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의 활기찬 거리를 찾아가다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고 시선이 멈추는 지점이 있다. 클레리구스 탑에서 내려다본 붉은 지붕, 상 벤투역을 나서며 마주친 비탈진 골목 너머로 펼쳐진 시가지의 풍경은 우리를 자연스레 도루강 쪽으로 이끌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물이 흐르는 방향,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 그 모든 흐름이 가리키는 끝자락에 히베이라(Ribeira)가 있었다.
‘강변’이라는 이름처럼 히베이라는 도루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바다로 흘러드는 물길의 마지막 곡선이 이곳에서 느려지고, 도시는 그 곁에 고요히 기대어 있다. 이곳은 단지 강가의 오래된 마을이 아니라, 포르투라는 도시의 시작이자 중심이기도 하다. 14세기부터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온 이 구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품고 있으며, 지금도 포르투갈의 전통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거리에 나서면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된 색색의 건물들이 언덕을 따라 빼곡히 늘어서 있고, 위층 창문마다 햇살에 바래가는 빨래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아래층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겹쳐진다. 무심한 듯 정겨운 이 풍경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낡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장충동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그 시절, 호주대사관이 있던 언덕 골목길에서 끝없이 놀던 날들 말이다. 낮은 창틀과 골목 끝에서 들리던 냄비 두드리는 소리, 그 감각들이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겹치며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히베이라는 단지 고즈넉한 마을 그 이상이다. 이곳은 포르투라는 도시가 품은 삶의 리듬, 미학과 미식, 그리고 예술적 감수성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된 공간이다. 도루강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버스킹의 기타 소리에 발걸음이 느려지고, 거리의 음악가들이 조용히 자신만의 무대를 펼친다. 우리는 어느 저녁, 그런 음악에 이끌려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포트 와인 한 잔, 슈퍼복 맥주 한 병을 사이에 두고, 눈앞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곤돌라를 바라보며 그날 하루를 천천히 되돌아봤다. 해 질 녘이 되자 도루강은 금빛으로 물들었고, 히베이라의 건물들은 석양을 받아 한층 따뜻한 빛을 머금었다. 그 풍경은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했지만, 그 순간의 기분은 오직 마음속에만 담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 2>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히베이라는 언제나 음악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곳이었다. 낮에는 햇살 아래에서, 밤에는 조명과 강바람 사이에서, 거리의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노래하고 연주하며 광장을 채운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17세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작은 분수가 있고, 그 뒤편으로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빌라 노바 드 가이아로 이어진다. 해가 진 뒤에도 광장은 비워지지 않는다. 조명이 켜진 다리가 도루 강 위로 반짝이고, 그 반사된 빛이 강물 위에서 부서지는 장면은 그림 같았다.
낡은 오크통을 실은 배가 도루 강 위를 천천히 흘러가고, 강 건너편의 와이너리들은 밤늦도록 불을 밝혔다. 오래된 집들이 촘촘히 들어선 강변 아래로는 카페와 식당들이 이어졌다. 거리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 웃음소리, 잔잔한 음악,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 그 풍경은 그저 아름다운 것을 넘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히베이라는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풍경이고,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때때로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한 조각과 이어져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도루 강을 따라 번지던 저녁놀, 다리 위를 천천히 걷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 자신. 이곳이 포르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이며, 여행에서 가장 깊이 마음에 남은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에서의 두 번째 날은 상 벤투 역에서 시작되었다. 수천 장의 아줄레주 타일이 전하는 역사와 서사가 마음에 깊이 스며든 채, 우리는 역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앞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라는 별명을 지닌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내부,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창문까지—언뜻 보면 패스트푸드점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유럽식 살롱 같았다. 이색적인 풍경에 발길을 멈추고, 우리도 여행자다운 인증사진을 남겼다.
잠시 쉬어간 후, 렐루 서점을 거쳐서 다시 거리로 나오니 도시의 중심부가 점점 가까워졌다. 곧 리베르다드 광장(Praça da Liberdade)이 넓게 펼쳐졌고, 광장 한가운데는 포르투갈 독립의 상징처럼 동 페드루 4세의 기마상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광장을 감싸듯 둘러선 시청, 은행, 우체국, 호텔들은 도시의 중심다운 면모를 보여줬고, 사방으로 뻗어 있는 거리들은 포르투의 주요 명소로 이어졌다.
