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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맛구름 Jun 24. 2024

미움은 현재 진행 중

사십춘기


올 해로 마흔.

지독한 사십춘기를 겪고 있다.

흔히 말하는 ‘아홉수’ 진짜 불운을 타고나는 시기가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휘몰아쳤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불안이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소 폭력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정했던 아빠와 따듯하고 사랑 가득한 엄마였지만 자신도, 자식들도 보호할 힘이 없었던. 어린 시절 나는 그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무섭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늘 불안해하며 살았다.

경제적 책임감도, 능력도 없던 아빠는 벌리는 사업 족족 말아먹기 바빴지만 늘 당당했고 자신 있었다. 그 뒤엔 이 집, 저 집 돈 빌리러 다니기 바빴던 엄마가 있었고, 그로 인해 친구도 잃고, 꿈도 잃어버렸다. 더 놀라운 건 성인이 되어 아빠가 벌려놓은 모든 일들의 뒷수습이 놀랍게도 언니들과 내 몫으로도 남아있었다는 사실.

 

어릴 적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있는 현재진행형인 미움의 감정이 이제는 평범한 일상까지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게 정말 벅차게 힘들고, 여전히 마주하기 힘든 지나버린 시간의 이야기지만 잊는 게 너무 힘들어 이제는 토해내서라도 버리고 가벼워지고 싶다.


쌓이고 쌓인 어린 시절의 아프고 불행한 시간과 기억들이 끝내 터져버렸던 재작년. 아마도 아빠를 견뎌내고 참았던 건 결국 엄마 때문이었으니까.

그런 엄마마저 아빠를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다 느끼고 내게 구조의 사인을 보냈을 때,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누구보다 벗어나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던 건 나였으니까. 그러나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결국 엄마는 또 백기를 들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6-7개월의 처절했던 싸움의 시간은 이전의 상처와 아픔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와 내가 일궈낸 내 가정의 희생까지 더해져서일까,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만 남았다. 내 이런 불행과 아픔이 남에게 약점으로 잡힐까 봐 철저히 숨기고 숨기며 살아왔던 모든 게 한순간에 쓰러지는 모래집 같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아빠에게만 향했던 원망과 미움은 두 배가 되어 엄마에게까지 향하게 됐다.

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그렇게 스스로 내 부모와, 언니들까지 친정식구 모두와의 연을 끊어냈다. 이렇게 내 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그 시절엔 다 그렇게 살았고 무지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우리 때문에 참고 희생했다는 말도.. 엄마를 단지 삶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대단한 일을 한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모든 일을 겪은 한 여자의 인생이 측은할 뿐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딸로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여자 대 여자로서..

하지만 본인이 다시 살기 위해 돌아간다는 그 말이 너무 큰 상처가 되었다.

엄마가 다시 돌아간 이후의 내 삶은 바닥을 쳤다. 억울했고, 화났고, 너무너무 미웠다. 내 남편, 내 아이들이 받은 상처까지 더해져 더 아팠다. 최선을 다해서 아팠다.


아파도 시간은 흘렀고, 기다려주지도 먼저 가지도 않고 똑같이 흘러갔다. 그저 시간과 함께 흘러가야 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라고 알려주듯 계절도 함께 변화해 갔다.


아파도 엄마다. 엄마라서 일어났다.

좀 거창하긴 했지만, 내 아이들에게 더 이상 바닥을

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픔의 훈장처럼 남아있는 아빠엄마의 빚도 갚으려면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어제 문득, 이효리와 엄마가 함께하는 예능프로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보게 되었다.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금세 이효리에게 나를 투영시키며 엉엉 울었다.


현재진행형인 미움 속에서 사실 난 여전히 엄마가 고프다. 엄마 상처보다 내 상처가 더 크다고 투정하고 있다. 이효리가 상처투성이에게 내 상처 좀 보듬어달라고 한걸 알게 됐고, 그래서 미안했다가 어찌해야 하나 하고 막막해졌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그냥 내가 먼저 알아주기로 마음먹고 조금 편안해졌다는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 위로가 글로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어떻게 마무리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글을 써 내려가고 그 시간 속에 나를 마주하다 보면, 용서에 닿을 수도, 미움의 감정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혹독한 사십춘기 뒤에 피어날 봄 날을 기대하며.

그저 지금은 더 이상 참고 숨기지 않고, 더 열심히 미워하고 아파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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