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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수필가 Sep 21. 2024

 장인어른의 네 번째 스무 살

“같은 동네 토박이로 살아온 장인어른의 꽃 청춘을 응원하며”

 

오늘이 바로 장인어른 팔순이다. 몇 년 전부터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사 기획하는 직업적인 성격이 한몫을 한 듯하다. 온 가족이 함께 난생처음으로 팔순을 핑계 삼아 해외 투어로 의견을 모은 것이 작년 연말쯤이었다. 의견 일치는 여행 기간이 짧고 비용도 최대 일 인당 백만 원 범위로 의견을 모았다. 여기에 걸맞은 최적의 상품은 가족 리조트로 안성맞춤이라는 마카오 3박 4일 패키지 일정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올 일월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다시 원점에서 의견을 모았다. 하계휴가를 겸한 가족만의 투어로 다시 정리가 되었다. 양평의 기업 연수하기에도 좋다는 '첼로와 거문고'라는 풀펜션으로 막내 처남이 두 달 전쯤 계약을 했다.

장인어른 생신의 특징은 늘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지난주에는 폭우로 가평 펜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강행해도 될까? 

팔순 당일 아침을 우리 집에서 먹고 출발하기로 했는데 비가 참 많이도 온다. 그래도 떠났다. 시속 오십 킬로 정도로 달리면서 자그마치 양평 입구를 네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장인어른과 맏사위와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상호수혜적 관계라고나 할까? 아버님 역시 나처럼 마장동 토박이 중의 토박이시다. 나의 모교인 동명초등학교 7회 선배님이시고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형적인 토지, 180명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마장동 공유지에 아버님도 나와 함께 속해 있다. 그동안 사업 기반도 전부 마장동에서 근거를 두고 하셨다. 그 결과 동네 주민들을 참으로 많이 아신다. 거기다 십몇 년 전부터 동네에서 부동산을 운영하셔서 인맥 관계가 더욱 넓어지셨다. 아버님이 이런 식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자네 누구 알지? 자네를 아주 잘 안다고 하던데. 그래서 자네가 바로 내 사위라고 말했지. 내가 사위 자랑을 좀 했어.”


나의 경우 마을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 어떻게 이야기하다 보면 아버님이 동네에서 꽤나 오랫동안 운영했던 유리, 거울공장 민경사, 서울부동산의 사위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는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사람들은 ”장인어른 멋지시다, 인심 후하다, 장인과 사위가 서로 잘 맞겠다’” 등의 덕담을 하곤 했다. 

이렇듯 동네 모임이나 사업에 있어서 장인과 사위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사위는 장인어른을 위해서 동네에서 바르게 살아야 했고, 장인어른도 사위를 위해서 멋지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언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 약혼식 날 아침 아버님을 내가 자주 이용하는 집 앞 목욕탕에서 만났다. 그 정도로 처가와 우리 집은 가까웠다. 함 들어가는 날 사전 답사를 끝낸 함잡이 친구는 ‘함 사세요’를 우리 집부터 시작해도 될 정도로 처가가 가깝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혼하고 한 달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분가했던 나는 마장동 본가로 다시 들어왔다.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인 신분으로는 지척인 친정에 시선을 둘 수가 없었다. 내 시간 만들 요령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5년 4월 긴 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한편으로는 그때부터 나 역시 처갓집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 남매 중에 큰 딸인 아내도 마찬가지로 생각된다. 명절, 어버이날 행사, 아버님 생신, 어머님 생신, 숱한 맛집 방문 등에서 늘 이벤트를 했다. 행사 기획처럼 나름 기획을 해서 준비했다. 처제와 처남은 언제나 내 의견에 따랐다. 그래서 참으로 다양한 행사를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했다.


대학생 때 엄마가 유명 점쟁이에게 점을 보고 오셨다. 그 점쟁이가 한다는 소리가 당신의 막내아들은 결혼하면 처가에 완전히 빠져서 살 성향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아버지에게 얘기하고 엄마가 나에게 무언가를 잘해주면 아버지는 늘 웃으면서 ‘영진이는 장가가면 남 될 아이인데 왜 그렇게 신경을 써’ 하곤 하셨다. 

그 점쟁이 예언이 딴에는 맞기도 한 듯하다. 아버지 어머니가 떠난 이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의 부모님이 되셨다. 아버님 역시 나에게 늘 자네가 내 아들처럼 좋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무엇보다 장인과 사위가 서로 말귀를 알아들어서 대화를 나누고 술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움이요 행복이라 하시며 좋아하셨다. 간혹 누군가 동네 동정을 부탁하는 일이 생길 때는 난 언제나 아버님을 소개해 드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귀찮은 내색 없이 늘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첼로와 거문고 펜션에 도착한 지금 이곳에 하늘은 출발때와 달리 참 맑다.

"아버님의 네 번째 스무 살을 축하드립니다. 동안 피부와 꽃 청춘은 더욱 축하드립니다. 거기다 지금도 현역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이 최고입니다."

우리 가족도 아버님처럼 꽃 청춘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면서 최강 동안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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