우리는 광장을 지나 아베니다 도스 알리아도스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 양옆으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현대적인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커피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햇살 속을 여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그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포르투 시청사(Câmara Municipal do Porto)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부터도 단번에 시선을 끌 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이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위엄이 있었다. 정면에서 마주한 시청사는 대칭미가 돋보이는 흰색 석조 건물로, 중앙에는 하늘로 곧게 뻗은 시계탑이 우뚝 솟아 도시의 중심을 선언하듯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따라 이어진 섬세한 조각들과 아치형 창문, 고딕과 신고전주의가 어우러진 웅장한 구조는 한눈에 봐도 이곳이 행정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계단을 올라 가까이 다가가니, 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도시를 대표한다는 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청사는 포르투라는 도시가 지닌 품격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듯했다. 광장 한편은 공사 중이라 다소 소란스럽고 어수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사는 마치 그 소란마저 감싸 안는 듯한 위용을 뽐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도시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래된 아름다움과 새로운 에너지가 공존하는 포르투—그 중심에 시청사가 우직하게 서 있었다.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선 시청사를 지나,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도시의 풍경에서 조금씩 벗어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볼량 시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포르투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도시가 지닌 고전적인 아름다움도 좋지만, 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일상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볼량 시장은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재래시장이자, 오랫동안 포르투 시민들의 식탁을 책임져 온 도시의 '부엌' 같은 곳이다. 한동안 문을 닫고 고쳐 짓다가 2022년에 다시 문을 열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오래된 정겨움과 따뜻한 온기가 살아있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 냄새가 풍겨왔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시장을 가득 채웠다. 사람, 음식, 언어, 문화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는 여행객을 금세 그들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해산물 코너였다. 진열대에 가득 놓인 문어, 조개, 생선,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조리된 음식들. 특히 라임과 고수가 어우러진 세비체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 입 맛보니, 포르투갈의 햇살이 입안 가득 퍼지는 듯 시원하고 상큼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문어 다리를 능숙하게 손질하는 상인이 눈에 띄었다. 갓 삶아낸 문어숙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고, 화이트 와인과 함께 먹으니 맛이 더욱 좋았다. 향신료와 올리브 오일이 더해져 단순한 맛이 아닌, 포르투갈 바다의 정취가 느껴지는 요리가 되었다.
해산물로 입맛을 돋운 뒤, 자연스럽게 과일 코너로 향했다. 보석처럼 빛나는 자두와 작은 납작 복숭아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잘 익은 자두를 하나 집어 먹으니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터졌다. 부드러운 납작 복숭아는 크기는 작았지만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여행의 피로가 싱그러운 과일 맛에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맛의 경험을 마무리한 것은, 시장 한 편의 와인바에서 만난 비뉴 베르드(Vinho Verde) 한 잔이었다. 가볍고 청량한 이 와인은 입안에 남은 해산물의 짠맛과 과일의 단맛을 부드럽게 감싸주며 완벽한 끝맛을 남겼다. 북적이는 시장 한가운데서 와인 잔을 들고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순간, 비로소 진짜 포르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볼량 시장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구경하고 먹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정과 온기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하나의 풍경이자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포르투에서의 둘째 날 오전, 우리는 도시의 멋진 모습뿐만 아니라 따뜻한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볼량 시장을 나와 알마스 성당을 둘러본 후, 우리가 오전 중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산타 카타리나 거리(Rua de Santa Catarina)였다. 약 1.5km에 이르는 이 거리는 포르투의 활기찬 쇼핑 거리이자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 현대적인 삶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발길이 닿는 곳마다 유명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아줄레주 타일로 장식된 알마스 성당과 조앤 K. 롤링이 '해리 포터'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진 마제스틱 카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최신 유행의 옷을 파는 매장들부터 전통 기념품 가게, 대형 쇼핑센터, 그리고 파브리카 다 나타 같은 인기 카페까지, 다양한 상점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마제스틱 카페는 단연 돋보였다. 우아한 아르누보풍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 덕분에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손꼽힌다고 했다. 앉을 자리가 없고 기다리는데 한참 걸릴 것 같아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화려한 샹들리에와 정교한 몰딩, 그리고 가죽 의자들이 어우러져 마치 19세기 '벨 에포크'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포르투의 역사와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상 벤투 역의 아름다운 아줄레주부터 도시의 중심인 광장과 시청사, 그리고 활기 넘치는 쇼핑 거리까지, 포르투는 발걸음 닿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도시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여정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