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불효자가 되는 것이 부모 때문이라고...?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운전기사가 되었다.
단 한 번도 운전기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소중히 기록되길 바란다.
하루도 잊고 싶지 않다.
요즘 날이 많이 추워졌다.
일찍 출근한 나는 시동을 켜고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한다.
“오늘도 무사히 지켜주세요.
교회 현지(가명) 자매 남편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함께 신앙생활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자매 아버지의 파킨슨병이 더디게 진행되도록 주님 만져 주세요.
눈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지유(가명) 자매가 사회에서 수고하는 모든 시간들이
인정받게 하시고, 그의 노력과 수고가 자매를 더욱 성장하게 하시며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세요.
은지(가명) 자매는 학교에서 늘어난 업무로 많이 지쳐 있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치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삶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5분에서 10분,
나는 교회 지체들과 연약한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이른 아침,
박영수(가명) 어르신 댁으로 향한다.
붉게 물드는 하늘과 철새들이 날아오르는 풍경을 보며
논길을 따라 하우스에 사시는 어르신 댁으로 간다.
맨 뒷자리에 타신 박영수 어르신은 내가 운전할 때면 쉼 없이 말씀을 하신다.
그러다 할머니 어르신들이 타시면 조용히 주무신다.
“앞에 차가 옵니다.”
“앞에 사람이 옵니다.”
운전하는 내가 못 미더우신 걸까. 논길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차를
늘 미리 알려주신다.
나는 그 안내를 받으며 다음 집으로 향한다.
도착하기 3분 전에 전화를 드리면 내가 도착하고 3분쯤 뒤에 내려오신다.
날이 추워져서 내가 선택한 송영 방식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늦게 나오는 것을 미안해하시기에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미리 준비하고 기다려 주신다.
그 배려가 늘 고맙다.
마지막 어르신 댁에 도착하면 마음이 한결 놓인다.
차정희(가명) 어르신은 오늘도 아파트 출입문 앞에 미리 나와 계셨다.
“오늘은 다 오셨나…?”
차에 타시며 안을 둘러보신 뒤 두 손을 모아 기도하신다.
아흔여섯 살 권사님이다.
“다 오셨구먼.”
“어르신, 날이 많이 추워요.”
“그려. 겨울은 추워야 혀. 그래야 겨울이지. 그래도 하늘이 밝으니 좋네.”
센터가 크리스마스와 신정에도 문을 연다는 이야기를 하자
어르신은 두 날 모두 신청했다고 하신다.
“아들은 왜 그러냐고 혀. 근데 나는 센터가 편해.
지 집 식구들끼리 교회도 가고, 외식도 하고 그러잖여.
내가 따라가면 나도 힘들고, 집에 혼자 있자니 또 서로 불편해지고….”
어르신은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을 조심스럽게 꺼내신다.
" 우리 며느리는 말이여 친정 부모님 보다 나랑 더 오래 살았어...."
그래서 방은 늘 직접 청소하고, 속옷도 손수 빨아 입는다고 하신다.
“큰 건 못 빨아도 속옷은 조물조물할 수 있잖여.”
나는 그 말이 참 멋지다고 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이렇게 답하신다.
“아니여. 남이라 그런 거여….”
센터에서도 어르신은 늘 먼저 인사하고 도움의 손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신다. 그러다 어르신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는 말이여…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혀…. 그리고 나는 진짜 알고 있고 믿고 있거든
하나님 아버지가 저 하늘나라에 내가 살집 나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을....”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는데 얼굴에 열이 오르고 마음이 저며온다....
“오래 살면 말이여, 내가 도움을 받아야 혀.
그러다 보면 이거 못 했네, 저거 못 했네 말이 나올 수밖에 없잖여.
그럼 괜히 자식 불효자 만드는 겨….”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센터에 도착했다.
“어린 기사 양반이랑 얘기하다 보니 벌써 다 왔네. 고마워요.”
어르신들을 내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들이 오래 남았다.
며칠 전 교회 공동체 모임에서 파킨슨병으로 운전을 못 하게 된 아버지의 차 키를 숨겨야 했던
한 자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다쳤다고 했다.
또 치매가 오신 아버지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평생 마음에 남아 있다는 형제의 고백도 떠올랐다.
그래, 너무 이해가 된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불효자가 되지 않으려 애쓰지만
부모님은 우리를 불효자로 만들고 싶지 않아 하신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불효자가 되는 것일까, 불효자를 만든다는 것일까.
서로를 너무 사랑하기에, 서로가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게 늘 미안한 걸까?
그 큰 부모님의 마음을 나는 부모가 되었어도
아직 다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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