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골목과 광장

by 트릴로그 trilogue

판테온에서 스페인 광장까지: 경건의 순간들


왁자지껄한 판테온 앞 광장의 열기를 뒤로하고, 진한 커피 향이 감도는 작은 카페에서 로마의 에너지를 들이킨 후, 목적지인 스페인 광장까지,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걷는 진정한 로마 워킹이 시작되었다. 명품 거리와 골목길을 누비며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물을 스쳐 지나가는 이 길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발걸음을 완전히 멈추게 한 두 장소가 있었다.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과 성모의 원주였다.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 Basilica Sant'Andrea delle Fratte

분주한 쇼핑 거리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 성당은 마치 다른 차원의 입구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이지만 겉모습보다는 내부에서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평온함이 압도적이었다. 베르니니의 천사 조각과 성 안드레아를 그린 제단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의 내부 모습


이 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기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에 보존된 로렌초 베르니니의 두 천사상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원래 산탄젤로 다리를 위해 조각되었다는 이 천사들은, 대리석임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생생했다. 천사들의 섬세한 날개 끝과 옷자락의 흐름을 바라보며, 바로크 거장의 숨결이 이 성당 안에 영원히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바깥세상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고, 내 안에는 오직 예술과 종교가 주는 깊은 울림만이 가득했다.


로렌초 베르니니의 천사상

문득 6년 전 보르게세 미술관에 들렀을 때가 떠올랐다. 이 미술관은 베르니니의 초기부터 절정기 작품이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로마에서 베르니니의 조각을 감상할 때 필수적으로 방문해야 할 장소다. 그중에서도 《아폴론과 다프네》를 놀라운 눈빛으로 감상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베르니니는 신화의 모든 장면 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역동적인 순간—아폴론이 다프네에게 막 손이 닿으려는 찰나, 다프네의 몸이 월계수로 변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조각으로 표현했다. 이곳 성당의 천사상 역시 그와 같은 베르니니 특유의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아폴론과 다프네 (Apollo e Dafne)


성모의 원주

성당의 고요함에서 벗어나 다시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미냐넬리 광장의 시야가 탁 트이는 순간 성모의 원주(Colonna dell'Immacolata)가 우뚝 솟아 나타났다. 그 높이와 위용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전승 기념탑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기둥 위에는, 순백의 성모 마리아 동상이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치고 있었다. 로마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도시의 모든 번잡함을 초월한 듯한 성모님의 모습은 깊은 위로와 함께 숭고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기단에 새겨진 부조와 청동상들 역시 원주가 가진 역사적, 종교적 무게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성모의 원주(Colonna dell'Immacolata)


이 원주는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는 여정의 확실한 이정표였다. 고대 유적 사이를 걷는 여행자에게 천상의 시선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성모의 원주를 지나자마자 스페인 광장의 활기찬 계단과 분수의 소리가 들려왔다. 경건함과 낭만이 완벽하게 교차하는 경험이었다.



스페인 광장, 시간이 쌓인 풍경


콘도티 거리의 명품숍 사이를 비집고 걸어 나오자 시야가 탁 트이며 스페인 광장이 펼쳐졌다. 한때 인근 스페인 대사관에서 이름을 얻은 이 광장은 계단과 분수, 주변 건축이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이제 로마를 대표하는 장면처럼 자리 잡았다.


안티코 카페 그레코의 안팎 전경


광장 근처, 로마 3대 카페 가운데 마지막 남은 안티코 카페 그레코에 잠시 들렀다. 괴테와 바이런, 카사노바를 비롯해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해지는데, 앤티크 가구와 묵은 세월이 밴 그림들로 채워진 실내는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는 동안, 이 공간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와 영감이 벽에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행위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 없이 참여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30년 전, 이 근처 넥타이 가게에서 가격 대비 훌륭한 넥타이를 몇 장 샀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도둑맞은 캐리어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물건들. 그 기억이 갑자기 엄습하자, 눈길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바쁘게 오갔다. 로마에서의 첫 여행이 남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몸의 반사 작용처럼 되살아났다.


