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인이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비유를 하여 많이 회자되고 있는 한시 내용이다. 걸인으로 위장한 암행어사 이몽룡이 변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술을 얻어먹은 답례로 지어서 사또에게 올리자모두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교과서에는없었지만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배워서 지금까지 한글음과해석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고교시절은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삭막한 환경에서 어렵게 학창 시절을 보낸 기억 밖에 떠오르지않는다. 교실도 짖지 않고 신설된 학교라서 중학교운동장 한쪽 창고 같은 임시교사에서 수업을받았다. 목재 골조에 까만색 판자를 붙인 판잣집형태의 건물이었다. 산은 높고 골이 깊은지역이라서 바람도 자주 불었는데, 바람이운동장의 흙을 몰고 와서 교실 건물을 세차게때리면, 엉성한 창문과 벽틈으로 흙먼지가 들어와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학교 앞 개울에는 시커면석탄물이흘렀는데, 교량이 없으니 개울 바닥에 오솔길 형태의 길을내고 물 흐르는 부분에 공사장 패널1장을 걸쳐놓고 건너 다녔다. 비만 오면 패널과길이떠내려가서 멀리 돌아가야 하니학교 앞에교량을 놓는 것이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선거철후보자나 높은 사람이 방문할 때마다 교량을놓아준다고공수표를 날렸다. 교장은 그 말을믿었는지 학생들에게 "높으신 분이 다리를놔준다고 약속했으니까학생들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체육시간은작업시간이 되었고, 틈만 나면 개울 바닥에서자갈을 모아서 쌓아 놓으라고시켰다. 자갈을 쌓아 놓아도공사를 하지 않으니비가 오면 쓸려 내려가 버리고, 다시 자갈을 쌓아 놓았다가 비가 오면 또 쓸려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졸업할 때까지도 다리공사는 하지 않았는데,10년쯤 지나서 가보니 교량이 세워져 있었다.
'교련'과목이 있었는데 1학년 때 군부대에서교련검열을 나온다고 했다. 신설학교이니 첫검열을 잘 받아야 한다며 교련교사와 젊은교사들이 학급별 담당을 맡아 1주일 동안 수업을전폐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동작이 틀리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단체기합을 줬다. 돌이 있는 흙바닥에 원산폭격(바닥에 머리를 대고엎드려 뒷짐을 지는 자세)을 시킨 상태에서 그대로 회전하도록 시켜서 머리가 땅에 쓸리며 상처가나는 애들도 있었다. 나중에 논산훈련소에 가보니 고등학생 때 훈련이더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1주일이 지나고군부대 검열이 끝나자 우리 학교가 1등 했다며교장과 교사들이 즐거워했다. 교장과교사들은학생들을 인격체로 본 것이 아니라본인들 점수챙기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우리 학교에도 진짜 선생님의 품위가느껴지는 한문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공무원하는 제자들이 한문을 쓸 일이 많다고하더라"라고 하시며 영어 실력이 모자라니 한문이라도제대로배우면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고하셨다. 그러면서 춘향전 얘기와 함께 딱딱한교과서에는 없는 이몽룡의 한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가르쳐 주셨다. 그때부터 한문에 흥미를 느끼고공부할 수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셨다. 교육청에서 수학여행때문에감사를 나왔었는데, 수학여행비 걷은돈에서교장과 교사들이 부정을 저질렀다고내부고발을해서 전출을 가셨다는 소문이 돌았다.어두운시절이니 잘못한 교장과 교사들이 모의를 해서오히려 내부고발자를 쫓아낸 것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해보니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한 수학여행이었다. 설악산코스를 선정했는데, 관광버스가 첫째 날 설악산가는 길 주변 관광지를 들려서 숙박단지에 내려주고는 돌아갔다. 둘째 날부터는 매표소에서도3km나 떨어져 있는 숙소에서 설악산 주요코스까지 걷거나 뛰어서 오르내리며 관광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루만 버스를 타고 삼척의해수욕장에 들려 점심 도시락을 먹고 학교로돌아왔다. 비용은 다른 학교와 비슷하게 걷었지만 기간 중 2일만 관광버스를 이용했는데, 버스회사 사장이 교사의 형이라는 말이 있었다. 보통의가정에서도 쌀밥을 먹던 시절에 여관에서 제공한도시락이 보리밥과 장아찌 반찬으로 아주부실했다. 교사가 봐도 도시락이 형편없었는지 "집 떠나면 원래 고생도 해 보는 것"이라며 다독였는데, 학생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부모님들은 아이가 기합을 받다가 다쳐도 내 아이가 잘 못했겠거니 하고 교사들을 믿고항의하는 부모도 없었으니, 교사들은 학생들을별로 신경 쓰지 않고 무모하게 다뤘던 것 같다.고교시절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추억이라기보다는'삭막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한문선생님에게서 받은 좋은 기억도 간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기간 동안 수업을 들은 데다 오랜 세월이흘러서 성함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선생님수업을 계기로 한문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 덕에 직장 생활하면서 법률서적을 볼때나 업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