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함께 떠난 인생의 여행

by 트릴로그 trilogue

네 커플의 만남


2010년 늦여름, 한낮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주말 오후였다. 골프를 마친 네 명의 남자들이 땀을 식히며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날,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들과 함께하면 어떨까. 그렇게 급히 전화를 돌려 동네 막걸리 전집에 모인 네 커플.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몇 번 만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이가 되었다.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리고 가끔 함께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걷고, 통영의 골목길을 누비며, 속초의 겨울 바다를 마주했다. 짧은 국내여행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엮어갔다.


어느 날 누군가 제안했다. "2년에 한 번은 해외로 떠나는 건 어때?"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고, 진심을 담아 적금까지 들었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약속대로 2년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다. 자녀 교육, 직장 일정, 개인 사정으로 여덟 명 전원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빠지고, 다음번에는 또 다른 이가 불참했다.


그러다 2024년, 드디어 우리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막내 커플의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면서 가족 모두가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여덟 명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완전체' 여행. 그 첫 목적지로 우리는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를 선택했다.




세 번의 도전 그리고 성취


사실 이 여행은 나에게 단순한 휴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토스카나는 내게 '삼세 번'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새겨진 곳이다. 7년 전, 처음으로 토스카나 여행을 계획했다. 아내 친구 부부와 함께 떠나기로 하고, 평소 패키지 투어만 다녀온 그들에게 자유여행의 진짜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몇 달에 걸쳐 루트를 짜고, 숙소를 고르고, 맛집을 찾아냈다. 지도 위에 형광펜으로 동선을 그으며 상상했던 그 풍경들. 토스카나의 구불구불한 사이프러스 길,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끼안티 지역의 포도밭.


그런데 출발 보름을 앞두고 회사에서 급한 해외 출장 일정이 잡혔다. 여행 일정과 정확히 겹쳤다. 할 수 없이 친구 부부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나 없이라도 떠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가 모든 준비를 해온 터라 나머지 세 명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여행은 취소되었다. 특히 우리와 함께하는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던 친구 부부에게 너무 미안했다. 항공권과 일부 호텔 예약 취소 비용까지 물게 되면서, 아쉬움은 금전적 손실과 함께 더욱 쓰라렸다. 밤마다 노트북에 저장해 둔 여행 계획서를 들여다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아내와 단둘이 떠나기로 했다. 첫 번째 무산된 계획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에 준비는 비교적 간단했다. 같은 루트, 같은 도시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우리 둘만의 속도로 여행하려 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는 전번의 교훈을 살려 무료 취소 옵션만 골랐다.

2019년 겨울,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이상한 폐렴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었고, 모든 국경이 닫혔다. 코로나19.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 앞에서 우리의 여행은 다시 한번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에는 금전적 손실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의 손실은 첫 번째보다 더 컸다. '토스카나는 내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세상이 언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몰랐고, 우리의 나이는 계속 늘어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이 왔다. 코로나는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여덟 명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계획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여덟 명의 의견을 모아야 했다. 여러 후보지를 놓고 고민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토스카나. 두 번이나 나를 배신했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될 것 같았다. 아니, 되어야만 했다. 다행히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구체적인 여정과 시기를 함께 논의하며 천천히 계획을 다듬어갔다.






60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이제 60대 중반에 접어든 우리는,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있다.

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독립했고, 우리들 자녀들의 절반 이상 결혼도 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 손주가 있다. 부모로서 헌신하던 시간들이 서서히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직장에서도 한발 물러서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단계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물론 예전과 같지는 않다. 체력도 떨어졌고, 무리하면 금방 피곤이 몰려온다. 새벽 비행은 부담스럽고, 하루 종일 걷는 일정은 무리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더욱 신중하게 준비했다. 여덟 명의 건강과 체력을 고려하고, 각자의 관심사와 여행 스타일을 존중하는 유연한 일정을 짰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나는 60이 넘어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며 그곳에 함께 하는 사람이다. 길 위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가가 여행의 본질이다.


예상치 못한 우회로가 때론 더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고, 계획에 없던 멈춤이 더 깊은 깨달음을 준다.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익숙함의 틀을 벗어나 세상과 새롭게 조우한다. 그 순간 마음의 창이 열리고, 우리는 젊은 날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2주간 네 쌍의 부부가 함께 걸으며, 젊은 날의 열정과 호기심을 되살리고, 삶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시간이었다.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여행의 방식 그리고 그 기록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시도한 가장 독특한 방식은 '따로 또 같이'였다. 보통 단체 여행은 출발부터 귀국까지 모두 함께한다. 하지만 이번의 우리는 달랐다. 핵심 여행 일정만 전체가 함께하고, 현지 도착과 귀국은 각 커플의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정했다. 한 커플은 아내와 딸이 남편보다 며칠 먼저 로마로 들어가 5일간 모녀 여행을 즐기다가, 남편이 합류하기로 했다. 다른 커플들도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순차적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그렇게 제각각 이탈리아 땅을 밟은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인 아시시의 호텔에서 토요일 밤 상봉했다.


드디어 모인 여덟 명.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루어진 완전체였다. 우리는 9일 동안 아시시의 고즈넉한 골목을 걷고, 토스카나의 포도밭 사이를 드라이브하고, 피렌체의 예술에 감탄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두 커플은 일정상 먼저 귀국해야 했다. 나머지 네 명은 치비타의 하늘 위 마을을 탐험하고, 나폴리의 활기를 느끼고, 소렌토의 해안 절벽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4박 5일을 더 보냈다.


이 '따로 또 같이'라는 방식은 각자의 취향과 형편을 존중하면서도 여행의 만족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은퇴 시점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이런 유연한 접근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두가 만족했고,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이 컸다. 앞으로도 우리의 여행에서 이런 방식이 자주 시도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 이야기는 네 쌍의 부부가 함께한 2주간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움 앞에서 느낀 역사의 무게.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마주한 평화. 토스카나의 끝없이 펼쳐진 사이프러스 나뭇길을 달리며 만끽한 자유.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 예술 앞에 서서 느낀 전율.


치비타의 죽어가는 마을에서 본 고독한 아름다움. 나폴리의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발견한 생명력. 아말피 해안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나눈 웃음. 끼안티의 포도밭에서 마신 와인 한 잔의 여유. 그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젊었을 때 똑같은 장소를 보았다면 느꼈을 감정과는 분명 달랐다. 이제 우리는 더 천천히 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오래 기억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새겨졌고, 그 이야기들은 돌아온 후에도 우리 안에 머물며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 여행은 끝났지만, 여행이 남긴 것들은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이 여행기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여행의 영감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우리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곳의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에도 잔잔한 울림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기록은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60대에 떠난 이탈리아.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진 여행. 여덟 명이 함께, 때론 따로, 하지만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나눈 2주간의 이야기. 이제 그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