광장 한가운데, 베르니니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 앞에 섰다. 예전에 큰아들이 이 분수에 발을 담그고 물장난을 치던 모습이 떠올랐지만, 이제 그런 행동은 벌금 감수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쪽이 살짝 접힌 나비넥타이처럼 보이는 이 배 모양의 분수는, 테베레강이 범람해 광장까지 밀려온 배 한 척에서 영감을 얻어 베르니니 부자가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물이 넘쳐흐르는 순간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바로크 예술가들의 감각이 새삼 놀라웠다.


스페인 광장과 분수대


오드리 헵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젤라토를 들고 스페인 계단에 앉아 있던 장면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 그 장면은 스크린 속 환상으로만 존재한다. 계단 곳곳에는 앉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제한하는 안내문과 단속 요원이 눈에 띈다. 관광객들은 잠깐 허리를 펴기 위해 계단에 걸터앉았다가도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황급히 일어서곤 했다. 명소가 감당해야 할 과잉 관심의 무게가 이런 식으로 규제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이렇게 쓸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티 데이 몬티 성당의 모습


불규칙한 나비 모양의 스페인 계단을 천천히 올라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앞에 섰다. 18세기 프랑스 외교관이 남긴 유산으로 세워진 이 계단은, 성당 내부의 정교한 장식과 함께 이 일대를 한층 더 극적인 무대로 만들어준다.


하늘과 맞닿은 묵상의 공간

로마의 가장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장소, 스페인 계단 꼭대기에 자리한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은 마치 도시의 소란 위에 떠 있는 듯한 고요한 공간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창밖의 황금빛 로마 풍경은 사라지고 기품이 감도는 실내가 펼쳐졌다. 아까 들렸던 산탄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의 웅장한 바로크 드라마와는 결이 달랐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정하고 정갈한 선이 강조되며, 공간 전체가 차분하고 맑은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부 곳곳의 경당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16세기 르네상스 후기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다니엘레 다 볼테라와 그의 화파가 남긴 프레스코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성화 속 인물들의 표정과 색채는 로마 특유의 격렬함보다는 숙련되고 섬세한 우아함을 담고 있어, 사색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이 그림들은 화려한 제단 장식이라기보다는, 빛과 그림자의 섬세한 대화를 통해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했다. 높고 시원하게 뻗은 천장과 기둥들은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며, 마치 하늘과 가까운 이 위치의 특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의 내부 모습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의 내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로마 시내와 완벽하게 단절된 평화의 은신처였다. 외관의 웅장한 실루엣이 스페인 광장을 압도한다면, 내부는 고요함과 고상함으로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의 짧은 묵상은 낯선 도시의 여행자를 잠시 멈춰 서게 하고, 내면의 평화를 되찾게 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스페인 광장과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니, 쾌청한 날씨 덕분에 멀리 베드로 성당의 돔까지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인파가 워낙 많아 사진 한 장을 건지기도 쉽지 않았지만, 세계적인 관광지에서 한적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과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트리니타 데이 몬티 성당 앞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 전경

로마는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붐빔이야말로 이 도시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자, 결코 떨쳐낼 수 없는 매력이다.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각자의 로마를 만들어간다.

로마는 늘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붐빔이야말로 이 도시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자, 결코 떨쳐낼 수 없는 매력이다.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각자의 로마를 만들어간다.




