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시의 틈에서 만난 예술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들과의 조우

by 트릴로그 trilogue



리스본 언덕 위 작은 발견, 시아두 미술관


리스본의 시아두 지구는 걸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동네였다. 비탈진 돌길 사이로 트램이 천천히 지나가고, 카페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우연히 한 건물 앞에 서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은 석조 건물, 깔끔한 유리창.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정식 명칭보다는 시아두 미술관이라는 별명이 더 정겨운 이곳이었다.


시아두외부.jpg
미술관의 안팎 전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의 분주함이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차분하고 집중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이곳은 1850년대부터 지금까지 포르투갈 예술가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왔는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화가들의 시선과 기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변화의 궤적을 차근차근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작품들은 19세기말의 정통 회화였다. 정물화와 인물화 속 인물들의 표정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이 스며있었다. 화가들은 단순히 보이는 것만 그린 게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가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색채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진중함이 마치 리스본 골목에서 들려오는 파두 선율처럼 마음을 파고 들었다.

미술관 내부 모습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시대가 바뀌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예술가들도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알마다 네그레이루스의 작품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역동적인 선들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예술가의 의지가 붓터치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다양한 작품 중의 일부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단연 콜룸바누 보르달루 피녜이루의 《패배자들 Os Vencidos》이었다. 1885년 작품인 이 집단 초상화는 당시 리스본 카페 '레아우'에 모이던 문화인들을 그린 것이다. 화가, 작가, 사상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인데,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그들의 표정과 자세에서 19세기말 포르투갈의 문화적 활력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작품은 단순한 그룹 초상화라기보다는, 19세기말 포르투갈 사회의 좌절된 이상과 그 시대 지식인들의 정체성을 담아낸 상징적인 회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콜룸바누 보르달루 피녜이루의 《패배자들》


건축 자체도 작품이었다. 프랑스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는 리스본 대지진으로 무너진 옛 수도원 터 위에 현대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옛 돌벽의 무게감은 그대로 살리면서 깔끔한 현대적 선을 더했다. 특히 지하 전시실은 천장의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에서, 작품들은 더욱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독특한 분위기의 3층 복도


미술관을 나오면서 문득 깨달았다. 시아두 미술관은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문이었다. 여기서 본 작품들을 통해 거리의 아줄레주 타일이나 전망대에서 본 석양, 어디선가 들려오는 파두까지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건 예상치 못한 발견이다. 시아두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아내가 왜 이곳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예술이 개인의 기억과 만날 때 생기는 특별한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쌓여 한 장소에 대한 애정이 되는 것일 테다.






벨렝 강변에서 만난 현대미술


리스본 벨렝 지구는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동네다. 테주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에는 대항해시대의 상징인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당당하게 서 있다. 그런 역사적 건물들 사이에 현대적이면서도 차분한 회색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벨렝 문화센터 안의 MAC/CCB 현대미술관이다. 대부분 이곳을 놓치고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미술관의 외부 모습


이 미술관은 원래 베라르두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포르투갈의 사업가 호세 베라르두가 평생 모은 20세기 미술 컬렉션을 전시했는데, 피카소부터 워홀까지 세계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2023년 정부와의 협약 만료 후 MAC/CCB(현대미술 및 건축 센터 박물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발했지만, 그 예술적 DNA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미술관 중정에서 바라본 입구


건물에 들어서니 우선 첫인상이 좋았다. 회색 돌로 지은 외관은 단순하지만 품격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나무 바닥과 부드러운 조명이 반겨주었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여유로움이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보라고 말하는 듯한 공간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전시실도 깔끔했다. 하얀 벽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작품이 걸려 있고, 복잡한 설명이나 화려한 장치는 없었다. 그냥 작품과 나 사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조명도 작품을 위해서만 조심스럽게 비추고 있었다.

