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어도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은 모릅니다.
ADHD를 진단받고 정신과 약을 복용하게 된 후부터 고통스러운 것이 있다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나는 도무지 비어 있는 시간들을 쓰는 법을 모르겠다. 특히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잠에서 깨기가 두려울 정도다. 잠을 더 길고 달콤하게 잘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이 되면 눈이 번쩍 떠진다.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이 무료하고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정신과 선생님은 유전자의 특징에 따라 수렵이나 낚시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추천해 주셨지만, 생선을 손질하는 것만 생각해도 끔찍하며, 수렵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특히, 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내가 내 의지로 사용해 어느 지점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나오지 말아야 할 때 나오는 이 쓸모없는 반골 기질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냥 시작해 보면 될 텐데 그러지 않는 것은 하기가 싫은 거겠지.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요? 꼭 그렇게 뭐든지 생각해야 해요?
조금 여유로워져도 괜찮아요.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아내가 깎아준 사과를 조금 먹고, 알림 하나 없는 인스타그램을 십여분 이상 들여다보고, 별로 의미도 두지 않는 브런치 스토리의 통계를 확인하고, 필요한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심지어 키워드 등록도 해두지 않았지만 당근에 들어가 근처에서 올린 물건들을 들여다봤다. 한라일보의 기사 헤드라인을 대충 훑어보다가 기사는 읽지도 않고 꺼버렸다. 넷플릭스, 왓챠, Apple TV+, 디즈니 플러스까지 구독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보고 싶은 작품이 없고, 책은 원래 읽기 싫어한다. (심지어 책을 보려고 문서 재단기, 북 스캐너, 이북 리더기까지 있지만) 보고 싶은 책도 없다.
꾸역꾸역 시간을 흘려보낸다. 어서 밤이 되어 자나팜을 먹고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해가 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가족을 끌고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오름이라도 갈까 하고 물었지만, 왠지 가기가 싫었다. 늘 가는 근처의 카페에 가서 보드게임을 조금 했다. 아내와 아이는 케이크와 각자 고른 음료를 마시고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적당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근처 공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쉬었다. 공놀이도 했다. 이 공원은 바다가 인접해 바람이 세다. 오늘 프리스비를 하기엔 어려웠다. 좀처럼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금방 흐른다. 곧 세시가 지나려 했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안정을 주었지만 어딘가에서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소리를 지른다. 집에 돌아온 지 십여 분이 지났지만 불안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카페로 돌아가 고양이 그림이라도 그리면 시간이 금방 흐를 것 같았다. 최근에 네코마키의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만화책에 나오는 고양이들을 아이패드에 옮겨 그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을 모사한 귀여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번진다. 주섬주섬 준비를 하니 아내가 같이 가고 싶은 눈치다. (결국) 아내와 함께 카페에 다시 갔다. 카페 주인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아이를 떼놓고 다시 왔다 하니 히히 하고 웃어주었다. 아이패드엔 배터리가 부족했다. 빈 캔버스를 절반쯤 채웠을 때 아이패드가 꺼져버렸다. 아내와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다시 왔다. 곧 다섯 시가 지나려 했다.
고기를 구워 간단히 저녁을 해 먹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나는 아이와 빨래를 개었다. 곧 해가 졌다. 조금 숨이 쉬어졌다. 해가 지면 일단은 하루가 끝난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은 여름이 다가올수록 해는 일찍 떨어지고, 잠이 들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뭐가 어떻든 해가 지면 좋다. 시간을 충분히 죽였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카페에서 그리다 그만둔 고양이들을 조금 더 채우거나 이 글을 마무리하다가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안에 잠에 들면 된다. 긴 하루가 이제 막 끝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