트레비 분수, 세 번째 동전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을 뿐인데, 10시 반이 채 되기도 전에 허기가 밀려왔다. 급히 검색해 찾아낸 곳은 트레비 분수 근처의 식당 '트라토리아 델라 스탐파'. 오픈 시간이 11시라, 어쩔 수 없이 15분 일찍 도착해 본의 아니게 '오픈런' 대열에 합류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았고, 한국식 속도로 주문부터 해결하려 했지만 종업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의 리듬을 유지했다. 다급한 마음을 누르고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주문했음에도 음식은 다른 테이블부터 차례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끝내 참지 못하고 이유를 묻자, 종업원은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요리 종류에 따라 조리 시간이 다르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짧게 답했다. 역시 한국인의 조급함은 어디를 가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짧은 기다림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10여 분 뒤 차례로 나온 요리들은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훌륭했다. 토마토소스에 적신 가지 롤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맛이 났고, 특히 주키니 롤은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한 번 따라 만들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라, 재료를 자세히 살피고 사진까지 남겼다. 속을 채운 리코타 치즈와 허브의 조화, 겉면을 살짝 구워낸 질감까지, 단순해 보이는 요리 안에 이탈리아 가정식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주문했던 요리의 일부


여러 가지를 욕심껏 주문하다 보니 둘이 먹기에는 다소 과한 양이 되어 버렸다. 조금만 더 친절한 종업원이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니 한 가지는 빼시는 게 좋겠다"는 조언쯤은 건네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도 스쳤다. 한국식 '센스'가 때로는 세계 최강이라는 농담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법이다. 배불리 먹고 나니 종업원의 무심함마저 이탈리아적인 여유로 느껴졌다.


만족스러운 점심을 마치고 곧장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골목 사이로 걷다가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거대한 바로크 조각이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한 풍경이 반가웠지만, 분수를 빽빽이 둘러싼 인파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세계적인 명소 앞에서 감탄보다 소지품 걱정이 앞서는 스스로가 우스워 실소가 나왔다.


트레비 분수의 이모저모

로마는 마치 시간의 층을 겹겹이 쌓아 올린 도시처럼, 고대 유적과 현대 문명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한다. 팔라티노 언덕의 폐허 옆에는 피아트 승용차가 달리고, 2천 년 된 신전 터 위로 전선줄이 가로지른다. 이 도시의 매력은 한 번에 모두 발견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바람을 품고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


한 손에 작은 동전을 쥐고 분수를 등진 채, 오른쪽 어깨너머로 동전을 던졌다. 첫 번째 동전은 '언젠가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망을, 두 번째와 세 번째 동전은 사랑과 간절한 소원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순간 마음속에 담긴 바람일 것이다. 두 번이나 로마를 찾았던 기억 위에 또 한 번의 방문을 기원하며, 세 번째 동전이 물속으로 가볍게 가라앉는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분수 뒤편 궁전의 벽면을 타고 쏟아지는 물줄기는 넵튠 신과 그의 시종들 사이를 흐르며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니콜라 살비가 30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바로크 걸작 앞에서, 나는 수백만 명 가운데 하나의 관광객일 뿐이었지만, 동전을 던지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로마와 나만의 비밀스러운 약속을 나누는 것 같았다.




캄피돌리오, 미켈란젤로의 계단


트레비 분수를 뒤로하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일정에는 없었지만, 초반에 산탄젤로 성과 나보나 광장에서 헛걸음을 한 덕에 여유가 생겨 캄피돌리오 광장을 들르기로 했다. 베네치아 광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지만, 15분 남짓 이어진 길은 구경거리가 끊이지 않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로마의 날씨는 서울보다 덜 후텁지근했지만 햇살은 제법 강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크게 지치지 않고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주변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듯한 키 크고 날렵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름이 가물가물해 '우산소나무'라고 중얼거렸는데, 실제로 윗부분이 우산처럼 펼쳐진 그 나무의 정식 이름이 '우산소나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혼자 웃음이 났다. 멀리서 보면 가지가 넓게 펼쳐진 그 실루엣이 로마의 스카이라인을 부드럽게 떠받치고 있는 듯했다. 이 나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곳에 뿌리내려, 제국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산증인 같았다.


캄피돌리오 언덕 위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사실 아내가 캄피돌리오 광장을 고집했던 이유는 광장 자체보다도, 그 뒤편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포로 로마노 때문이었다. 시간 제약도 있고, 예전에 이미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둘러본 터라 이번 여행에서는 정식 입장은 일정에서 뺐다. 그 대신, 캄피돌리오 언덕 위에서 잠시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보는 정도의 여유는 누리기로 했다.


