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데뷔했다. 어떤 사람은 서랍을 가득 채우고 여러 번 지원하던데 나는 글 두 편 쓰고 한 번에 붙었다.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나를 추켜세웠지만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대개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주위에알린다.사람들의 반짝이는 눈을 기대하면서.나도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친한 언니와 귀여운 동생은 제 일처럼 즐거워하며 열렬히 반응해 주었다. 하지만 내게 성을 물려준 남자는 조금 많이 달랐다. 제 딸이 칭찬을 듣고 싶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사소한 말조차 해주는 법이 없었다.
칭찬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얼마 전 나는 아빠에게 칭찬을 듣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빠가 내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문자에 아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아빠는 내 문자를잘 확인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는 엄마가 연락하라고 압박을 가할 때였다. 아빠는 나의 친아버지지만 이 사실에 의구심이 들 만큼 내게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브런치 외에도 티스토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블로그 링크를아빠에게전송했다. 아빠는 잘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뿐, 달라진 건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면 사랑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빠는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빠 딸이 아닌가 보다. 외롭고 비참했다. 관심을 끌기 위해 10개월 동안 고전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3일 만에 작가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아빠는 내게 작가가 되는 거냐고 물었다. 축하한단 말 한마디 없었다. 내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용돈 없이 살 수 있는지만 궁금해했다. 아빠는 당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내게 돈을 주는 걸 꺼렸다. 그 문자에 나는 취미로 하는 거라고 답신했다. 그러나아빠는다음날이 되어서야 문자를 읽었고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자음·모음 입력하는 게 손가락 부러질 만큼 힘든 일인지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빠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몸이 아파도 나는 택시를 불러 동네 병원에 갔다. 그마저도 집안 사정이 넉넉한 날에만 허용되었다. 대개는 엄마 손을 붙잡고 버스를 탔다. 감염병이라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되지만 아빠는 회사에가버려서 개인 차를 탈 수 없었다. 아빠에게 연차가 없진 않았다. 다만 아빠는 나를 위한 휴가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다리를 절어가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병원에서 4시간 동안 링거를 맞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제 피를 물려받은 딸이 말라 죽어가도 그의 시선을 끌진 못했다. 딸이 자신에게 병을 옮길까 봐 초조해할 뿐,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족에게 애정을 쏟았다. 늘 지극정성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 나와 엄마가 아니라는 점이다.친할머니와 형제였지, 나는 아니었다. 엄마는 이 사실을 매번 내게 상기시켰다. 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때였다. 길에서 아주 큰 소리로 엄마는 "네가 남한테 맞아도 너희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내게 말했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잘 알았다. 엄마가 감기몸살에 걸려 방 안을 기어다녀도, 아빠는 친할머니의 생신이라는 이유로 엄마와 나를 버렸다. 엄마가 울분을 토하자, 아빠는 병원 전화번호를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아빠에게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소중했다. 그런 그로써 나름 최선을 다했다. 물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눈물이 나도 엄마는 이를 악물고 할 일을 해야 했다.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널고 어린 내 입에 밥을 넣어주고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를 했다. 엄마는 아직도 그 일을 종종 언급한다. 엄마는 아빠를 용서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죽긴 왜 죽어?
민희진이 방 씨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죽긴 왜 죽어?" 지금 내 심정이다. 아빠에게서문자 하나 없어도 나는 사랑받고 있었다. 신인 작가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분이 계셨다. 독자분께서 라이킷을 눌러주니 '아빠'에 의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나는 독자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주연님의 글을 읽었다. '아픈말'이라는 시를 읽는데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을 말하는데 내게는 아빠와 내 얘기 같았다.
시에서 말하는 이별은 너무도 아팠다.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의 연인은 헤어졌다. 이별의 상처는 아릴 만큼 깊었다. 하지만 괜찮다. 계속 이어가느니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 상처의 다른 말은 일의 종결이니까. 아빠에 대한 짝사랑을 멈춰야겠다. 이제부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에게 이 마음을 바쳐보자. 그리고 밥을 굶지 말자. 누구 좋으라고 밥을 안 먹어. 샌드위치와 커피, 라이킷으로 아빠를 잊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