 것은 구름을 뚫고 햇살이 조금 비칠 무렵이었다. 아직 파란 하늘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강 건너편으로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숨을 조금 고르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차 소리도 점점 멀어진다.
한적한 골목을 지나 언덕 끝에 다다르자, 시야가 탁 트이며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바로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Miradouro da Senhora do Monte). 리스본에서 높은 지점 중 하나인 이곳에서 '높이'라는 개념은 단지 고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망대에 서자,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아래로 펼쳐졌다. 상 조르즈 성이 고요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바이샤 지구의 정돈된 거리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졌다. 그 끝에서 테주강은 넓고 느릿하게 흘렀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4월 25일 다리는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의 구조와 역사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시야 안에 담긴다.
이 전망대에는 카페도, 기념품 가게도 없다. 하지만 소나무 그늘 아래 마련된 벤치 하나면 충분했다. 거기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도시와 나 사이에 흐르는 거리를 느끼게 된다. 이곳에서는 감상보다 사색이 먼저 찾아온다.
세뇨라 두 몬테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깊게 흘러간다. 이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나 또한 그 일부였음을 조용히 되새긴다. 위에 있다고 해서 우월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겸허해지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