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하루, 짧지만 강렬한 시작

다시, 로마 : 30년의 시간을 건너 마주한 영원한 도시

by 트릴로그 trilogue

다빈치 공항, 30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다


금요일 저녁, 로마 피우미치노(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려 테르미니역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 중 마지막 팀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우리 부부의 첫 일정이었다. 공항의 환한 조명 아래 오가는 여행객들, 이탈리아어로 가득한 안내 방송,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에스프레소 향.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하지만 '다빈치 공항'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30년 전의 기억이 조건반사처럼 되살아났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내 손을 꽉 쥐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 일"—우리 부부 사이에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기억이었다.


다빈치 공항의 모습



1994년 여름,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우리 부부와 처제 부부, 그리고 다섯 살배기 큰아들까지 다섯 명이 야심 차게 떠난 유럽 여행이었다. 파리에서 시작해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 2주간의 대장정은 그야말로 꿈결 같았다. 렌터카 트렁크엔 옷가지와 기념품들로 가득했고, 아이는 매일 밤 호텔 침대에서 "오늘 뭐 했어?"라며 하루를 복기하곤 했다.


사건은 처제 부부가 귀국하던 날, 바티칸 뮤지엄 근처 대로변에서 벌어졌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두 시간 넘게 목을 꺾은 채 감상하고 돌아온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렌터카 트렁크에 가득 실어둔 캐리어 세 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차량 자체엔 외관상 손상이 전혀 없었다. 대낮의 로마 한복판에서, 관광객들이 오가는 대로변에서 벌어진 대범하고도 치밀한 절도였다.


처제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귀국 편 비행기는 불과 네 시간 뒤였고, 다행히 여권과 항공권은 몸에 지니고 있었다. 큰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왜 울어?"라고 물었고, 나는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분노와 당혹감 속에 찾아간 경찰서는 혼란 그 자체였다. 비좁은 대기실엔 도난 신고를 하러 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프랑스인, 독일인, 일본인… 저마다의 언어로 항의하고 하소연했지만, 경찰관들의 표정엔 "또 왔군"이라는 피로감만 역력했다. 통하지 않는 언어, 경찰관의 냉담한 태도, 그리고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무뚝뚝한 선언. 짐을 되찾을 거란 기대는 사치였다.


결국 우리는 여행자 보험을 위한 도난 신고서만 작성한 채 경찰서를 나섰다. 렌터카는 공항에서 황급히 반납했고, 영국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듯 사정을 설명했다. 선배는 "이탈리아에선 흔한 일"이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우리는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을 끊어 로마를 탈출했다. 그때 황망히 떠났던 그곳이 바로 이 다빈치 공항이었다.


귀국 후 몇 달간, 나는 로마를 떠올릴 때마다 치가 떨렸다. 보험금으로 겨우 손해의 일부를 메웠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추억의 물건들—아이가 산 장난감, 아내가 고른 스카프, 파리에서 찍은 사진 필름, 베니스에서 샀던 예쁜 크리스털 인형—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도둑질이 유명한 나라, 다시는 오나 봐라!"

수십 번도 더 되뇌었던 저주였다. 친구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도 로마 이야기만 나오면 쏟아냈던 원망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분노는 서서히 희석되었다. 아니, 희석되었다기보다는 이 나라가 품은 압도적인 문화유산과 찬란한 자연 앞에 그 맹세가 무력해졌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콜로세움, 판테온, 트레비 분수, 피렌체의 두오모, 베네치아의 운하, 토스카나의 언덕… 여전히 가슴 뛰게 하는 곳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그저 얄미울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30년 만에 나는 다시 이 공항에 발을 딛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두 번째가 아니다. 6년 전, 나는 혼자 로마에 왔었다. 4박 5일, 아내와 지금 함께 할 멤버들과 그리스 산토리니섬에서 만나기 전 홀로 로마여행을 하기로 하고 철저히 계획된 일정으로 이 도시를 다시 마주했다. 콜로세움, 바티칸, 트레비 분수… 30년 전엔 분노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때는 혼자였기에 가능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내와 함께다. 30년 전 그 악몽을 함께 겪었던 아내와, 이제는 다른 마음으로 이 도시를 걷는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


30여 년 전의 기억을 뒤로하고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에 올랐다. 기차 실내는 쾌적했고 짐 보관소도 넉넉했지만, 나는 좁은 좌석 틈으로 굳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6년 전 혼자 왔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그때랑 다를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고개만 끄덕였을 뿐 캐리어를 발밑에 단단히 고정했다. 한 번 새겨진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름은 '익스프레스'인데 기차는 시속 100km 언저리로 느긋하게 달렸다. 한국의 KTX나 공항철도의 속도감을 기대했던 내게 이 느림보 열차는 이탈리아의 첫인상 그 자체였다. '아, 여기가 이탈리아였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로마 외곽의 아파트들, 낙서로 뒤덮인 담벼락들, 그리고 석양빛에 물든 고대 건축물의 잔해들. 속도는 느렸지만, 풍경은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테르미니역의 전경


테르미니역 플랫폼을 빠져나오자 뜻밖의 얼굴이 우릴 막아섰다. 하루 먼저 도착한 김 변호사였다. 평소 침착하고 논리적인 그가 마치 현지인처럼 마중 나온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그의 표정엔 묘한 낭패감이 서려 있었다.


