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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May 17. 2024

병상일기

2023. 07. 16.

2023.07.03.(월)

  백차 포지션에서 블락을 뛰고 내려오다가 센터라인을 넘어온 상대편 공격수의 발을 밟고 발목을 접질렸다. 발목이 꺾이는 순간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이 90°로 꺾이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언젠가 한 번은 다치겠지 하면서도 쉬엄쉬엄 하면서 몸을 사려 왔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다쳤구나 싶었다. 급히 의자로 옮겨졌고, 통증은 가라앉는 듯했으나 점차 부풀어 오르는 발목을 보고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업히고 태워져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뼈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이나 주중에 외래로 MRI 촬영을 권유받았다. 반깁스를 하고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발목이 심하게 부풀어 올라서, 다음날 병가를 쓰고 병원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023.07.04.(화)

  가족과 직장에 부상 사실을 알렸다. 정형외과 외래 전 아빠의 권유로 활법치료를 받으러 갔고, 뼈를 맞춘(?) 다음 발목 움직임이 원활해지고 붓기가 다소 가라앉았으며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을 받았다. 비가 많이 오기도 했고 경과를 지켜보면 좋을 것 같아 귀가 후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쉬었다. 이불과 베개를 깔아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얹을 수 있게 했고, 간간히 얼음찜질을 해주었다.


2023.07.05.(수)

  출근한 게 잘못이었다. 출근해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발을 아래쪽으로 내려놓다 보니 피가 쏠리고 붓기가 심해졌다. 그리고 오후에 정형외과 외래를 갔더니 의사가 아주 심각한 상태로 보았다.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인대가 파열되어 만져지는 게 없다며, MRI를 찍어 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MRI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입원을 했다. 저녁은 배민으로 시켜 먹고, 다음날 아침은 병원 밥을 먹었다. 6인실이라 너무 심심하지도 않았고, 밤새 링거를 맞으며 재미있는 밤을 보냈다.


2023.07.06.(목)

  어수선한 분위기에 새벽 6시에 잠에서 깼고,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MRI를 찍었다. 20분 넘게 걸린대서 너무 지루하면 어쩌지 했는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금방 지나갔다. 진단은 좌측 거비인대 90% 이상 파열이다. 너덜너덜한 지경이라고 했다. 수술로 박아 넣어 붙여야 한다고 했다. 수술은 하기 싫다는 첫 번째 이유, 의사의 불친절한 태도를 두 번째 이유로 들어 인근 병원을 방문하여 한차례 더 진료를 받기로 했다. 

  CD복사본을 들고 새로 찾은 병원에서도 수술을 권유하였다. 째서 열어보면 인대가 두 개 파열되어 헐빈하게 비어있을 거라고 했다. 비수술 치료도 방법이긴 하지만, 그러기엔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의사가 그림이 자세하게 나와 있는 의학 서적을 펴놓고 설명을 잘해주어서 믿음이 갔기에 수술 예약을 잡았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예약 날짜까지 시간이 있어서 귀가 후 휴식을 취했다. 지인에게 이런저런 경과를 이야기하다가 비수술을 권유하는 의사가 부산에 있다고 하여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튿날 가기로 결정했다.


2023.07.07.(금)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정형외과 전문병원은 9시에 진료를 시작하고 8시 40분부터 접수를 받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번호표를 뽑았다. 9시 무렵에 도착하여 한 시간 반 가량을 기다린 후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나의 그간의 경과를 듣고 다짜고짜 혼을 냈다. 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사실), 발목은 언제든지 삘 수 있는 건데 그때마다 수술할 거냐(사실), 이전 지역 정형외과 의사들은 과잉진료 너무 심하고 수술도 더럽게 못한다(?)며 호되게 몰아세웠다. 통깁스 한 달, 그 이후 재활을 권유하는데 선택은 내 몫이라고 했다. 수술도 하는 의사인데 수술을 안 해도 나을 수 있다고 하니 그리 하기로 했다. 통깁스를 살면서 처음 해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갈비탕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인생 갈비탕.


2023.07.08.(토)~13.(목)

  병가의 연속이었다. 오전엔 직장 업무 처리, 오후엔 좀 쉬다가 노트북을 켜서 보고서를 썼다. 다리는 항상 올리고 있었는데, 멍이 생각보다 늦게 빠지는 걸 보면 충분히 안 올렸던 것 같다. 거실에서 생활했는데,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에 걸렸다. 초반에는 잠을 많이 잤는데, 피로가 점점 회복되면서 잠도 줄었다. 그간 누적된 피로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다리에 부기가 빠지면서 통깁스가 헐거워졌고, 부츠처럼 벗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023.07.14.(금)

  부산 병원에 재방문했다. 일주일 간 경과를 지켜보고 통깁스가 너무 헐거워지면 교체하기 위함이었다. 의사는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친절한 태도였다. 교체는 안 해도 될 것 같고, 8월 1일에 풀기로 했다. 처방약도 없었다. 집에서 발끝을 안팎으로 움직이는 연습,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와중에 나보고 남성형 허벅지라고 했다. 전혀 맥락이랑 상관없는 말인데 그 말해서 너무 웃기고 어이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갈비탕을 또 먹었다. 진짜 맛있었음.


2023.07.15.(토)~현재

  코로나 3년보다 더 지겨운 통깁스 n주다. 사실 통깁스 한 지는 만 1주가 갓 지났을 뿐인데도 벌써 이만큼이나 지겹다. 안 아파서 다행인가, 배부른 소리인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겹다.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잤던 것 같은데, 이제는 거의 집에만 있으니 힘들 수밖에. 나는 이렇게나 외향적인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생각이 정체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빨리 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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