1층에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을 볼 수 있다. 19세기말 인상주의 이후 작가들이 어떻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보여준다. 마티스의 강렬한 색깔,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날카로운 붓터치를 보면 당시 예술가들이 얼마나 과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술관 내부와 바깥 전경


2층에 올라가니 본격적인 20세기 미술사가 펼쳐졌다. 피카소가 사물을 조각조각 나누어 다시 그린 큐비즘, 뒤샹이 변기를 가져다 놓고 예술이라고 한 도전적인 작품들, 몬드리안의 깔끔한 기하학적 추상화, 달리와 미로의 꿈같은 초현실주의 작품들까지. 한 발짝씩 걸으면서 미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Composition (Yellow, Black, Blue, Red and Grey)》
피카소의 작품《Seated Woman(앉아 있는 여인)》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Shell Flower》


기오르기오 드 키리코의 《The Invincible Cohort》
마크 로스코. 기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


이 미술관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앤디 워홀의 팝아트 작품들이었다. 《브릴로 박스》는 그냥 세제 상자인데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세제 박스를 나무 상자에 그대로 옮겨 놓은 작품으로, 마치 슈퍼마켓에서 가져온 것 같았다. 상품처럼 보이는 이 상자들을 보면서 '이게 정말 예술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그 순간 워홀이 던지는 질문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상자라도 슈퍼마켓에 있을 때와 미술관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 장소와 상황이 바뀌면 평범한 물건도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캠벨 수프 캔》도 마찬가지였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캔 하나가 캔버스에 그려져 있을 뿐인데, 그걸 바라보는 순간 '예술은 뭔가 특별하고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렸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것들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팝아트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
앤디 워홀의《Judy Garland》
앤디 워홀의 작품들《꽃》과 《캠벨 수프 깡통》


바로 옆에 전시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편안한 그림이 있는 실내》는 만화적 스타일과 벤데이 점(Ben Day Dots) 기법으로 일상의 풍경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다.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도 회화 고유의 조형성과 색채 관계를 깊이 탐구한 그의 작업은 팝아트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진지한 예술적 실험임을 증명한다. 작년 6월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전시를 보러 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Interior with Still Life》


이 미술관에서 좋은 건 압박감이 없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을 다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반드시 감동받아야 한다는 강요도 없다. 그냥 자기 속도로 걸으면 된다. 어떤 그림 앞에서는 오래 서 있게 되고, 어떤 그림은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게 자연스럽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Pater》
기타 작품들
미술관 기념품 코너


오후 1시쯤 미술관을 나왔다. 밝은 햇살이 눈부셨지만 기분이 좋았다. 방금 본 작품들이 머릿속에서 아직 생생했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벨렝탑으로 향했다. 미술관에서 벨렝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면 충분했다. 500년 전 탐험가들이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났던 그 출발점으로 가는 길이었다. 방금 전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 후 이제는 역사 탐험을 하러 가는 셈이다.


벨렝은 여전히 발견과 탐험의 땅이다. 다만 이제는 바다 대신 예술과 역사라는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테주 강변의 흰 파도, MAAT에서 만난 미래


발견기념비를 구경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명소를 찾아갔다. 멀리서 보면 강물 위에 떠 있는 하얀 파도 같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부드럽게 휘어진 거대한 조각품 같기도 한 MAAT 미술관이었다. 정식 이름은 Museum of Art, Architecture and Technology인데, 이름처럼 예술과 건축, 기술이 만나는 곳이다.




영국 건축가 아만다 레베테가 설계한 이 건물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매끈한 흰색 곡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마치 테주 강의 물결이 그대로 굳어진 것 같다. 건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큰 예술 작품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 미술관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지붕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건물처럼 내부로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마치 작은 언덕을 오르는 기분이다.


MAAT 외부 옥상 지붕의 탁 트인 전망


지붕에 도착하면 리스본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가 펼쳐진다. 테주 강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붉은 4월 25일 다리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강을 가로지른다. 강 건너편 언덕에는 팔을 벌린 크리스투 헤이 예수상도 선명하게 보인다.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고, 탁 트인 풍경이 마음까지 후련하게 만든다.


