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어도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한걸 보니,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마흔이 늙은 나이냐며 눈을 흘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최근에 부쩍 내 나이를 실감하고 있다. 연달아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점도 그렇지만, 오랜만에 시내에서 마주치는 (젊은) 사람들을 보자면 내 주름이 황망하기만 하다. 나이 문제도 그렇지만, ADHD에서 오는 문제도 쉽지만은 않다. 이전 글에서 얘기했던 불안 문제라든지, 화용언어 사용에 대한 문제, 심각한 기억력 부족, 사회적응장애 등등 손가락으로 세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 최근에 도서관에서 빌린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일단 태어났으니까 살아내야 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내가 마흔에 자진해서 정신병원을 방문해서 ADHD를 진단받아 정신병자가 되었노라고 하면 아마도 날 아는 누군가는 날 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그렇게 되어버렸다. 내가 복용하는 약 때문인지, 나의 기질 또는 특성 때문인지 많은 문제들이 약을 복용하고 있는 지금도 날 괴롭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정신병자이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 내 상태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도저히 복용하기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악을 피하기 위해 최악을 고를 필요는 없으며, 기왕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살아내야 한다.
김나영의 <어른이 된다는 게>라는 노래의 가사가 내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받아쓰기를 잘한다고 칭찬받을 나이는 지났고 나이는 먹어 어린 시절보다 키는 한참 자랐지만, 나는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가사를 곱씹을수록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작아지는 '나를 언제까지고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너에겐 너의 보살핌이 필요한 인간들과 동물들이 있다'고 일어나라고 응원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하겠지만, 그것이 정말 정신승리라는 단어로 치부된다고 할지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다.
휴일을 맞아 아내와 아이는 서울로 나들이를 갔다. 보살핌이 필요한 머릿수가 줄어 부담은 덜었지만, 정작 나는 더 불안해졌다. 시간이 흐르지 않을 때는 괜히 아내에게 농을 치거나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오늘은 그럴 상대가 없어진 것이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일찍 출발하는 아이와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려 잠시 일어났더니 깊은 잠에 다시 들 수 없었고, 지난밤에 맛있게 먹은 비빔면 덕분인지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콘서타와 아빌리파이를 챙겨 먹고 양치질을 하고, 조용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생각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는 수 밖에는 없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충전하면서 OTT 서비스들을 대충 둘러보았다. 시선을 끌만한 것은 없었다. 즐겨가는 카페에 가서 네코마키의 <고양이와 할아버지>를 훑어보고 그리기 편한 장면을 따라 그렸다. 가루 설탕을 섞어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찬 물로 입을 씻었다. 이전 글에서 카페인을 과잉섭취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연달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페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다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 내내 비가 온다고 한다.
아이와 아내가 없는 집은 아주 조용했다. 고양이들은 반려인이 집에 왔지만 쳐다보지도 않는다. 비에 젖은 옷을 벗고 온수로 목욕을 했다. 비에 조금 젖었다는 핑계로 시간을 넉넉하게 보내기 좋은 활동이었다. 충분히 씻고 구석구석 몸을 닦았다. 저녁에는 넷플릭스에서 John Mulaney의 <Everybody's In L.A.>를 보았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언 중 한 명인데, 정확히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ADHD가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아마도 넷플릭스는 Apple TV+에서 Jon Stewart가 진행하는 <The Problem>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나 보다. 두 쇼가 비슷하지만 John Mulaney 쪽이 좀 더 산만하고,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특이함이 잘 어울리는 쇼인 것 같다. 재밌었다.
쇼를 보기 전에 복용한 자나팜이 날 천천히 잠으로 이끌어주었다. 가족이 없어 걱정했던 하루가 잘(?)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