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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deep seated person May 23. 2024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 나에게 몰아치는 파도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이런저런 ADHD 콘텐츠를 보다가 ADHD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을 보았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ADHD의 특징은 주의력 결핍, 충동성, 과잉 행동이라는 수면 위의 빙산 조각이고, 진짜 ADHD들이 가진 특성은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산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재밌었다.


그중에서도 충동성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지난 내 삶을 돌아보면 충동적인 결정과 언사로 인해 망쳐버린 인간관계들(지난 글에서 볼 수 있다.)과 아쉬운 기회들로 가득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내린 엉성한 결정들 때문에 어떤 손해가 있었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재정적인 손해만이 아니다.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인적 손해, 직업적 경력에 대한 손해도 있다. 이 모든 손해들은 나의 충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발생했고, 지금에 와서 조금 더 내가 일찍 ADHD에 대해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며 후회할 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수업할 때는 칠판을 봐야지 왜 창 밖을 보는데? 집중 좀 해라. 여기 쳐다봐.


하지만 내가 자랄 때는 ADHD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집과 학교에서는 나를 두고 산만하고 꾸준히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했다. 충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거나 회사를 그만 둔적이 대부분이다. 퇴사에는 치밀한 계획이 수반되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대부분은 처세를 적절하게 하지 못해 퇴사를 해야 했고, 현재의 분야를 완전히 벗어나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경력에 커다란 손실이 생겼음은 당연했다.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나의 성격과 연관된 것이라 생각해서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번 감정에 휩쓸리면 주위의 상황이나 상대가 누구인지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그 감정을 충실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감정은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드러내기 쉽고 강력하다. 우울감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늘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건전한 방법으로 해결할 생각도 없었다. 부정한 방법은 늘 찾기 쉽고 가까이에 있었다.


아빠는 술이 왜 좋아? 술 마시면 뭐가 좋은 거야? 좋은 게 없는데 왜 마시는 거야?


그중에서도 음주를 가장 사랑했다. 술을 마실 때는 모든 걱정과 생각을 조금 쉴 수 있었다. 그저 큰 음악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마시기만 하면 되었다. 토요일만 마시던 습관이 금요일, 평일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점점 술의 양도 늘어나면서 나중엔 폭음(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것) 하게 되었다. 이런 음주 문제로 인해 재정적 문제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ADHD의 충동성향은 음주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불온한 습관은 우연히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줄어들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긴 뒤부터는 더 줄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새벽까지 술을 잔뜩 마신 뒤 다음날 술이 덜 깨 발개진 얼굴로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아주려다 비틀거리는 나를 마주했다. 몇 번이고 얼굴을 씻었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음주라는 행동이 문제가 아니었다. 온전한 모습으로 적당히 즐길 수 없는 내가 문제였고, 의존성을 떼어낼 수 없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어느 날 일요일 아침, 일어나라는 아이의 말에 만취한 얼굴로 깬 나를 향해 무심코 던져진 질문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대신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해주었다.


그 오래되고 잘못된 나의 습관보다 무서운 것은 아버지의 사랑 같은 그런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의 충동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제어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참고: 

Behavioral components of impulsivity predict alcohol consumption in adults with ADHD and healthy contr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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