4.25 다리와 예수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건물 바로 옆에는 붉은 벽돌로 된 오래된 발전소가 서 있다. 미래적인 하얀 건물과 100년도 넘은 산업 유산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리스본이 과거를 지우지 않고 새로운 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붉은 벽돌 건물이 발전소


미술관 내부도 외관만큼 독특하다. 직선이 거의 없고 모든 벽면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다. 큰 유리창을 통해 강의 빛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와 공간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다. 현대미술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시가 주를 이루는데, 기존 미술관에서 보기 힘든 인터랙티브 작품들이 많다.


기프트숍


시간 관계상 전시를 깊이 보지는 못했지만, 건축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옥상에서 바라본 리스본의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도시와 강, 다리와 언덕이 어우러진 파노라마가 한 장의 완벽한 그림 같았다.


테주강 산책로에서 올려 찍은 미술관


MAAT는 미술관이면서 동시에 전망대이고, 산책 코스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강변 산책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벨렝탑에서 시작해 제로니무스 수도원, 그리고 MAAT까지 이어지는 걷기 코스가 완성된다.

사진 촬영 장소로도 훌륭하다. 건물 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멋있게 나온다. 특히 석양 무렵 강물에 반사되는 건물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그렇게 벨렝 지구의 핵심 명소들을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리스본의 풍경을 보며, 방금 경험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벨렝의 매력을 되새겼다.






도발과 성찰의 도시 속 그림자 - 뱅크시 미술관


폼발 광장의 웅장한 동상과 에두아르두 7세 공원의 평화로운 녹음을 뒤로하고,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뱅크시 미술관이었다. 리스본의 화사한 햇살과 여유로운 공원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관 입구의 모습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밖의 밝고 화려한 풍경과 달리 안은 조금 어둡고 절제된 공간이었다. 벽 가득히 뱅크시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데,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았다. 뱅크시는 영국의 익명 거리 예술가다. 정체를 숨긴 채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왔다. 이 미술관에는 그의 대표작들이 모여 있었다.

미술관 내부 모습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빨간 풍선을 놓치는 소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해 보이지만 희망과 상실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3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Moco미술관에서도 봤던 작품이다. 소녀가 풍선을 놓치는 순간이 왜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지 이번에도 한참 생각하였다.

《Girl with Balloon (풍선을 든 소녀)》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Pillow Fight〉(베개 싸움)이었다. 2005년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처음 그려진 작품으로, 이스라엘 군인과 팔레스타인 저항가가 무기가 아닌 베개로 맞서는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흩날리는 깃털은 폭력 대신 평화와 순수함을 떠올리게 하며, 첨예한 갈등을 아이들의 놀이로 바꿔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부조리함과 평화의 소망을 동시에 전한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통해 무거운 현실을 풍자와 유머로 풀어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갈등을 다른 시선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Pillow Fight (베개 싸움)》

다른 작품들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그림, 가난한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 환경 파괴를 비판하는 그림들까지. 아름다운 것보다는 불편한 진실을 담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뱅크시의 그림들은 편안하지 않다. 오히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강렬하다. 세상의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각 작품마다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뱅크시가 왜 이런 메시지를 담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사회를 향한 진지한 발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품 모음

미술관은 그리 크지 않아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품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예술이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하게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미술관을 나오니 다시 리스본의 밝은 햇살이 반겨주었다. 아까 봤던 폼발 광장과 공원이 같은 풍경인데 뭔가 다르게 보였다. 뱅크시의 작품들이 내 시선을 조금 바꿔놓은 것 같았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폼발 지역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숙소 방향으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리스본 거리를 보며, 이 도시가 정말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아름다운 것과 불편한 것, 전통적인 것과 도전적인 것이 모두 한 도시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이번 리스본 여행에서 굴벤키안 미술관과 고대미술관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은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이유가 되었다.




keyword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