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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May 17. 2024

세상의 경계에서

2023. 12. 11.

나는 타고나길 왼손잡이다.


하지만 뭇사람들의 관심을 가장한 편견, 오른손잡이에게 편리하게 편집된 세상살이의 불편함을 이유로 오른손을 사용하길 강요받았다.


밥상머리에 앉아 왼손으로 숟가락을 집어 들 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왼손으로 써서 글자가 번졌다고 혼은 내면서 글을 잘 썼는지 못썼는지는 봐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왼손잡이일 뿐이었는데

왼손을 사용하는 잘못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옳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오른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을 유심히 살펴봐 주었고, 동그라미를 예쁘게 오리지 않아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하지만 답답함이 계속 남았다.

왼손으로 했을 때의 완전함을 오른손은 대신할 수 없었다.

처음엔 '왼손으로 하면 오른손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점점 내가 왼손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렸다.


혼란스러웠다.

정체성이 부정당함으로써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은 단순히 왼손이 할 일을 오른손에게 넘겨주는 상황이 아니라, 나의 경계를 자꾸만 침범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연약했고, 무방비했다. 

내가 옳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고, 내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이러다간 결국 점처럼 작아지고, 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엔 고통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 아픔을 아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외면 당한 나의 왼손에게 미안했다. 왼손잡이에게 왼손의 사용은 간단하게는 욕구의 충족이면서 높은 차원에서는 자아실현이 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이제 왼손을 실컷 쓰고, 후련함을 만끽할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할 것이다.

나는 줄곧 이렇게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세상을 편리하게 살게 해 준 오른손에게도 감사하다. 너는 잘못이 없지. 때때로 네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고, 그때 너의 도움을 조금 받을게.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싸우기에 급급했던 세상과 화해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나는 실제로 오른손잡이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은유다. 오늘날의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같지 않다.

***몇 가지 에피소드는 타고나길 왼손잡이면서 후천적으로 양손잡이가 된 아빠의 이야기를 참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는 많은 것을 강요하며 살고 있다. 가끔은 강요받은 자신의 인생을 지나치게 정당화하려는(혹은 인정받으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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