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어도 마음에 드는 글 한 줄 쓰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내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나름대로의 고집은 있어서 유려한 글을 쓰고 싶은데 욕심만큼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일상으로부터 나에게 전달되는 자극이 글로 쓸 만큼 크기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을 글로 담백하게 기록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랬더니 글에 재미가 없어졌다. 무리해서 재미있게 쓰려고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포장할 만한 소재가 없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흥미를 찾기 어려워졌다. 아마도 이것은 콘서타나 아빌리파이를 복용해서 생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끔 챙겨보는 애니메이션에서 좋은(?) 자극을 찾을 수 있었다. 디즈니+의 <페이블>에서 술에 취한 남자의 주정을 우스운 듯 지켜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을 시리즈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미 술을 마시지 않은지 몇 년이 흘렀고, 젊었을 때의 감각이 흐릿해져 가지만 누군가에게 보일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이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 저런 글은 어떨까? 생각만 하고 실행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6년 GQ와의 인터뷰에서 인세로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단지 두 글자인 '자유'였지만 많은 종류의 자유가 그를 만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그 자유에서 무엇이든 실패해도 괜찮은 자유가 제일 부럽다. 무엇이든 실패해도 된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여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버릴 여유와 낯선 것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여유.
업무 하는 도중에 멍하게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애꿎은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난다. 딱히 게임을 재밌게 하는 것도, 뭔가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다. 뭔가라도 해보자고 조금 힘을 내어 재미있을 만한 시리즈를 골라 재생 버튼을 누르지만, 집중해서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여유 있게 이 순간을 즐기지도 못한다. 아마도 정해진 시간을 꼬박 힘들게 업무 하는 누군가에게는 실례가 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스레드를 시작했었다. ADHD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왠지 동질감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보다, 의도치 않게 내 글이 해석되거나, 혼란스러운 답글들을 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어려울 줄 몰랐다. 마음이 힘들거나 답답할 때 조심성을 내려놓고 손가락이 가는 대로 짧은 글을 써보려고 시작했는데 어느 날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어 그간 썼던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간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마다 휙 하고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벽을 쌓아버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의 성공적인(?) 회피였다. 그렇게 회피하고도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성공한 것 아닐까? 항상 이상한 곳에서 여유가 나온다. 내가 원한 여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약을 복용하며 느끼는 여유로움을 기록하며 더 이상 인상 쓰지 않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살아가는 모습이면 좋겠지만, 실상은 반반이다.
이전에도 몇 번 혼란스러운 마음을 글로 썼었지만, 요즘은 더욱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콘서타를 복용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 한없이 마음이 여유로웠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커피를 들이켠다. 커피로 당연히 채워질 리 없기 때문에 일을 마칠 때쯤 되면 마음속으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 진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는 머릿속이 온갖 생각들로 꽉 차서 눈을 감기도 어렵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까 글이 쓱싹 하고 나올 리 없고, 오히려 쓰기가 싫어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곧 정신과의 재진일이 다가오니까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