캄피톨리노의 암이리상


세 번째 방문이지만, 언제 보아도 이곳의 조망은 숨이 멎을 만큼 인상적이다. 폐허처럼 보이는 돌기둥과 잔해들 사이로, 한때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도시의 전성기가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저 아래 무너진 신전 터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토가를 걸친 채 연설했을 것이고, 저 길을 따라 개선장군의 행렬이 환호성과 함께 지나갔을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그 폐허가 오히려 상상의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문득 2018년 5월이 떠올랐다. 세 커플이 함께한 그리스 여행에서, 유독 나만 로마에 먼저 들러 혼자 4박 5일을 보냈던 때였다. 테르미니역 근처 에어비앤비에 머물며, 누구의 발을 맞출 필요도 없이 혼자 로마를 천천히 걸었다. 일정이 끝난 뒤 그리스 산토리니로 날아가 일행과 합류했는데, 먼저 도착한 나는 작은 공항 대합실에서 현지 가이드라도 된 듯 종이 박스에 일행 중 한 사람의 이름을 영어로 적어 들고 기다렸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웃음과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때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홀로 천천히 둘러보며, 언젠가 가족과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기억이 다시금 또렷이 떠올랐다. 그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 환전소 옆 종이를 들고 있는 필자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이어지는 코르도나타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교묘히 변형한 착시 효과를 적용해 설계한 작품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이 계단은 마차까지 오를 수 있도록 고려해 설계되었으며,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 보이는 시각적 효과 덕분에 언덕이 더욱 장엄하게 느껴진다. 꼭대기에는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조각상이 서 있고, 그 뒤로 펼쳐지는 캄피돌리오 광장과 카피톨리노 박물관은 르네상스 양식과 고대 유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미술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박물관은, 로마의 긴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거대한 기억 장치처럼 서 있다.


코르도나타 계단


광장 중앙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복제본도 눈길을 끈다. 세심하게 계산된 비율로 제작된 이 조각은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면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받침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를 기준으로 비례를 맞춘 덕분에 말과 기수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생동감을 준다. 조각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돌기둥 사이를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중세 내내 이 동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이것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상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예술을 지켜낸 셈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서 몇 시간을 더 머물며 '조국의 제단' 위 카페에 올라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카피톨리노 박물관과 인근 성당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시시로 떠나기 위해 호텔에서 짐을 찾고 테르미니역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국의 제단Monumento a Vittorio Emanuele II






아시시로, 새로운 여정을 향해


30년 전 캐리어를 도둑맞았던 기억은 이제 시간이 덧발라진 추억이 되었다. 그 위로 새로운 여정의 첫 장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다. 건축의 지혜, 카페에서의 여유, 뜻밖의 공사 현장과 예상 밖의 변수들까지. 이런 모든 요소가 겹겹이 쌓여, 오늘의 로마라는 도시를 이루는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오후 4시 반, 호텔에 도착해 프런트에 맡겨두었던 가방을 찾았다.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내내 몸이 한결 가벼웠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가방을 끌고 다시 거리로 나서니, 오후의 햇살이 건물 사이로 비스듬히 쏟아졌다. 테르미니역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역 주변의 분주한 풍경이 점점 가까워졌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하자 렌터카 회사를 찾는 일부터가 작은 모험이었다. 역 안팎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예약 확인서에 적힌 주소를 따라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냈다. 서류를 확인하고 차량 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이제 곧 로마를 벗어나 움브리아의 언덕 마을로 향한다는 실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아시시를 입력했다. 로마의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도시 외곽으로 접어들수록 창밖 풍경은 점점 더 목가적으로 변해갔다. 트레비 분수에 던진 세 번째 동전이 약속했듯, 나는 언젠가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차는 로마를 뒤로하고 다음 이야기가 펼쳐질 아시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