"어, 오셨어요? 근데 있잖아요…"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역으로 오는 길, 붐비는 도로에서 뒷주머니의 60유로를 소매치기당했다는 것이다. 지갑은 앞주머니에 있어서 무사했지만, 현금만 쏙 빼간 솜씨에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몸은 상하지 않았지만, 여행의 시작부터 "너희가 로마에 왔다고?" 하며 도시가 건네는 짓궂은 경고장 같았다. 우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로마에서의 '신고식'을 치렀다.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이 도시의 환영 방식에, 나는 묘하게도 안도감마저 들었다. '역시 로마답네.'


호텔은 테르미니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 건물 외관은 다소 낡았고, 엘리베이터는 비좁아서 캐리어 두 개가 들어가면 사람은 거의 옆으로 서야 했다. 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로마의 정취가 물씬 풍겨왔다. 높은 천장, 오래된 나무 가구, 벽에 걸린 고풍스러운 거울. 창문을 열자 좁은 골목길 풍경이 펼쳐졌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탈리아 노래, 저녁을 준비하는 집들에서 새어 나오는 마늘 볶는 냄새. 이것이 진짜 로마구나, 싶었다.


"내일은 모든 일행이 모여 렌터카를 픽업해 아시시로 떠난다."


아내가 일정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말했다.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해프닝이 묘하게 겹쳐지는 밤, 본격적인 여정을 앞두고 잠을 청했다. 창밖에선 로마의 밤이 여전히 떠들썩했다.

호텔 노드 누오바 로마




공사 가림막 너머의 로마


이튿날 아침 8시 반, 상쾌한 로마의 공기를 마시며 산탄젤로 성으로 향했다. 토요일 아침의 거리는 한산했고, 버스는 익숙한 도심을 부드럽게 가로질러 10분 만에 목적지에 닿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테베레 강의 물결, 다리 위를 천천히 조깅하는 사람들, 노천카페에서 신문을 펼쳐든 노인들. 로마의 일상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산탄젤로 성과 다리는 온통 공사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초록색 철망 너머로 성의 윤곽만 어렴풋이 보일 뿐, 그 웅장한 자태를 제대로 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틈새로 렌즈를 밀어 넣어 몇 장 찍어보았지만, 사진마다 공사 자재만 가득했다.

산탄젤로 성과 주변 모습


"아… 오래전에 봤던 그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는 아내를 달래 나보나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그곳의 아름다운 베르니니 분수들마저 보수 공사 중이었다. 사방이 공사판이었다.


나보나 분수들도 공사 중
6년전에 찍은 나보나 광장의 전경


"로마는 영원한 공사 중인가 봐."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아내는 피식 웃었다. 로마의 낭만을 기대했던 아내의 바람은 무산되었지만,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의외성,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물론 철두철미한 내 성격엔 아직 낯선 방식이지만, 로마는 자꾸만 나에게 '내려놓음'을 가르치고 있었다.



판테온, 시간을 초월한 연결


아쉬움을 뒤로하고 판테온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원형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모든 신을 위한 신전'. 기원전 27년에 세워져 화재와 재건을 거쳐 2천 년을 버텨온 이 건축물. 6년 전에도 여기 섰었다. 혼자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던 그 돔.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서 있다.


판테온은 혁신 그 자체다. 키스톤 하나 없이 거대한 돔을 올리고, 정수리에 '오쿨루스(Oculus)'라는 빛의 창을 뚫은 대담함. 특히 며칠 후 피렌체에서 마주할 '두오모 성당'을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르네상스의 천재 브루넬레스키가 바로 이곳 판테온의 돔을 연구하여 피렌체의 붉은 지붕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고대 로마인의 지혜가 브루넬레스키에게 닿고, 그 영감이 다시 나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연결된 역사 속에 서 있었다. 건축은 시간을 초월해 인류의 지성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임을, 판테온은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문명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판테온 외부 모습들



로마의 커피, 로마의 의식


역사적 전율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각을 채울 시간이었다. 판테온 광장 근처, 로마 3대 카페 중 하나인 '산트 유스타치오(Sant'Eustachio)'에 들렀다. 1938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전문점 중 하나로, 현지인들조차 줄을 서서 기다린다. 6년 전에도 들렀던 곳이다. 그때는 혼자 카운터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셨지만, 이번엔 아내와 함께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산트 유스타치오 카페에 붐비는 사람들


빵 맛은 평범했다. 솔직히 한국의 베이커리가 더 맛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로마 최고라 자부하는 커피의 풍미는 역시나 일품이었다. 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쓴맛과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창밖으로는 판테온 광장이 보였고, 관광객들이 분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는 부족했다. 이어 근처의 '타짜 도로(Tazza D'Oro)'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 역시 로마의 전설적인 카페 중 하나로, 1946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엔 카운터에 서서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주문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커피를 테이블에 앉아 마시지 않는다. 카운터에 서서, 단숨에, 마치 의식을 치르듯 마신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똑같이 했다. 바리스타가 건네준 작은 잔. 한 모금 털어 넣자 진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주변의 여행객들, 현지인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서서 마시는 커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영화 같은 순간일지 모른다.

카페 타짜 도로에서도 에스프레소 한잔을



30년 전 도둑맞았던 캐리어의 아픈 기억은, 이제 진한 에스프레소 향기와 함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소매치기는 있고, 여전히 공사 가림막은 곳곳에 있고, 여전히 느린 열차는 '익스프레스'라 불린다.


하지만 로마는 여전히 얄밉지만,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도시다. 2천 년 된 건축물이 일상 속에 녹아 있고, 골목마다 역사가 숨 쉬고, 한 잔의 커피에도 전통이 깃들어 있는 이곳. 로마는 완벽하지 않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더 인간적이고, 더 매혹적이다.


내일은 아시시로 떠난다. 하지만 로마는 이미 내 안에 다시 자리 잡았다. 이번엔 분노가 아닌, 애증의 감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