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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May 17. 2024

불완전과 완전으로의 회귀본능

2023. 07. 31.

요즘은 삶이 무료하다. 누구를 만나 어디를 가서 어떤 얘기를 하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던 성취에도 별다른 뜻이 없다. 물론 결국 하고 있지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는다. 나는 목표가 있었지만, '내가 목표가 있었던가?' 생각한다. 나의 의지는 다른 것에 쉽게 영향받고 있다. 현재가 불안정하니 '나이를 빨리 먹어' 안정되고 싶은 나는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할까?

K와 많은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꽤 핵심을 간파했다. K는 나의 심정을 완전히 공감했다. 나의 무료를 결혼 전 K도 그대로 느꼈던 것이다. 결혼은 한 번쯤 해보면 좋다는 주의인 K는 아이들이 너무 좋고, 또 힘든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나고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 했다. 혼자일 때 자신에 대한 책임은 지기도 쉽고 져버리기도 쉽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과 얽힌 관계에서 책임은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자기 의지를 초월하는 어떤 의지로 삶의 수많은 과업을 해결해 나가고, 무료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아닐까?

나는 결혼 전 K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기억하고 있다. K는 출퇴근 한 달 후 힘들다는 판단에 직장 근처로 이사하고, 하루를 할 일들로 빼곡하게 채웠다. 직장 외에도 (편도 2시간) 대학원에 다녔고, (여러) 연구대회에 나갔고, (주 3회) 배구를 했고, (하루에도) 여러 모임을 했고, (새벽에) 영어 공부를 했다. 나와도 카페에서 1-2시간가량 신나게 얘기하고 나서 홀연 듯 다음 일정을 향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던 K는 이를 진정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본인도 '논다'라고 했으므로 심심할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당시 K는 무료했다.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K가 독립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았다. 독립은 처음엔 대단한 해방감을 주었지만, 결국 이 많은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자기 의지가 쉽게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내 마음대로 '의지를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도 포함한다. 혼자인 인간은ㅡ강제성을 부여한다고 해도 한계에 다다르는 알고리즘이 존재하므로ㅡ쉽게 나약해지고 불안전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나도 무료하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K와 닮아 있다. 요즘의 나는 '시간 낱알을 세고' '관성처럼' 이어지는 일들을 해나간다고 자주 표현한다.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충족되지 않는 느낌은 나의 무료함을 더해간다. 독립 1-2년 차와는 대조적으로 지금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일도 청소도 요리도 좀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에 누군가 있을 때 그간 미뤄왔던 일들을 생뚱맞게 꺼내어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 도피하곤 한다. 좋아하는 일도 싫은 일이 되니,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독립 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고, 독립 후 그 시간들을 충분히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것보다는, 나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 나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관계하면서 나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나를 초월한, 보다 높은 차원에서 나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견고한 관계 속에서 더 강력해지는 나의 의지를 발판 삼아 나는 완전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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